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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워라! 당수동 시민농장, 추억으로 남아
마지막 수확현장 찾아…내년부터 택지개발로 사라져
2018-11-20 16:44:58최종 업데이트 : 2018-12-03 16:54:30 작성자 : 시민기자   박효숙
호매실동에 사는 한 주부는 지난 여름에 몸이 아파 시골에서 수원에 사는 아들네 집에 올라온 88세 시노모를 모시고 시민농장을 자주 찾았다.

그곳에서 올 가을 코스모스를 원 없이 보았으며 낙엽을 밟으며 노모와 같이 산책을 하면서 이런저런 고부간의 이야기도 주고받는 등  함께 가을을 보낸 탓에 노모의 건강은 몰라보게 회복하게 되었다.

시골 노모는 당수동 시민농장에서 시골 텃밭의 향수를 느꼈으며 고향을 떠나 아들내외 집에서 지내는 외로움도 달랠 수 있었다.  이렇듯 당수동 시민농장에서 고향의 정취를 느끼면서 도시 농부들과 친분도 맺으며 즐거운 나날을 보낼수 있었다.
당수동 시민농장에서 바라본 호매실지구 아파트. 이제 몇년 후면 당수동도 택지개발이 되어 아파트촌이 되겠지...

당수동 시민농장에서 바라본 호매실지구 아파트. 이제 몇년 후면 당수동도 택지개발이 되어 아파트촌이 되겠지...

며칠 전에 88세의 그 할머니와 며느리를 당수동 시민농장에서 만났다.

-당수동 시민농장이 내년에는 권선구 탑동에 있는 옛날 서울대 농업연구소 자리로 이전한다고 합니다. 소감이 어떠신지요?
△ 그동안 저희 어머니께서 고향을 떠나 호매실동에 있는 저희 집에 머무시면서, 고향을 그리워 할 때마다 당수동 시민농장을 찾아 향수를 달래곤 하셨는데, 주민의 한사람으로 참 아쉽습니다. 물론 탑동으로 이사를 한다고 하니 다행이지만, 당수동은 걸어서도 다닐 수 있는 거리라 매일 산책삼아 다니던 길입니다. 저도 서운하지만 특히 어머니께서 너무 서운해 하시네요. 어머니께서 올여름에 많이 편찮으셨는데 당수동 시민농장을 매일 산책하신 이후로 건강을 회복하신 것 같아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데다, 올 가을 코스모스가 당수동 시민농장에서 마지막으로 본 것이라 하니 너무 안타깝습니다. 해가 갈수록 이런 당수동 시민농장 같은 곳이 사라지고 있어 주민의 한사람으로 택지개발이 그렇게 반갑지 만은 않네요!
노부부는 그동안 참 이곳에서 행복하였노라 하시며 시민농장이 없어지는 것을 아쉬워하신다.

노부부는 그동안 참 이곳에서 행복했다며 시민농장이 없어지는 것을 아쉬워했다.

당수동 시민농장 761번 팻말 아래에서 마지막 상추를 수확하느라 바쁜 손놀림을 보이는 노 부부(권선동)를 만나 이런저런 당수동 시민농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수동 시민농장에서 텃밭을 가꾸신 지는 얼마나 되셨고, 내년도에는 탑동으로 이전 된다고 하니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 73세의 내가 69세의 할멈이랑 집에서 우두커니 뭘 하겠어요? 당수동 시민농장이 있어 참 행복했어요. 내가 직접 키운 상추며 가지며 고추를 따는 기쁨이란 이루 말 할 수없이 돈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값진 행복입니다.
권선동에서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며 오는데 농약을 하나도 치지 않고 기른 배추로 김장도 하고, 이렇게 수확하는 재미에 금방 한해가 가는 듯합니다.
당수동 시민농장은 10평 남짓에 년 3만원정도를 내었는데 무척 저렴하지요. 사용료에 비해 토양이 너무 기름져요. 농약을 잘 안 해도 풍성하게 잘 수확할 정도로 토질이 비옥한데 참 너무 아쉽습니다. 이런 곳은 다시없을 것 같네요.
물론 내년 2월에 또 탑동에 이전한 곳에 신청서를 내 보겠지만, 당수동에서의 마지막 수확이니 만큼 눈물도 나려하고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습니다. 마지막 상추 한 잎이 너무 아쉽고 파 한단이 너무 소중해서 마지막 수확을 하면, 꼭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어 먹으려 합니다.
11월 30일까지 농기구를 정리하라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11월 30일까지 농기구를 정리하라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또 다른 옆 고랑에서는 다소 젊어 보이는 도시 농부가 김장을 하기 위해 배추 수확에 여념이 없다. 다가가서 배추를 옮겨주며, 도시농부로서의 당수동 시민농장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배추가 참 탐스럽네요! 김장을 하시려나보군요? 이제 당수동 시민농장에서 수확한 마지막 배추로 담그는 김장이겠네요. 그동안 도시농부로 살아오신 소감과 없어지는 당수동 시민농장에 대한 느낌이 어떠신지요?
△ 당수동 시민농장은 정말 토질이 훌륭한 농장입니다. 돈을 따지지 않고 무농약으로 이렇게 풍성하게 키울 수 있는 농장이 드물다는 생각입니다. 이 동네 가까이 살면서 가장 큰 행복 중에 하나인데,  없어진다니 참 서운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제 서수원에 아파트를 그만 짓고 이런 시민농장을 더 많이 만들었으면 합니다. 점점 도시화되어 가는 서수원을 보며 물론 좋은 점도 있지만, 더 나이 먹으면 더 시골로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질녘 당수동 시민농장에서의 노을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너무 아름다워서요. 예술이라니까요. 허허
노부부가 당수동 시민농장에서 마지막 수확한 상추를 쉽게 먹지 못하고, 당수동 시민농장을 추억한다. 많이 그리울 것 같다

노부부가 당수동 시민농장에서 마지막 수확한 상추를 쉽게 먹지 못하고, 당수동 시민농장을 추억한다. 많이 그리울 것 같다

그동안 농부로서가 아니라 시민으로서 당수동 시민농장을 자주 찾아 왔지만 도시 농부와 취재를 하고보니, 내가 느끼는 서운함의 열배 이상 그들은 그곳에서 작은 행복을 느꼈을 터라, 서운함도 더 남다른 것 같았다. 아직 당수동 시민농장이 문을 닫으려면 조금의 시간이 남아있다. 그동안 한번이라도 더, 이 곳을 찾아 다시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가슴속에 많이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돌아 서려는 순간, 70대 노부부가 나를 바라보며 손짓을 한다.
 
"이거 당수동 시민농장에서 무농약으로 키운 상추와 고추인데, 돈으로 치면 몇천원 밖에 되지 않지만 가족들 먹으려고 정성을 다한 상추야! 버리지는 말고 꼭 잘 다듬어서 상추 겉절이나 해 먹어요. 마지막 수확이라 다 나눠먹고 싶네."

노부부가 다정스레 건네주는 하얀 봉지에는 다소 흙이 묻었지만, 당수동 시민농장에 발길한 것이 행운으로 느껴져 나 역시 가슴 뭉클한 작은 행복을 얻었다. 당수동 시민농장이 결코 사라지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동안 시민들의 가슴 속에 많은 추억으로 자리매김했고, 또 도시농부들은 어딘가에서 작은 행복을 가꿔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당수동 시민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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