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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장대 시 현판 복원 기대돼
장쾌한 경관에 볼거리와 운치를 더할듯
2019-10-18 11:12:01최종 업데이트 : 2019-11-04 09:32:22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수원화성 화성장대 현판, 정조대왕의 친필 글씨로 호쾌한 기상이 있다.

수원화성 화성장대 현판, 정조대왕의 친필 글씨로 호쾌한 기상이 있다.

며칠 전 수원화성을 산책하던 아는 형이 화성연구회 단체 카톡방에 "화홍문 현판이 사라졌어요" 라는 글을 올렸다. "뭔일?", "다 떼어갔습니다", "교체할 현판 준비 다하고 떼야지 휑하니 민망하네요" 등 몇 건의 글이 올라왔다. 수원화성 현판을 보수 정비한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어리둥절했었다.

팔달산 꼭대기 수원화성 화성장대에 걸려있던 정조대왕의 시(詩) 현판이 복원된다고 한다. 수원시에서 10월부터 '어제화성장대시문' 현판은 복원하고, 장안문, 화홍문 현판 등 9개는 보수 정비한다. 화성성역의궤를 참고하고 원형 현판의 목재 수종 및 안료 등을 정밀 조사해 현판을 복원한다.

장안문, 팔달문, 창룡문, 화서문, 화홍문, 방화수류정, 화성장대, 연무대, 화양루 등 9개 현판은 원형으로 변경 보수하는데 검은색 바탕에 흰색 글자였던 것을 고증에 따라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자로 변경한다. 7일부터 해체를 시작해 내년 2월 다시 달 예정이다.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한 화성장대 시 현판, 내년 2월에 화성장대에 걸린다.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한 화성장대 시 현판, 내년 2월에 화성장대에 걸린다.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화성장대에 시 현판이 걸리면 화성장대 현판 글씨와 더불어 품격을 더할 것으로 기대된다. 화성장대라는 글씨는 정조대왕이 학자로서의 자존감과 당시 정치적 상황의 자신감이 넘쳐나 활달하고도 호쾌한 명작이다. 현판 글씨와 함께 시 현판도 읽어보는 즐거움이 기다려진다. 화성장대에 오르면 수원시내가 다 보일 정도로 장쾌한 경관이 펼쳐져 눈이 호강하는 것은 덤이다.

기자는 e수원뉴스에 여러 차례 '수원화성 팔달문 등의 현판을 원래 모습대로 복원해야하고 시 현판을 복원해 달아야 한다'고 말한바 있다. 수원화성이 훼손되기 전인 1910년대 사진을 통해 현판의 원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모두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였다. 또한 화성장대와 장안문에 정조대왕의 시 현판이 걸려있었다는 기록이 있었기 때문이다. 화성장대 시 현판은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화성성역의궤 권2 '어제'에 수원화성 건축물과 관련해, 화성장대, 방화수류정, 장안문, 팔달문, 동장대에서 정조대왕이 지은 한시 5수가 나온다. '화성장대에서 친히 성 안에서 하는 군사 훈련을 보시고 시를 지어 처마 위에다 쓰다. 1795년 윤 2월 행차 때', '성을 순시하다가 방화수류정에 이르러서 활을 쏘아 맞혀 무예를 높이는 뜻을 보였다. 나는 세 번 맞혔고 내사와 외사도 그와 같이 하였다. 1797년 정월의 행차 때', '장안문 누각에서 총리대신의 운에 화답함. 1797년 행차 때', '좌의정의 팔달문 누각의 운에 화답함. 1797년 행차 때', '좌의정의 동장대에서 한가위 달을 구경하다의 운에 화답함. 1797년 8월 행차 때' 쓴 시가 실려 있다.화성성역의궤 원문 권2, 정조대왕이 수원화성에 대해 지은 한시 5수가 나온다.

화성성역의궤 원문 권2, 정조대왕이 수원화성에 대해 지은 한시 5수가 나온다.

복원의 차원을 넘어 현대적 스토리를 더한다면 정조대왕의 시 원문이 남아있는 팔달문, 방화수류정, 동장대에도 시 현판을 달면 좋을 것 같다. 특히 방화수류정과 같은 아름다운 정자에 시 현판이 없다는 게 이상할 정도이다. 아름다움과 함께 운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명승지에는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는 멋진 정자가 있고 정자에는 여러 개의 현판과 당대 지식인, 시인 묵객들의 시 현판이 걸려있어 주변 풍광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품격을 더한다.

수원화성 건축물에 걸려있는 현판은 9개이며 글쓴이가 알려져 있다. 이중에서 장안문, 팔달문, 창룡문, 화서문, 화홍문, 방화수류정, 화성장대는 수원화성 축성 당시에 현판을 달았다. 화양루 현판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고 동장대는 1873년 경 연무대라는 현판이 달린 것으로 보인다.

화성장대는 정조대왕, 장안문, 팔달문, 방화수류정은 조윤형, 화서문은 채제공, 창룡문은 유언호, 화홍문은 유한지가 썼다. 이중에서 장안문, 방화수류정, 창룡문 글씨는 유실되어 장안문은 양근웅, 방화수류정은 김기승, 창룡문은 이규희가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양루, 연무대 현판은 정조대왕 글씨를 집자한 것이다.

이번에 화성장대에 복원하는 정조대왕의 '어제화성장대시문' 시(詩) 현판은 1795년 윤2월 12일 화성장대에서 쓴 것이다. 일성록에는 이만수에게 명하여 어제시(御製詩)를 써서 내리게 하였고 배종하는 신하들로 하여금 화답하여 지어 올리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홍재전서와 화성성역의궤에도 어제시가 전한다.정조대왕의 화성장대 시를 초서로 쓴 것이다. 근당 양택동 서예박물관장 글씨

정조대왕의 화성장대 시를 초서로 쓴 것이다. 근당 양택동 서예박물관장 글씨

어제시 원문을 번역한 것이 일성록, 홍재전서, 화성성역의궤에 나오는데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화성성역의궤 번역본을 옮겼다.

'華城將臺親閱城操有詩題于楣上(화성장대친열성조유시제우미상)
화성장대에서 친히 성 안에서 하는 군사훈련을 보시고 시를 지어 처마 위에다 씀' 이라는 제목의 시다.

拱護斯爲重 經營不費勞(공호사위중 경영불비노) 城從平地迥 臺倚遠天高(성종평지형 대의원천고)
萬垛䂓模壯 三軍意氣豪(만타규모장 삼군의기호) 大風歌一奏 紅日在鱗袍(대풍가일주 홍일재린포)

현륭원을 호위하는 일 중대하지만, 재용을 허비하지도 백성을 수고롭게 하지도 않았네.
성은 평지를 따라 둘러있고, 장대는 먼 하늘에 기대어 높이 솟았네.
수많은 성가퀴는 규모가 장대하고, 삼군의 의기가 호쾌하네.
한나라 고조의 대풍가 한 곡조를 연주하니, 붉은 해가 비늘 갑옷에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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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장대 시 현판, 수원화성,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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