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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 특집】 베트남 전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
베트 남 전에서 우리의 현재를 보다.
2019-06-29 10:15:53최종 업데이트 : 2019-08-06 11:00:28 작성자 : 시민기자   서지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휴양지로 자주 방문하는 베트남은 1960년부터 1975년까지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으로 나뉜 가운데 미국의 개입으로 국제전을 띈 전쟁을 치른 나라다. 전쟁이 끝난 지 불과 44년 밖에 되지 않은 베트남 해변에서 여유를 즐길 자격이 우리에게 있을까? 베트남 전에 참전했던 분들이 70대를 넘어선 지금, 우리나라는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다는 역사의 오류를 되짚어 봐야한다.

베트남 전에 참전했던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기자의 아버지는 가난한 집 맏아들로 돈을 벌기 위해 베트남 전에 참전했다. 아버지 바로 아래 작은 아버지도 참전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돈을 번다는 게 지금으로선 이해가 가지 않지만 6.25 전쟁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나라는 미국의 원조가 절실했고, 베트남 전 참전 권유를 거부할 수 없었다. 우리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도 논밭 한 떼기 없는 9남매 장남, 차남으로 몸 받쳐 돈을 벌어야 해서 전장으로 나갔다. 전쟁의 참혹함, 이념 전쟁으로 인한 비극, 다른 나라 내전에 타국이 간섭하는 것은 주권을 침해하는 일이라는 것 같은 사유는 두 분 모두 하지 못 했다.
베트남 전에 참전했던 기자의 아버지 사진

베트남 전에 참전했던 기자의 아버지 사진


다행히 두 분은 부상 없이 고국으로 돌아왔고 이후 전쟁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참전 용사, 국가 유공자도 신청하지 않았다. 베트남 전과 관련된 그 무엇도 거부했다. 악몽 같은 전쟁이 기억되는 어떠한 일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후회했다. 힘들어 하셔도 살아 계실 때 더 많이 물을 걸 그랬다. '아버지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때 당신의 선택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이며 살아 돌아와줘서 고맙다'고 말해 드리고 싶다. 그래서 주변의 다른 분을 찾았다. 베트남 전에 다녀온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록하는 일, 그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주위에 베트남에 참전한 분을 수소문 했다. 

"아버지, 이모부 모두 참전하셨는데 인터뷰는 못 하시겠데요. 이야기하면 그때 일이 떠올라서 힘들다고 하세요."(권선동, 문지영)

주변의 반응은 아버지와 비슷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기에 말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그러나 우리는 들어야 하고 그 분들은 꺼내야 한다.
베트남 전 참전 당시 장장곤 씨 모습

베트남 전 참전 당시 장장곤 씨 모습


위생병으로 근무했던 장장곤 씨
"저는 위생병으로 있어서 전장 한 가운데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부상도 안 당했고 다른 분들에 비해 험한 꼴을 안 당했는데 제가 무슨 이야기 거리게 되겠어요?"

장장곤 씨는 인터뷰 첫 마디에 자신은 크게 한 일이 없다고 했다. 전쟁에서 크게 한 일이 없는게 가장 큰 공로이기에 이야기를 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장장곤 씨는 처음 한국에서 군 입대해 6주간 위생병 교육을 받고 자대 배치를 받았다. 지역 감정으로 이유없이 때리는 선임자의 구타가 심해 베트남 전에 지원했다. 위생병이라 전장에 직접 참여하는 게 아니니 다칠 일은 없겠지 싶어 선임자의 구타를 피해 지원한 베트남 전. 총알이 오가는 전쟁터 보다 내 정강이에 찍히는 군화가 더 전쟁 같았던 장장곤 씨는 맹호부대 의무중대에서 위생병으로 근무했다.

현재 장장곤 씨

현재 장장곤 씨

"의무중대에서 대민진료를 나갈 때가 있었어요. 도시에 가서 베트남 민간인 환자를 치료해 줬는데, 어느 날 베트남 처녀가 온 몸이 멍들었더라고요. 알고 보니 같은 마을 사는 이웃이 베트콩인데 한국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때린 거예요.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같은 민족을 저렇게 만들다니 전쟁이 참 처참하다는 걸 느꼈어요. 그 처녀는 우리가 치료를 해줬지만 이틀 후에 결국 죽었어요."

장 씨는 전쟁 터에서 부상 당한 군인과 사망자를 보면서 전쟁의 끔찍함을 평상 시에 잘 기억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평화로울 때 평화를 지키려면 전쟁의 처참함을 떠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마을에 사는 이웃집 베트남 공산당원에게 맞아 죽은 처녀 이야기는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불과 70여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베트남은 그런 비극을 딛고 통일을 이루었지만 우린 여전히 총칼을 겨누고 있다는 게 다른 점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베트남 전은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가 참전해 죽을 고비를 넘긴 전쟁이다. 그렇다면 베트남 사람들도 한국군을 그렇게 기억할까?

