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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풍루에서 정조대왕 출궁의식 재현, 위풍당당 발걸음
드론 띄워 유튜브로 생중계…취타대와 기마대, 200여명 군사들로 장관
2018-10-08 10:10:53최종 업데이트 : 2018-10-29 08:56:58 작성자 : 시민기자   김청극
중부지방은 태풍 콩레이가 남긴 상처가 그리 크지 않은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서울시, 수원시 화성시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경기도가 후원하는 제55회 수원화성문화제는 5일부터는 순조롭게 프로그램 하나하나가 내실있게 진행됐다.

이번 수원화성문화제는 '인민화락, 여민동락의 길' 이란 주제로 수원시가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 철학과 잘 부합하였다.
 
'2018 정조대왕 능행 차' 첫 날 행사인  6일 오전10시 창덕궁의 출궁식은 59.2km 전 구간의 서막임을 알렸다. 첫 날 서울구간은 강북구간이 취소되었지만 시흥행궁까지는 무리없이 진행되었다.

7일 일요일 아침 수원시내 도로는 비교적 한산하였다. 수원구간(화성행궁부터 대황교동)과 화성구간(대황교동부터 융건릉)으로 나누어 시간을 달리하여 능 행차를 재현하였다.
 
태풍이 언제 왔는지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전형적인 가을날씨였다. 화성행궁 광장 오전 9시 정조대왕의 능행차에 참여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특이하며 형형색색의 복장은 가벼운 설렘을 느끼게 하였다. 이미 화성행궁부터 비행장 삼거리까지는 9시10분부터 10시50분까지 교통통제가 되었다. 화성시 방향 2개 차로가 통제되었다. 경기지방경찰청 소속 모범 운전자들의 노고가 컸다.
 
능행차, 정조가 24년 재임하는 동안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화산(花山)으로 이장한 후 13번에 걸쳐 이루어진 참배의 길이다. 정조대왕은 1795년 을묘년인 윤 2월9일부터 16일까지 8일간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수원을 방문했다. 12일에는 사도세자의 묘인 현륭원을 참배하였고 13일에는 아버지와 동갑인 어머니의 회갑연을 열어 효행의 근본을 보였다.

이러한 정조대왕의 효심과 나라사랑의 마음을 재현함으로써 함께 공유하는 행사가 '2018 정조대왕 능 행차'이다. 이러한 행차가 시사하는 바는 단순한 관람에서 벗어나 시민이 직접 주도하고 참여해서 과거와 미래를 잇는 성숙한 시민의식이라는 것이 바탕에 깔려있다. 
신하들이 기다리는 정조대왕의 능행차를 위한 출궁의식

신하들이 기다리는 정조대왕의 능행차를 위한 출궁의식

정조대왕의 출궁의식이 시작되었다. 비교적 간단하였다. 신풍루(新豊樓)에는 수많은 카메라맨들이 몰렸다. 정조의 입장을 기다리는 신하들, 드디어 문이 열렸다. 정조대왕이 나타났다. 위풍도 당당하게 주변의 경호를 받으며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키가 크고 건장하여 기풍이 대단하였다. 수원문화재단  박흥식 대표이사가 시 한수를 올렸다. 이 나라가 무궁하게 번창하며 왕의 번영을 기원하는 내용이었다. 
말을 타기 위해 주변의 백성들을 보며 앞으로 향하고 있다.

정조대왕이 말을 타기 위해 주변 백성들을 보며 앞으로 향하고 있다.

이어서 왕은 먼 길의 행차를 위해 말에 올라탔다. 그런데 흰색의 말이 극도로 불안하여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허둥대는 바람에 왕은 그만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하마터면 크게 다칠뻔 하였다. 마부는 어쩔 줄을 몰랐다. 할 수 없이 마부는 말을 바꾸러 갔다. 주변은 시끄럽고 떠들썩하였다. 시간이 지체되었다. 황색 말을 데리고 왔다. 역시 극도로 흥분하여 왕이 자리를 잡을 수 없었다. 다시 또 다른 황색의 말을 데리고 와서야 비로소 정상을 찾았다.  왕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이제 혜경궁홍씨가 출발을 위해 가마를 탈 차례이다. "가마가 옛 것이 아니어서 타기가 번거롭고 타는 모습이 이쁘지 않으니 사진만큼은 찍지 말라"는 당부의 말이 있었다. 모든 출발 준비가 완료되었다. 능행차 재현행렬은 이제 정상적으로 서서히 남문 방향으로 행진했다. 아리랑곡의 연주에 맞춰 출발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200여 명 중에는 정규 군인들이 포진되어 있어 더욱 질서정연하였다. 
남문을 지나자 거리에는 시민들의 환호가 쏟아진다.

