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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기행] 대게의 살이 오르는 가을엔 동해로
2019-11-11 08:01:06최종 업데이트 : 2019-11-11 08:01:06 작성자 :   연합뉴스

[음식기행] 대게의 살이 오르는 가을엔 동해로

(울산·포항·경주=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천고마비의 계절, 땅 위에서는 말이 살찌지만, 동해 깊숙한 곳에서는 대게의 살이 오르기 시작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동해 여행의 적기가 아닐 수 없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동해지역 음식기행을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중 하나로 선정해 '동해미행'(東海味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 울산 언양 불고기·복순도가
울산 언양 불고기는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나선 노동자들을 통해 입소문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경부고속도로 서울산 IC가 코앞인 울주군 삼남면 일대를 조선 시대에는 언양현이라고 불렀다.
숱하게 많은 식당이 생겨났다가 없어졌지만, 많은 사람의 추천을 받으며 영업해 온 곳 식당을 한 군데 찾았다.



식사 전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주방에 들어가 봤다. 실내 주방을 지나 바깥으로 나가니 직원들이 참나무 숯을 이용해 불고기를 굽고 있었다.
숯이 아닌 열탄으로 고기를 굽는 곳들도 많아서 가끔 주방을 불시에 들어가 확인해보는 버릇이 생겼다. 제대로 된 숯불 위에서 익어가는 언양 불고기를 보니 안심이 됐다.
언양 불고기는 전남 담양의 떡갈비와 비슷한 음식이다. 담양 떡갈비가 고기를 다져서 조리하는 반면, 언양 불고기는 얇게 썰어서 조리하기 때문에 식감부터 차이가 난다.
떡갈비는 잘게 다져서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며, 언양 불고기는 생고기처럼 씹히는 느낌이 좋다.
언양 불고기는 숯불로 미리 익힌 뒤 손님에게 낼 때는 화덕 안에 굵은 참나무 숯 하나만을 넣는다. 보온을 위한 것이지만, 숯 향을 유지하도록 한 배려다.
맛은 깔끔했고, 인공 감미료를 쓰지 않은 듯 달곰하기보다는 심심한 맛이 마음에 들었다.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역시 인공조미료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언양 불고기를 잘 먹고 나온 뒤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울주군 상북면의 '복순도가' 손 막걸리 양조장을 찾았다.
복순도가는 70년 된 독에서 우러난 막걸리 맛이 좋은 곳으로, 대표인 김정식 씨가 부인의 이름을 따서 2010년 개업했다.
김씨는 간장, 된장, 김치 등이 담겼던 장독은 배제하고 오로지 술을 담갔던 독들만 구해 막걸리를 빚어 왔다.
한 병 따서 따랐더니 보글보글한 기포가 끊임없이 올라온다. 웬만하면 기포가 멈출 때도 됐는데 다 마실 때까지 계속 올라온다.
보통의 막걸리는 72시간 발효를 하는 데 비해, 이곳 막걸리는 25일간 70년 이상 된 독에서 발효를 시킨다. 이 과정에서 탄산과 막걸리 생균이 많이 생산된다고 한다.
한 모금 삼켜봤는데 탁 쏘는 탄산의 느낌과 달리 샴페인처럼 부드러운 맛이 느껴졌다. 이 술은 서울 핵 안보 정상회의 건배주로 선정되는 등 숱한 행사장 테이블에 올랐다.
또 한 가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이른바 '발효건축'으로 지어졌다고 하는 양조장 건물이다. 여기엔 김씨의 장남 김민규 부대표의 독특한 철학이 녹아있다.
미국 쿠퍼 유니언대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김 부대표는 지역 농산물을 활용해 소비를 일으키고 지역과의 관계도 함께 익어간다는 철학을 담은 '발효건축' 논문을 썼고 그 개념을 고향의 건축물에 적용했다.
볏짚을 태운 숯을 활용해 외부를 검게 칠하고 막걸리를 빚을 때 쓰는 누룩을 활용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 서울 노들섬에 이런 '발효건축'을 적용해 지은 복순도가 노들섬 뮤직라운지를 개설하기도 했다.



