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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가고 싶다] 반세기 만에 열린 대통령의 힐링 섬, 저도
2019-12-07 08:01:34최종 업데이트 : 2019-12-07 08:01:34 작성자 :   연합뉴스

[그 섬에 가고 싶다] 반세기 만에 열린 대통령의 힐링 섬, 저도



(거제=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일제가 주민들을 쫓아냈던 섬, 한국전쟁 때 연합군이 탄약고로 썼던 장소, 대통령 별장 '청해대'를 지으면서 다시 주민을 강제 이주시켰던 곳, 거제 저도가 47년 만에 개방됐다.
완전 개방이 아닌 임시 개방이지만 국민의 품에 다시 돌아온 저도, 아름답고 고요한 힐링의 섬, 저도는 '올해의 섬'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많은 관심을 받았다.
저도는 "과연 대통령 휴양지구나"라는 탄성이 절로 나올 만큼 비경과 쉼의 땅이었다.

◇ 국민 품으로 돌아온 저도
저도 탐방객들의 청해대에 대한 호기심은 대단했다. "아! 저기구나", "박정희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쉬었던 곳이구나", "대통령도 쉬어야 국정을 잘 돌보지"…. 저마다 한 마디 감상을 털어놓는다. 이런 탄성에는 좀처럼 오기 힘든 대통령 별장지에 왔다는 자부심마저 묻어 있다.
저도는 지난 9월 17일, 1년 기한으로 국민에게 시험 개방됐다. 동계, 하계 정비 기간에 비공개로 전환되기 때문에 올해는 11월 말까지만 관광이 가능하다.
올해 저도에 들어갈 수 있는 유람선 승선 예약은 모두 끝났다. 기자가 저도에 들어간 날도 유람선을 탄 탐방객은 허용 인원 300명을 꽉 채웠다.



저도에 닿으면 제일 먼저 탐방객을 반기는 곳이 대통령 별장 '청해대', 곧 '바다 위 청와대'다.
정박한 유람선에서 바라볼 때 오른쪽 귀퉁이, 나무 숲속에 자리 잡은 청해대는 '돼지 섬'인 저도에서 풍수지리상 '돼지의 눈'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만큼 요충지이고 좋은 땅이란 뜻이다.
그러나 사진은 찍지 못한다. 접근도 안 된다. 미개방 시설이기 때문이다. 청해대는 현재 대통령 별장으로 지정돼 있다.
우리나라에 대통령 별장은 두 곳이 있었다. 충북 청주에 있는 청남대는 이미 대통령 경호 유관시설(별장)에서 해제돼 민간에 개방됐다.
남은 곳이 청해대다. 지금으로서는 대통령이 복잡하고 무거운 현안이 쌓여있는 청와대 집무실에서 벗어나 경호 걱정 없이 잠시 쉴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저도인 셈이다.
거제시와 거제 주민은 청해대가 대통령 별장에서 해제돼 민간에 개방되길 바라고 있다. 호기심 가득한 국민이 청해대와 저도를 보려고 전국 각지에서 몰려오면 거제와 남해 해양 관광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배에서 내려 저도에 올라서면 넘실거리는 비췻빛 바다 너머 오른쪽으로 부산 신항, 왼쪽으로 거제가 한눈에 시원스럽게 들어온다. 가운데가 진해군항이다. 저도가 해군 전략기지인 진해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크기 43만㎡, 여의도의 20분의 1에 불과한 저도는 군사적 전략 요충지다. 이 때문에 일제 강점기부터 역사의 소용돌이를 함께 해야 했다.
일제는 1920년대 이곳에 군사기지를 짓고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켰다. 나무 데크 계단을 올라 제2 전망대로 가면 일제가 만들어놓은 포진지가 남아 있다. 포를 놓았던 곳의 형태가 동그랗다.
진미경 경상남도 문화관광해설사는 "사방으로 모두 포를 쏠 수 있게 진지를 둥글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저도 둘레에 난 산책로를 따라가는데 숲 내음이 강렬하다. 반세기 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탓에 나무와 풀이 내뿜는 향기가 유별나다.
섬 전체가 소나무, 편백, 팽나무, 삼나무 등의 울창한 수림으로 뒤덮여 있어 많은 양의 피톤치드를 발산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산책로 옆에 곰솔이 우람하게 서 있다. 수령 400년 된 해송이다. 두 팔을 한껏 뻗었는데 나무 둘레의 반도 안지 못한 것 같다. 탐방객 몇몇도 곰솔을 품어 본다.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모습들이다.
푸르른 바다가 빽빽한 나무 사이로 간간이 보인다. 섬을 돌다 보면 웅장한 거가대교가 지척인 듯, 다리 위를 지나는 차 소리가 가깝게 들리는 지점도 있다.
거가대교는 길이 8.2km의 거대한 사장교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해저에 건설된 침매터널 구간이 있다.
외딴 섬 저도에 사슴, 고라니가 뛰논다. 어느 시점에 방사한 모양인데 인적이 드물다 보니 개체 수 조절이 필요할 정도로 많아졌다. 안전요원 김현옥 씨는 자신이 직접 찍은 사슴 사진을 보여줬다.