남문을 지나자 시민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드론을 띄워 유튜브로 생중계까지 하였다. 맨 앞에 국정을 총괄하는 내각의 수반이 되는 총리대신들 말 7필, 기수들, 국방의 친병을 통솔하는 무관인 금군별장, 수어사, 대왕13명, 혜경궁홍씨, 군대 담당이 분주했다. 취타 대원 담당 스텝 역시 바빴다.

정조대왕의 누이인 청연군주 그리고 청선군주, 병조판서들 기수40명, 얼굴을 가린 어우동 역할의 6명, 이들은 몽골사람으로 흰색말 1필, 노랑말 1필, 검정말 4필이었다. 남문이 가까워지자 주변의 경치는 고전적인 색채가 뚜렸했다. 취타대와 수많은 말, 신하들과 군사들이 뒤따르는 도로는 장관을 이뤘다. 시민들은 열띤 박수를 보냈다.  역사와 문화가 숨쉬는 곳이었다.
능행차 행렬에는 총리대신 7명이 앞장서다

능행차 행렬에는 총리대신 7명이 앞장섰다.

꼬마의 손을 잡고 온 어머니는 "교육적으로 큰 공부가 된다"하며 흐뭇한 표정이었다. 어느덧 정조대왕 대열은 매교동 다리. 인파가 적은 듯하여 아쉬움은 있었다. 조금을 지나 세류동에 다다랐다. 거리에 나온 정동선(남, 71세)씨는 "이런 행사가 수원시를 발전시키고 협동심과 번영을 위해 좋다"고 하였다. 세류2동에서 온 이영희(여,72세)씨 역시 "수원시의 발전을 보는듯하여 기쁘고 즐겁다"는 소감 한마디를 했다. 거리에 나온 시민들은 행렬을 매우 반기는 분위기였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질서를 담당하는 한 여성 스텝은 20필의 말을 관리하는 전문 관리사였다. 말의 종류를 물으니 더러불럭이라 하였다. "이 말은 승마용인데 경마장의 말과는 약간 품질이 떨어진다고 하며 마부가 익숙하지 않아 말이 말을 잘 안 듣는 것 같다"고 하였다. "국산말로는 한라말 즉 조랑말이 무난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번 왕의 행차에는 몽골 사람이 24명이나 참가하였다. 그들은 말을 다루는 솜씨는 비교적 익숙하였다. 이들을 관리 책임을 맡은 가나(고향은 몽골 삿황)씨는 몽골 수도인 울란바트르에서 1200km 떨어진 곳에서 왔는데 "이러한 행사가 보기 좋고 보람이 된다"고 서툰 한국어로 말하였다.
 
시간이 지나자 사람도 힘들고 말도 몹시 힘들어 "푸푸! 푸푸! "하며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그래도 처음 출발할 때보다 어느 정도 습관이 되어서인지 말들은 무리없이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았다. 안전사고도 없어 무엇보다 다행이었다. 세류 전철역 근처를 지나자 목적지가 얼마 안 남았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교통경찰관과 모범운전자들이 합동으로 질서정리를 해 주었다. 비행장삼거리에서 대황교동까지 10시30분부터 11시30분까지 양방향 모든 차선을 통제해 행렬은 큰 불편이 없었다.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환호하고 박수하는 모습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가는 차량 모두가 신호에 잘 따라주는 성숙함을 보였다.

몇몇의 스텝진과 대화를 나누었다. 오늘을 위해 준비한 상황을 물으니 준비는 했지만 수원시의 역사적인 배경이나 이 행사의 목적, 가치와 역사성 등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음에 놀랐다. 함께 한 시민기자 역시 공감하였다. 
수원과 화성경계에서 표식기교대 의식후 융건능으로 향하고 있다.

행렬이 수원과 화성경계에서 표식기교대 의식후 융건능으로 향하고 있다.

주변의 풍경은 다소 황량한 가운데 수원시와 화성시가 만나는 대황교동에 다다랐다. 표식기 교대 및 출정의식이 있었다. 여기에서 융건 능으로 향하는 준비된 행사요원들이 질서정연하게 대기하고 있었다. 또 다른 정조대왕을 만날 수 있었다. 잘 정돈된 요원들은 훈련된 군사와 크게 다를바 없었다. 이번 축제가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위상이 높아가는 것에 뿌듯함이 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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