◇ 활활 불타오르는 포항
포항에서 먼저 찾은 곳은 3년째 활활 타오르고 있는 '불의 정원'이다.
2017년 남구 대잠동 옛 철길 공원화 공사 도중 새어 나온 가스에 불꽃이 튀면서 붙은 불이 아직도 꺼지지 않고 있다. 이곳 사암층에 천연가스가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포항시는 이 불꽃을 관광 자원화해서 사람들이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전문가들은 이곳에 천연가스가 얼마나 매장돼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다음 들른 곳은 포항시가 야심 차게 내놓은 야시장이다. 포항시 중앙상가 실개천거리 약 260m 구간에 가판대 30여 곳과 수공예품 판매대 등 모두 40개의 가판대가 설치돼 손님들을 맞고 있다.
먹거리 가판대 중에는 가스 토치 등 불을 이용해 음식을 조리하는 곳이 많았다. 야시장은 한마디로 '불쇼'의 연속이었다.
야시장치고는 의외로 가판대가 깨끗하고 위생적으로 관리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날 저녁 메뉴는 물회 맛집으로 알려진 영일대의 한 회 식당에서 만난 대게였다. 게살이 통통한 것이 조금만 더 있으면 살이 꽉 찰 것 같았다.
입안에서는 게와 함께 나온 동해안의 다양하고 신선한 해산물이 함께 어우러졌다. 게장에 밥을 비벼 먹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식사를 마친 뒤 영일대의 한 호텔에 체크인했는데, 바다 건너 호미곶에 자리 잡은 포항제철의 야경이 한눈에 잡혔다.
포항제철은 밤늦게까지도 불을 뿜고 있었다. 이 호텔은 모든 객실이 바다 전망을 자랑한다.
다음날 일어나서 찾았던 곳은 남구 장기면의 창바우 마을이다. 어촌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인데 해산물인 톳을 이용한 톳밥이 유명하다.
'성게 톳밥'을 맛봤다. 할머니가 두툼한 손으로 숭숭 썰어주는 회와 함께 제공되는 톳밥은 바닷냄새가 강하게 났다.
이 동네는 미역이 특히 맛있다고 해서 몇 봉지를 샀다.



해산물 하면 죽도 시장을 빼놓을 수 없다. 함께 여행을 떠났던 여성들은 취재를 제쳐놓고 너나 할 것 없이 죽도시장에서 해산물 쇼핑에 열을 올린다. 그 틈에 끼어 나도 작은 반찬가게에서 500g짜리 간장게장 한 통을 1만원에 샀다.
죽도시장에서 야채 반찬을 팔면서 '야채이모'라는 별명을 얻은 아주머니는 요즘은 간장게장이 잘 나간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서 밥에 비벼 먹었더니 꿀맛이어서 몇 통 더 주문했다.



◇ 어자원 수탈 현장 구룡포를 가다
최근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구룡포에 잠시 들렀다. 포항 앞바다에 툭 튀어나온 호미곶 아래쪽에 있는 구룡포는 일본인 가옥 거리가 있는 곳이다. 구룡포가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 때다.
고기잡이가 시원치 않았던 일본 가가와현 등의 어부들은 물 반 고기 반인 구룡포를 보고는 '엘도라도'라고 부르며 앞다퉈 이곳에 진출했다고 한다.
그들은 고기를 잡는 대로 일본으로 실어날랐고 그렇게 바다 자원의 수탈이 이뤄졌다. 일제의 수탈은 군산 같은 곡창지대뿐 아니라 바다에서도 자행된 것이다.
구룡포 사람들은 해방 후 일제 잔재들을 모조리 없애지 않았다.
구룡포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으로 오르는 계단 양쪽에는 일본인 이름이 쓰인 기둥이 있었다.
포항 사람들은 이 기둥들을 시멘트로 발라 버리고 뒤로 돌려놓았다. 당시 구룡포로 진출했던 일본인들의 이름이라고 한다.
구룡포 근대역사관의 문화해설사는 "일제의 잔재를 없애버리면 후손들이 구룡포 수탈을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이를 없애지 않고 보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룡포 근대역사관은 1920년대 가가와현에서 온 하시모토 젠기치(橋本善吉)가 지은 2층짜리 일본식 목조 가옥이다. 이곳을 찾으면 일제의 바다 자원 수탈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들을 수 있다.



◇ 경주 최씨 가문의 '교동법주'
경주시 교동에는 요석공주와 원효대사의 로맨스가 서려 있다고 알려진 월정교가 있다. 이 다리 건너편에 교촌마을이 있다. 최근 다리가 복원돼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교촌마을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경주 최씨의 고택이 있다.
12대 400년에 걸쳐 부와 명예를 지켜온 경주 최씨 가문에는 '흉년에는 부동산을 구입하지 말라'는 등의 가르침을 담은 '육훈'(六訓)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힘든 이웃들의 처지를 악용해 부를 늘리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이곳을 방문한다면 반드시 맛보아야 할 것이 '신라의 비주(秘酒)'라 불리며 중요무형문화재 제86-3호로 지정된 '교동법주'다.
고택 앞마당에는 350년간 전통주를 발효하는 데 쓰인 우물이 있다.



교동법주는 궁궐의 수라간에서 배운 방법으로 빚었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주원료는 찹쌀과 물, 밀 누룩으로, 곡주 특유의 향기에다 단맛과 약간의 신맛이 느껴진다.
최씨 고택에서 왼편으로 조금만 들어가다 보면 석등이 인상적인 한 카페를 만날 수 있다.
해방 이후 경주 일대 시인과 소설가, 화가들이 즐겨 찾던 문화의 장으로, 예술가들이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곳이다.
문을 열고 구불거리는 내부를 걸어가다 보면 고요한 양반집 뒤뜰이 나온다.
툇마루에 앉아 바깥을 보니 200년 된 앵두나무에 달린 열매가 누렇게 익어 떨어지려 하고 있다.
경주를 찾는다면 한번 다녀오기를 추천하고 싶다. 가을을 맞기 좋은 곳이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polpor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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