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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문화제】 사람을 만나는 ' 정조실감' 이야기 콘서트
최태성과 함께…유여택에서 300명 이상 관객 정조대왕 역사에 몰입
2019-10-05 10:57:40최종 업데이트 : 2019-11-04 10:01:10 작성자 : 시민기자   김청극
마지막 곡 '비상'을 부르는 국악그룹 '이상'

마지막 곡 '비상'을 부르는 국악그룹 '이상'

4일, 제56회 수원화성문화제 둘째 날이다. 한낮의 더위는 아직은 가시지 않았지만 오후 6시가 되니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어 온다. 저녁7시 한무리 관람객들이 신풍루 정문에서 줄을 지어 차례대로 유여택(維與宅)에서 있을 '정조실감' 이야기 콘서트 장으로 향한다. 유여택은 평상시에 화성유수가 거처했다가 정조가 행차 시에 잠시 머무르며 신하를 접견하던 곳이다.
 
의자는 150여개가 놓여 있었다. 이미 자리가 차 앉을 수가 없었다. 선선한 가을바람과 함께 분위기가 매우 차분하고 안정적이었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 속에 멀리 서장대의 불빛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앞에서 세 번째 줄은 5자리가 게스트 석으로 아무나 앉을 수가 없다. 거미의 히트곡이 흐른다. 이어서 박보검의 '내 사랑'이 장내를 채웠다. 프로그램 평가제를 도입하여 지난해 시민과 관광객의 호응도가 낮았던 프로그램은 과감하게 폐지 또는 개선했다. 수원의 역사적 가치를 더 높이기 위해 신설된 프로 중 하나가 '정조실감' 이야기 콘서트이다.

그래서 그런지 7시30분 시작 전 의자에 앉은 사람보다 서 있거나 바닥이나 주위에 기대 앉은 사람이 더 많았다. 줄잡아 300명 이상이었다. 무료 입장이어 제한을 두지 않았다. 어른 틈에 어린이들도 상당수 껴있었다. 아직 시간이 남아 옆 사람과 이야기를 했다. 홍숙희(여, 65세수원시 파장동)씨는 "지동시장에 들러 점심식사를 한 후 인터넷을 하다가 이 곳에 왔다"고 한다. "다른 쇼를 보려고 했는데 표가 매진되어 여기에 왔다"며 "어제 개막식은 별로 재미없었다"고 시큰둥한다. 보다 청중과 가까와지려는 큰별샘 최태성 역사강사

청중과 보다 가까워지려는 큰별샘 최태성 역사강사

드디어 최태성 역사 강사가 진행자로 나왔다. 자신을 간단하게 소개했다. 먼저 워밍업 시간이다. 강사는 이야기쇼는 관객과 맞장구를 쳐야 한다고 하며 음악이 맘에 들고 기분이 좋을 때는 "얼씨구 좋다!"라고 환호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야기 콘서트여서 멋진 음악을 빼놓을 수 없다. 고즈넉한 정취를 즐기기 위해 국악그룹 '이상'이 함께 했다. '서울타령'을 연주했다. 가야금, 장구, 해금, 피리, 드럼 등 아기자기한 우리의 것들이었다.
 
최태성 강사는 맨 먼저 정조대왕의 인간적인 면모를 말하며 마치 정조대왕이 앞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 했다. 관객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조선시대 역대의 임금 중 안경을 낀 왕이 누구냐?"고 물었다. 좀 엉뚱한 질문인 듯 했다. 어느 초등학생이 뒤에서 "영조"라고 했다. 틀린 답이었다. 정조가 답이었다. 진행자는 실록을 보면 재미있는 기록이 많다고 하며 세종대왕은 듣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약간 의외였다. 예를 들자면 "경의 뜻은?" 이런 것이었다.

이어서 "조선시대 가장 오래 산 왕은 누구냐?"고 물었다. 영조는 정조의 조부로 83세까지 가장 오랜 산 임금이었는데 지금 나이로 환산하면 120세가 된다고 했다. 이렇게 오래 산 건강비결은 역시 소식과 채식이었다고 했다. 정조대왕이 자주 쓰는 표현으로는 "공부 좀 하시게"였다. 그 만큼 정조는 똑똑하고 어려서도 장난감이 책이라고 했다. "무슨 책 몇 페이지 몇째 줄에 답이 있다"고까지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진짜 찾아보니까 정확했다고 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이야기에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의아해하는 모습이었다. 주자(朱子)의 글에 자신의 의견까지 말했다고 전해진다. 주자의 글에 토를 달 정도로 지식과 학문에 능통했다.
 