한편 전쟁 중에 미군 등에 의해 미라이 학살, 빈호아 학살, 퐁니 퐁넛 양민 학살 등 베트남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었다.

포탈 사이트에서 '베트남 전'을 검색하면 두산백과에 나오는 설명 중 한 부분이다. 미국 편에 베트남 전에 개입한 국가는 한국, 타이, 필리핀,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여러 나라지만 학살은 미국을 비롯한 일부 나라만 기록돼 있다.
베트남에서 온 김은하 씨와 둘 째 딸

베트남에서 온 김은하 씨와 둘 째 딸


"제가 한국 사람이랑 결혼한다고 할때 저희 어머니의 반대가 가장 심했어요. 아마 베트남 전 당시 한국군에 대한 이미지가 안좋았기 때문일거에요."

올해로 결혼 11년 차인 김은하 씨는 한국에 온 지 10년이 넘었다.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고 경기도 콜센터에서 베트남 상담 업무를 하고 있으며 대학원 공부도 하는 그녀는 베트남 전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는지 들어봤다.

"베트남에서는 승리의 역사로 기억하기 때문에 미국에 대한 분노, 증오심은 강조하지만 한국이 참전했다는 건 말하지 않아요. 역사 시간에 베트남 전에 개입한 나라로 미국, 중국 정도가 나오고 한국은 없어요. 제가 한국에 와서 한국이 참전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미국에 승리한 것을 강조하기 위해 한국군이 참전했고,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피해 사실을 베트남 정부는 밝히려 하지 않는다. 민간인 학살이 자신들의 치부이며 치욕의 역사라는 생각에 정부는 역사에 기록하지 않고, 우리 정부는 공식 사과를 하지 않았다. 민간 차원에서 사과와 베트남 전 희생 민간인 위령제에 참가는 있었다.

"베트남에 베트남 전쟁 관련 박물관이 있는데 민간인 학살한 자료가 그대로 남아 있어요. 사진을 보면 정말 끔찍해서 적개심이 생기고 분노하게 돼요. 하지만 언론에는 이런 게 나오지 않아요. 저처럼 북쪽에서 자란 사람들은 더 잘 모르고, 남쪽 사람들은 자신의 부모님이나 친척이 당한 일이니 저 보다는 많이 알 거에요."

베트남 전에서 한국군이 저지른 일부 잘못, 이것을 우리가 사과하고 풀지 못한다면 일본에게 사과 받는 일 또한 떳떳하지 못할 것 같다.

베트남에서도 총칼을 겨눈 남과 북
"베트남 안에서도 북쪽과 남쪽 분위기가 많이 달라요. 저처럼 북쪽에 사는 사람들은 공산당이 통일한 걸 자랑스러워합니다. 그런데 남쪽 사람들은 미국 원조로 잘 살고 있었는데 공산당이 통일해서 다시 밑바닥부터 시작하게 돼 힘들다는 사람들도 있어요. 통일은 됐지만 이념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통일 된지 50년도 안 됐으니 이념 문제가 왜 없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하나의 나라에서 갈등하고 있는 것이기에 희망적이다. 서로 싸운 아픈 과거가 있지만 치유할 수 있다. 

또 하나 베트남 전에 우리가 남베트남을 지원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던 것처럼 북한은 북베트남을 지원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다. 우리는 베트남에서 가서도 같은 동포 끼리 총칼을 겨누고 싸웠던 거다. 통일되지 않은 나라, 전쟁이 끝나지 않은 우리나라는 한반도가 아니어도 어디서든 적으로 만날 수 있다. 휴전이 아닌 종전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장곤 씨와 김은하 씨를 통해 각기 다른 베트남 전에 참가한 한국군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돈을 벌기 위해, 구타에서 벗어나 살기 위해 전쟁에 나갔던 우리 아버지와 장장곤 씨. 그들에게 전쟁에서 저지른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순 없다. 이건 국가 단위에서 해야 할 일이다. 

같은 민족 간 이념 전쟁이 냉전체제 속에서 세계 전 양상을 띄었던 베트남 전쟁. 베트남은 이 전쟁에서 통일을 이루었다. 비슷한 과정을 겪었지만 우린 아직 전쟁 중이고 통일을 이루지 못 했다. 베트남 전쟁을 이야기하다 보니 자꾸 우리 상황이 겹친다. 남북 분단이란 숙제가 끝나지 않는한 우리에게 전쟁은 끝나지 않은 현재 진행형의 이야기다. 6월, 호국 보훈의 달에 우리가 새겨야 할 역사는 지금도 우리의 분단과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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