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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출신 독립운동가 김세환‧김로적 선생 행적 드러나
수원학생회 문예부 발간한 문예지 향적(向跡) 제2호 분석
2018-08-20 14:05:16최종 업데이트 : 2018-09-03 10:48:22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1936년 5월 수원학생회 문예부가 발행한 153쪽 짜리 문예지인 향적(向跡) 제2호가 있다. 소프트커버에 국한문 혼용이며 가로 15.5cm, 세로 22cm다. 이 문예지는 국내에서 두 권이 발견됐는데 한권은 연세대학교에서 소장하고 있고 한권은 명재연구소(조성만 소장)에서 소장하고 있다. 명재연구소의 배려로 책 내용을 분석했다.

책은 8개의 주제로 구성돼 있다. 첫째 창작(創作)에 박제한(朴齊翰)의 '서울 가는 큰 길', 이묵조(李默鳥)의 '재출발'이란 두 편의 글이 있고, 둘째 역시일속(譯詩一束)에는 김상하(金尙河)가 하이네의 '아담 1세', '독일국 겨울의 동화', 괴테의 '묘비명', 구르몬의 '눈', 투르게네프의 '거지', 시몬스의 '어부의 과부'를 번역했다. 세 번째 평론(評論)에는 4편, 네 번째 에세이에는 3편, 다섯 번째 시와 동요(詩와 童謠)에는 13편, 여섯 번째 작문에는 5편, 일곱 번째 수상(隨想)에는 7편, 여덟 번째 소품(小品)에는 6편 등 총 46편의 글이 담겨 있다.
1936년 5월 수원학생회 문예부가 발행한 문예지 향적(向跡) 제2호 표지

1936년 5월 수원학생회 문예부가 발행한 문예지 향적(向跡) 제2호 표지

글 중에는 시와 동요(詩와 童謠) 편에 팔달산인(八達山人)이란 필명으로 쓴 '화홍문' '연무대' '서호' '방화수류정' '북지' '지지대 등 화성6수(華成6首)가 수원과 관련된 내용이다. 이중 두 수를 소개한다. 화홍문(華虹門)이란 시조는 '일곱갈내 무지개로 일곱선녀 나리시여/ 칠간수 맑은물에 목물하고 오르든곳/ 무심한 달빛만이 푸른이끼 비최더라'. 연무대(鍊武臺)라는 시조는 '기와짱은 깨여지고 주춧돌은 물러섯네/ 나어린 초동의 콧노래 구슲고나/ 그뉘가 이곳에서 소년급제 하였든고'. 이 당시 수원화성은 보호받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는데 글 내용에서도 연무대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글을 쓴 40여 명의 이름을 인터넷에서 교차 검색해봤다. 시와 동요 편에 '추야영초(秋夜詠抄)'란 글을 쓴 구철회(具喆會) 만이 검색이 됐다. 독립운동가로 일본 도쿄에서 항일운동단체인 죽마계(竹馬契)를 조직해 활동했던 구철회(1915-1965)일 가능성이 있어 주목된다.
1936년 5월 수원학생회 문예부가 발행한 문예지 향적(向跡) 제2호에 게재된 광고, '수길사진관', '계명당시계점'의 광고 내용이 재미있다.

1936년 5월 수원학생회 문예부가 발행한 문예지 향적(向跡) 제2호에 게재된 광고, '수길사진관', '계명당시계점'의 광고 내용이 재미있다.

인터넷 인물사전에 의하면 구철회는 1915년 수원에서 출생했으며 수원공립보통학교(신풍초등학교)와 중앙중학교(?)를 졸업하고 1937년 4월 일본으로 유학을 간 후 1940년 3월 도쿄에서 '안병익' '김사복' '이창식' 등 뜻을 같이하는 동지 15명과 함께 죽마계를 조직했다. 죽마계는 민족의식 배양을 통해 독립의식을 고취시키고 경제적 자립을 일궈 조선인의 생활수준을 개선할 것을 목적으로 일본 유학생들이 중심이 돼 활동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듬해인 1941년 6월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으며 1943년 3월 말 도쿄형사재판소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정부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해서 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책 끝에는 '수원학생회연혁보고'가 나온다. 수원학생친목회 조직동기에 대해 '수원에 재적한 중등 이상의 학생이 수 십 명이 넘음에도 불구하고 상호 친목 하는 기관이 없음을 느껴 대정 8년(1919년) 4월에 학생간의 유지자들이 상호 친목과 단체적 훈련을 도모하기 위하여 수원학생친목회를 조직 한다'고 돼있다. 수원학생친목회 창립은 대정 8년 4월에 김세환(金世煥)씨, 김로적(金露積)씨 외 수 인이 발기위원회를 개최하고 삼일여학교에서 발기총회를 열었다. 
1936년 5월 수원학생회 문예부가 발행한 문예지 향적(向跡) 제2호 목차

1936년 5월 수원학생회 문예부가 발행한 문예지 향적(向跡) 제2호 목차

김세환(1888-1945) 선생은 남수동에서 출생한 수원의 대표적 교육자며 독립운동가로 최근 수원시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된 분이다. 평생을 독립운동과 교육 사업에 바쳤고 민족대표 48인 중 1인으로 수원 지역의 3.1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김세환 선생은 '조국의 독립을 성취하는 데 이바지하려면 먼저 학문을 배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삼일여학교(현 매향여중,고)의 기반을 닦고 수원상업학교의 설립을 주도해 후진 교육에 힘썼다. 신간회 수원지회장, 수원체육회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수원에서 민족주의 운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김노적(1895-1963) 선생은 수원면에서 출생한 독립운동가다. 수원박물관 자료에 의하면 김노적 선생은 수원상업강습소 졸업생인데 당시 강습소장인 김세환 선생을 도와 3.1운동에 적극 참가했고 3.1운동을 함께 주도했던 박선태, 이선경 등과 함께 수원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여 자주독립 운동을 위한 모임인 수원진명구락부 임원으로 활동했다.
팔달산인이란 필명으로 쓴 화성6수

팔달산인이란 필명으로 쓴 화성6수

향적(向跡)을 통해 그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수원출신 독립운동가들의 행적을 알 수 있게 됐다. 수원학생친목회는 수원에 본부를 두고 그 외에 오산(烏山), 남양(南陽) 등지에 지부를 설치했다. 수원학생친목회를 통해 표면적으로는 친목을 도모했지만 수원상업강습소, 삼일여학교를 거점으로 조직적인 독립운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

향적 앞뒷면에는 광고가 게재됐는데 '계명당시계점' '수길사진관' '제일사진관' '수원축음기상회' '동양시계점' '선일양복점' '수원화신연쇄점' 등이 성업 중이었던 것으로 예상된다.

향적 연혁에는 1935년 1월 15일 본회 회지 '글밧'을 '향적'으로 개명했다고 기록했다. 현재 글밧이란 책은 발견된 적이 없고 향적 3호 1권이 수원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향적 2호는 정가 20전이고 편집 겸 발행인은 수원학생회 이인석(李仁錫), 인쇄소는 경성부 연건정의 미성사(美成社)로 돼있다. 문예지에 참여한 필자들의 행적을 면밀히 추적하면 일제강점기 수원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으리라 본다.

향적, 수원학생회 문예부, 김세환, 김로적, 구철회,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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