보통은 왕이 어려서 신하로부터 학문과 지식을 배우는데 정조는 직접 "내가 그대들을 가르치겠다"고 했단다. 그래서 초개공신(初開功臣)의 제자가 바로 정약용인 것이다. 정조는 11세 때 아비의 죽음을 보았고 11번이나 살해의 위험을 이겨내야 했다. 왕이 된 후 최초로 한 말이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했다. 
멀리 서장대의 불빛을 바라보며 300명은 역사이야기에 심취했다.

멀리 서장대의 불빛을 바라보며 300명은 역사이야기에 심취했다.

7시55분경 정조의 효심을 떠 올리며 다시 연주를 들었다. 음악의 내용도 '내 마음 뜻대로... 가슴 아픈 것, 어제는, 오늘은...;감미로운 음악이 장내를 휘어 잡았다. 지루함으로 자리를 움직이거나 떠드는 사람이 없이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만큼 정조이야기는 관심이 매우 높았다.
 
8시 정각에 계속된 이야기는 정조의 사람을 사랑하는 예를 구체화했다. 침실에서도 사또로부터 즉 각 마을의 사건 사고를 세세히 기록하고 대비를 했고 '백성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는 것을 습관적으로 여긴 왕이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 마음을 가다듬었다. 매년 수령에게 연두교서(年頭敎書)와 같이 할 일을 꼼꼼하게 채근했다고 한다. 이처럼 백성만을 생각한 임금이었다.
 
최 강사의 소개로 염태영 수원시장이 단위로 올라왔다. 깜짝 토크가 이루어졌다. 염태영 시장은 "수원시민이면 정조의 DNA가 흐를 것이고 정조의 특별함을 이해할 것입니다"라고 두 번이나 말했다. 최 강사는 정조대왕과 시장을 비교해 평가해 달라는 다소 어려운 주문을 했다. 답변으로 "시장으로 별로 잘하는 것이 없지만 시간이 가면 시민이 평가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정조와 관련하여 수원화성에 특히 역점을 두는 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했다. 답변으로 화성행궁 유적을 복원하는 일이며 화령전이 8월 29일에 국가보물로 지정된 것을 예로 들었다.
정조의 백성사랑과 효심을 강조하는 염태영시장

정조의 백성사랑과 효심을 강조하는 염태영시장

최 강사는 밤에 버스를 타고 이곳을 오며 야경이 너무 아름다워 반했다고 했다. 염시장은 정조대왕을 닮고자하는 마음으로 축제를 즐기고 아프리카 열병으로 프로그램이 축소된 것이 못내 아쉽다고 했다. 그러나 소형의 알찬 프로그램이 많으니 많은 시민이 참여하여 즐기는 축제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강사는 수원시가 정조대왕 때부터 인인화락(人人和樂), 호호실실(戶戶實實)의 삶을 실천했는데 부자가 되려면 만석의 농사를 짓기 위해 많은 물이 필요했다고 했다. 그래서 만석 저수지 등이 그때 생긴 것이다. 특히 두 집 건너 한 집에 소가 있어 수원갈비가 유명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수원을 상업도시로 하기 위해 상인에게 무이자로 대출을 해주었던 일도 빼놓지 않았다. 왕의 행차 다섯째 날에는 불취부귀(不臭不歸)란 단어와 같이 취하지 않으면 돌아갈 수 없다는 뜻으로 이번 축제도 흠뻑 빠져 버리거나 취해 버릴 것을 강력하게 권했다.
 
이제 마지막 곡으로 조상과 정조가 지킨 새가 비상한다는 노래 '비상'을 연주했다. 앵콜곡으로 잘 알려진 춘향가의 '사랑가'를 불러 박수를 받았다.
역사이야기가 끝난 후에도 사인을 받기위해 몰려든 사람들

역사이야기가 끝난 후에도 사인을 받기위해 몰려든 관람객들

공식적인 행사가 끝났어도 많은 어린이들이 부모와 함께 최 강사의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지었다. 서울에서 세 가족이 함께 온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은 강사로부터 두 번째 사인을 받고 사진을 찍은 후 도망가듯 빠져나갔다. 약 1시간 가량 진행된 이야기콘서트가 흥미롭게 진행됐지만 진행스타일이 더 많은 질문을 주고 받고 재미있게 했으면하는 바람이었다. 정조의 애민사상과 효의 정신은 시민의식에 깊게 자리잡고 있음을 느끼게하는 자리였다. 밤 8시 37분에 끝났지만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는 여운이 있는 역사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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