◇ 연리지처럼 한국 정치도 협력·상생하길
산책로와 해변 사이에 '연리지 정원'이라는 아홉 홀짜리 골프장이 있다. 정원 안에 활엽수인 말채나무와 침엽수인 소나무가 한 몸인 듯 가지로 연결돼 있다.
두 나무가 지상에서는 사이좋게 이웃하고 있지만 땅 밑에서는 생존하기 위해 치열하게 다툼을 벌인다고 한다.
같은 종류의 두 나무로 된 연리지는 더러 있지만 이처럼 종류가 다른 두 나무로 이루어진 연리지는 드물다고 한다.
가지가 맞닿아서 하나가 된 연리지처럼, 정치 이념이 서로 다른 한국의 정치권도 결이 통해 평화롭게 공존하면 좋겠다는 진미경 해설사의 촌평에 탐방객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드디어 해변으로 나왔다. 크지 않은 백사장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청해대를 지을 때 섬진강에서 실어온 모래로 조성한 인공 백사장이다.
파도에 모래가 쓸려나가기 때문에 백사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모래를 싣고 와 채워줘야 한다.
해변 한쪽에 포토존 푯말이 세워져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모래 위에 나뭇가지로 '저도의 추억'이라고 썼던 곳이다.
탐방객들이 모래 위에 이런저런 글귀를 쓴다. 사실 저도가 가고 싶은 섬으로 뜬(?) 것은 이 모래밭에 '저도의 추억'이라고 썼던 박 전 대통령 사진 덕분이기도 하다. 박 전 대통령은 2013년 7월 말 취임 후 첫 휴가를 저도에서 보내면서 찍은 이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 대통령에게 휴식과 위안을 주었던 저도
저도와 대통령들의 인연은 깊다. 1954년 국방부가 저도 소유권을 넘겨받은 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이곳을 휴식처로 애호했다고 한다.
고기잡이가 신통치 않은 곳에서 이 전 대통령이 낚시를 하고 있으면 어민들이 고기 잘 잡히는 곳을 알려 주곤 했는데 이 전 대통령은 '내가 낚는 것은 세월이니 괜찮다'고 말했다고 한다.
대통령 되기 전부터 저도를 찾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2년 저도를 대통령 별장지로 공식 지정하고 이듬해 청해대를 완공했다.
저도 주민은 광복 후 일부가 복귀해 농사를 지었다. 저도는 물이 풍부하고 땅이 비옥해 농사가 잘됐다고 한다. 청해대를 지을 때 주민은 다시 강제로 이주당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가족과 함께 여러 번 저도를 찾은 것으로 알려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간직한 '저도의 추억'은 그때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청와대 경호실 근무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을 수행해 저도를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제 주민의 저도 반환 요구 역사는 길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 요구에 응해 1993년 저도를 대통령 별장에서 해제했다. 이후에도 저도는 군사 요충지라는 이유로 해군이 관리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저도에서 휴가를 보냈다.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 때 청해대는 다시 대통령 별장으로 지정됐다. 이 전 대통령은 '청해대 건물은 내가 현대건설 과장 때 지었는데 내가 이용하게 될 줄 알았더라면 더 잘 지었을 것'이라고 농담한 것으로 전해진다.
거제 주민의 저도 반환 요구가 계속되자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때 "저도를 시민에게 돌려드리겠다"고 공약했다.

◇ 풍수 좋은 땅 저도, 국민 품에 완전히 안길까
저도는 풍수지리가 뛰어나다. 사시사철 바람이 모이고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삼태기 모양이어서 기(氣)가 항상 서린다고 한다.
하늘에서 보면 누워있는 돼지 형상인데, 돼지는 복을 상징하며, 돼지의 눈에 해당하는 곳은 왕기(王氣)가 집중된다는 설이 있다.
거제시와 주민들은 이 좋은 땅의 기운을 대통령과 군대만이 아니라 국민이 모두 향유하게 하자고 주장한다.
거제시, 국방부, 해군, 경상남도, 행정안전부가 저도상생협의체를 구성해 완전 개방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저도를 국민 관광지로 만들려는 거제시, 저도에 가고 싶은 국민, 작전기지가 필요한 군이 모두 윈윈(win-win) 하는 방안이 나와야 할 것이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ksh@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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