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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에도 종로가 있어요…칼국수 한 메뉴로 반백년 지켜
48년 행궁 터줏대감…통닭골목 초입 뒷골목 한자리서 칼국수만 팔아
2018-11-22 11:11:06최종 업데이트 : 2018-12-03 16:54:55 작성자 : 시민기자   서지은
종로 칼국수 전면 간만

종로 칼국수 전면 간판

종로 뒷골목 48년 된 칼국수 집

언론 보도로 유명해진 통닭 골목에 진입하기 직전 종로 뒷골목에 아는 사람만 아는 칼국수 집이 있다. 종로는 서울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종' 있는 곳은 모두 종로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해 준 이곳 칼국수 집 이름은 '종로 칼국수'다. 음식점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골목에 입간판이 없어서 가게 앞에 가야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이곳은 가게 정면에 간판이 2개 걸려 있다. 하나는 전화번호가 '6'으로 시작하는 국번을 가진 간판인데 칼국수 집 역사를 보여주는 증거다. 허름한 옛 간판과 빛나지 않는 새 간판 2개를 가진 이곳은 1971년부터 48년 째 한 자리에서 영업 중이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칼국수 집을 찾아온 게 맞나 싶은 마음에 문을 나와 간판을 다시 보게 된다. 벽이 없는 입구 쪽을 제외한 3면이 바닥부터 천장까지 책으로 가득 차 있고, 뉴에이지 음악이 흐르는 좌식으로 된 칼국수 집. 요즘 음식점처럼 깔끔한 인테리어가 아닌 손 때 묻은 낡음이 포근함을 풍기는 이곳은 언제부터 칼국수 집이 아닌 것 같은 모습이었을까?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

책이 가득하고 뉴에이지 음악이 흐르는 칼국수 집

"내가 서울에서 15년 전에 여기로 왔지. 옛날 말로 급살 맞았다고 해서 죽을 뻔 했는데 저 사람이 날 구해줬어. 그러니 어째.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을 도와야지. 늘 대접만 받던 사람이 남한테 음식을 대접해 줘야하니까 별 수 있나 공부해야지. 음식 관련 책을 사서 보기 시작했는데 재료학 같은 대학 교재들도 사서 봤어. 그게 쌓이다 보니까 나중에는 대학 교수들도 나한테 와서 자문을 구했지. 교수들은 이론에만 능하지만 실무 경험이 없잖아."

주방에서 칼국수를 요리하는 할머니에게 생명을 빚졌다는 할아버지는 서빙 담당이다. 이곳에 처음 클래식 음악을 튼 것도 할아버지다. 손님들이 칼국수 집에 무슨 음악이냐고 했지만 처음 3개월은 무반주 곡을 틀고 그 다음에는 아리아를 틀었다고 한다.

 "손님들 귀에 익숙한 아리아를 틀어주니 반응이 오더라고. 그러고 나선 뉴에이지로 바꿨지. 뉴에이지는 히피에서 나온 건데 젊은 시절에 히피 음악을 듣던 손님들은 좋아하지. 칼국수라는 음식이 원래 젊은이들보다 40, 50대 이상이 먹는 음식이야. 요즘이야 웰빙 바람을 타고 바지락 칼국수네 뭐네 있지만 옛날에는 뭐 그랬나. 가마솥에 한 가득 맹물을 끓인 다음에 밀가루 반죽해서 밀어가지고 밭에서 야채 뽑아다 숭덩숭덩 넣고 먹었지."

전국에서 맹물로 칼국수 끓이는 집은 우리 집 밖에 없을 거라며 할아버지는 잔치국수에 얽힌 밀가루 음식에 대한 역사까지 이야기해 주신다. 할아버지가 쏟아내는 해박한 식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어떤 곳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이 집만의 귀한 메뉴다. 30년 발걸음해야 비로소 정회원이 되는데 그런 회원들만 들을 수 있는 얘기란다. 
음식 관련 책들

음식 관련 책들

칼국수를 맹물에 끓이게 된 사연

종로 칼국수 주방장이자 사장님은 올해 77세인 이동연 할머님이다. 나이 서른에 이곳에 자리를 잡고 칼국수를 팔기 시작해 지금까지 혼자 주방을 맡고 있는 할머니는 맹물로 칼국수를 끓이게 된 이유를 다르게 말씀하셨다.

