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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강쇠·옹녀공원, 산꼭대기 태권브이…논란 부르는 공공조형물
성과 급한 지자체 마구잡이 건립…흉물 방치·예산 낭비로 이어져
전문가 "주민 의견 수렴·타당성 조사 강화…지방의회 견제 필요"
2019-12-07 09:10:00최종 업데이트 : 2019-12-07 09:10:00 작성자 :   연합뉴스
지리산 길목에 설치된 변강쇠.옹녀 조각작품

지리산 길목에 설치된 변강쇠.옹녀 조각작품

변강쇠·옹녀공원, 산꼭대기 태권브이…논란 부르는 공공조형물
성과 급한 지자체 마구잡이 건립…흉물 방치·예산 낭비로 이어져
전문가 "주민 의견 수렴·타당성 조사 강화…지방의회 견제 필요"

(전국종합=연합뉴스) 변강쇠·옹녀 테마공원, 산꼭대기 태권브이, 황금바둑판, 은빛풍어….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경쟁적으로 건립하려다가 주민 반발에 부딪혀 재검토되거나 철거에 들어간 테마공원과 공공조형물의 이름이다.
이런 랜드마크 사업이 충분한 여론 수렴과 타당성 조사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추진돼 문제가 되고 있다. 예산 낭비라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수명을 다한 공공조형물은 치울 곳도 마땅찮아 흉물로 방치되기 일쑤다. 졸속으로 세운 조형물이 환경을 오염시키고 경관을 해치는 골칫거리가 되기도 한다.



경남 함양군 삼봉산 일원에 들어설 예정인 변강쇠와 옹녀 테마공원은 요즘 지역사회의 날 선 비판을 받고 있다.
변강쇠·옹녀를 주제로 한 성 테마박물관과 숲속 남녀 음양길, 하트 조형물 등을 조성하는 데 드는 예산이 자그마치 20년간 980억원이나 된다.
군은 '지고지순한 사랑'을 주제로 공원을 꾸미면 지역경제와 관광객 유치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과도한 예산집행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군은 뒤늦게 예산 규모를 139억원으로 줄이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그러나 사업 타당성을 둘러싼 부정적 여론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함양시민연대 관계자는 "예산 규모를 줄이더라도 사업 진행 과정에서 다시 불어날 가능성이 크다"며 "당장 급하지 않은 사업이니, 원점에서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남 신안군이 순금 189㎏로 만들겠다는 황금바둑판도 무리한 바둑 마케팅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재정자립도 전국 최하위권인 신안군이 110억원의 혈세를 쏟아부으면서 '바둑의 고장' 홍보에 나설 이유가 있느냐는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군은 "홍보뿐 아니라 투자개념에서 접근할 필요도 있다"고 해명했지만, 여론은 "갈수록 힘들어지는 주민 삶과 동떨어진 행정"이라고 등을 돌린 상태다.



전북 무주군은 72억원을 들여 향로산 정상에 세우려던 높이 33m 짜리 '태권브이' 동상 건립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이 조형물이 자연경관만 해칠 뿐 관광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환경·시민단체 비판을 외면하지 못해서다.
군은 '태권도의 고장'이라는 이미지 전파수단으로 동상 건립을 구상했지만, 흉물 전락을 우려한 주민 목소리를 넘어서지 못했다.
황인홍 무주군수는 "행정절차 이행에 치중하다 보니 여론 수렴과 사업 효과 검증이 면밀하지 못했다"고 잘못을 인정했다.
강원도 양양 송이 홍보를 위해 2006년 1억6천만원을 들여 양양군 연창삼거리와 현남면 지경리에 세운 송이 조형물도 전면 수정될 처지다.
지역 미래상을 반영하기 어렵고 이미지 표현에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일자 양양군이 뒤늦게 교체 결정을 한 것이다.
군은 모두가 공감하는 새 디자인을 선봬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새 조형물을 설치하려면 또다시 소중한 세금을 써야 한다.



경북 포항시가 3억원을 들여 포항공항 입구 삼거리에 세운 '은빛풍어' 조형물도 10년 만인 최근 철거됐다.
가로 11m, 세로 16m, 높이 10m 크기로 꽁치 꼬리를 형상화한 이 조형물은 꽁치가 바다에서 올라오는 모습이 아닌, 바다로 들어가는 모양이어서 역동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비행기가 추락한 듯한 모습으로 보여질 수 있어 공항 입구 조형물로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이어졌다.
강원도 인제군 소양강변에 설치된 메릴린 먼로 동상도 "먼로의 인제 미군기지 위문 공연을 기념한다지만, 이런 것까지 기념하는 행정 수준이 놀랍다"는 비아냥을 받아야 했다.
이런 상황 속에 천덕꾸러기가 되거나 처치곤란한 조형물도 속출하고 있다.
경남 함양군이 52억원을 들여 조성한 변강쇠 주제의 장승공원은 찾는 이가 거의 없다. 공원 안 장승 108개와 솟대 33개도 썩거나 부서져 흉물이 됐다.



대구 달서구는 철거비용이 아까워 주민청원까지 불렀던 길이 20m, 높이 6m짜리 '잠든 원시인상'을 방치하고 있다.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보고 있으면 무섭다", "규모가 커 영업에 지장을 받는다"는 등의 민원이 이어지는 데도 달서구는 귀를 틀어막고 있다.
더 크고, 더 화려하고, 더 자극적인 공공조형물을 추구하는 지자체의 전시행정에 아까운 세금이 줄줄 새고 있는 셈이다.
신환철 전북대학교 행정학과 명예교수는 "무분별한 외국 조형물 벤치마킹에다가 랜드마크 사업이 미래형 창조사업으로 보여지면서 공공조형물 설치가 유행처럼 번졌다"며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놔야 하는 지자체 입장에서는 구미당기는 아이템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일단 만들고 보자는 식의 조형물 설치를 막으려면 지방의회 견제가 필요하고, 주민 의견 수렴이나 타당성 조사 등도 의무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창엽 전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도 "지자체의 튀는 아이디어가 주민 정서에 반하지는 않는지, 관광객 유입과 홍보라는 본래의 목적에 충실한지 냉철하게 둘러보고 분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용민, 김선경, 조근영, 양지웅, 임채두 기자)
do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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