 "우리 할아버지가 국수를 좋아하셨어. 점심에도, 저녁에도 국수를 드셨지. 처음 해 보는 가게인데 뭘 할까 하다 많이 해 본 걸 하자 해서 칼국수를 했는데 어떻게 해얄지 모르겠더라고. 닭육수도 내봤다가 사골 육수도 내봤다가 했는데 가게 월세 내기도 힘들더라고. 그때 어떤 스님이 우리 집 단골이었는데 어느 날 오셔서는 국수에 바지락을 넣어보라는 거야. 바지락이 오므리는 형상이라 손님을 모을거라나. 나가시면서 올해는 손님 좀 오겠다고 하시는데 교회다니는 예수쟁이라 안 믿었지. 그래도 바지락 넣어보는 건 좋겠다 싶어서 고명처럼 몇 개 넣기 시작했는데 그 해 손님이 좀 오더라고. 월세 걱정 안 해도 됐지."

이후 할머니는 줄곧 감자, 호박, 당근 같은 기본 야채에 바지락 몇 개를 올려주는 옛날식 칼국수 조리법을 유지하고 있다. 칼국수가 3000원이던 시절, 배추 값이 8000원으로 올라 재료비 때문에 빚을 지고 다 갚는 데 10년이나 걸렸던 고비도 있었다. 행궁동 상권이 죽은 이후 가게는 계속 어렵다.
사장님이자 주방장인 이동연 할머니

사장님이자 주방장인 이동연 할머니

"여기가 처음 들어올 때는 중심 상권이어서 옛날 백조아파트 두 채 값을 권리금으로 내고 들어왔어. 근데 상권이 죽고 나니 가게에 손님도 끊겼지. 가게 초기에 오던 중년들은 이제 대부분 하늘나라 갔고 90세 이상 된 노인 분들 7명이 아직 한 달에 한 번 정도 와. 가게 유지할 만큼 버니까 내 몸 성한 동안에는 해야지."

노는 건 죄라는 생각을 하는 세대라며 일 년에 하루도 쉬지 않고 가게 문을 열다 요즘은 그래도 1,3주 일요일에는 가게 문을 닫는다. "한 달에 두 번만 쉬고 일하는 게 힘들지 않냐"는 물음에 할머니는 "이 나이에 움직일 수 있는 게 행복하다"고 흐뭇해 한다. 인생에 여러 고비를 넘으면서 얻은 건 세상살이에 대한 포용이라는 할머니는 "사람들은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지만 난 그냥 지금 이대로 계속 앞으로 나갔으면 좋겠어"라고 한다.
맹물에 야채를 넣고 끓인 칼국수

맹물에 야채를 넣고 끓인 칼국수


맛의 기억으로 먹는 통닭과 닮았지만 다른 칼국수

관광객이나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행궁동 근처 대표 먹거리는 통닭이다. 통닭 골목은 방송에도 여러 번 나오고 수원 대표 먹거리다. 수원에 이사 온지 얼마 안 됐을 때 인터넷에서 수원지역 유명 맛집을 찾아보는 데 통닭이 대표 먹거리로 나와서 의아했다. 자영업 중 가장 많이 생겼다 없어진다는 치킨집, 우리나라 대표 음식도 아니고 수원지역 고유 음식도 아닌데 어떻게 대표 먹거리가 됐을까? 통닭 골목에 가서 직접 먹어보고 나서 알았다. 이곳은 치킨이 아니라 통닭을 팔기 때문에 대표 먹거리가 됐다. 닭을 조각내 각종 향신료를 섞은 튀김옷을 바르고 기름에 튀긴 치킨이 아니라 닭을 통째로 튀겨 종이봉투에 넣어주는 통닭. 지금 20, 30대에게는 새로운 치킨, 40대 이상에게는 향수를 부르는 통닭이다.

통닭 골목에 가려진 종로 칼국수 집에도 맛의 기억을 따라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다.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광고하지 않아도 아는 사람만 오는 곳, 여름에는 콩국수 그 외 계절엔 칼국수만 팔기에 메뉴판도 없는 곳. 할머니 건강이 다하면 문을 닫을 그곳 칼국수는 내 기억에 없는 맛이고 익숙한 맛도 아니다. 그런데도 아늑하고 정겹다. 한 사람이 반백년이란 시간동안 하나의 메뉴를 가지고 운영해온 음식점이 앞으로 50년 안에 또 생길까? 대를 이어 가는 집은 많아도 홀로 지키는 집은 없을 거다. 

행궁동의 흥망성쇠를 종로 뒷골목에서 묵묵히 칼국수를 끓이며 바라본 이동연 할머니의 일상은 우리가 들여다 볼 수 있는 수원의 또 다른 역사다.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킨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가을의 끝자락에서 칼국수 국물과 함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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