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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 특집】 "역사 잊는 이들에겐 미래 기대 못해"
전몰가족 김석우씨, "아버지와 같은 하늘 아래서 1년 4개월 함께 해"
2019-06-07 11:42:41최종 업데이트 : 2019-06-19 10:55:48 작성자 : 시민기자   심춘자
6일 오전 수원 현충탑(인계동)에서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을 갖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며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렸다.
추념식에는 국가유공자 및 유가족, 일반시민, 학생 등이 참석한 가운데 묵념, 조포발사. 국민의례를 시작으로 헌화 및 분향, 추념사, 헌시 낭송, 추모공연, 현충의 노래 제창 순으로 진행됐다. 분향을 희망하는 유가족 및 일반시민들은 식순이 끝난 다음에 자유롭게 진행했다.
제64회 현충일 추념식

제64회 현충일 추념식

이날 추념식은 수원시 생활공감정책모니터단원이 오전 8시 30분에 집결하여 급수봉사를 했다. 현충일 추념식 급수봉사는 9년째 이어지고 있다. 준비한 음료는 시원하게 마실 수 있는 매실차와 따뜻하게 마실 수 있는 믹스커피와 녹차였다. 추념식에 참석하는 분들은 식장에 들어가기 전에 대부분 음료수를 마셨다. 단원들은 참석하는 분들에게 반갑게 인사하며 음료를 대접했다.
그 가운데 2016년부터 수원시 생활공감정책모니터단원으로 급수봉사에 참여한 김석우씨(68세 매탄동)를 만났다. 커피와 녹차를 쉽게 탈 수 있도록 준비작업을 하고 있었다.
급수봉사하고 있는 김석우씨(왼쪽)

급수봉사하는  김석우씨(왼쪽)

김석우씨의 부친은 6.25 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으며 휴전이 임박해질 즈음인 1953년 6월 11일 김화전투에서 이등중사로 전사했다. 
김석우씨는 어린 시절 조부모님의 보살핌 속에서 자랐다.
"우리 아버지가 1929년생이니까 24살에 전사했다. 결혼하고 입대했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한번 휴가 나왔는데 그 일로 내가 세상에 나왔다. 같은 하늘 아래서 꼭 1년 4개월을 함께했는데 아버지 얼굴을 한 번도 못 봤다. 유일하게 아버지의 모습이라면 5사단 마크가 새겨진 군복 입은 작은 증명사진이 하나 있었다. 그걸 확대해서 지금 영정사진으로 쓴다."

매년 현충일이 돌아올 때마다 마음이 착잡하다. 묘지가 없어 찾아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휴전이 임박할 1953년 6월 당시 김화전투는 무척 치열했다고 한다. 5사단 이등중사였던 부친은 부대원들과 함께 전사했는데 아직 유해를 수습하지 못했다. 어른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그 부대가 전멸 당했다고 한다. 그렇게 나라를 위해 희생했는데 말뚝이라도 꽂아놓고 절할 곳도 없다. 오로지 국립묘지 지하 헌화하는 곳에 희생자 십몇만 명단 중에 이름 하나 밖에 없다. 이름 찾기도 힘들고 절할 곳도 없어서 서럽기도 하고 마음이 안 좋다."

성장기 아버지의 부재가 아직도 아버지라는 이름이 낯설게 느껴진다.
"젊은 조부모님 아래서 삼촌들과 함께 자랐다. 그때는 너나 할 것 없이 어렵게 살 때였다. 흰 쌀밥은 구경도 못하고 하루에 두 끼만 먹고 살았다. 가끔 아버지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생각을 의식적으로 안 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아버지라는 이름이 아직도 낯설게 느껴진다."

현충일을 단지 휴일 정도로 아는 세태가 곱게 보이지 않는다.
"6.25 때 남한 젊은 병사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치열하게 맞서지 않았더라면 큰일이 벌어졌을 수도 있었을 텐데 기억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세월을 따져 봐도 그리 오래된 과거가 아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증인들이 아직도 살아있는데 지속적인 안보교육이 필요하다. 역사를 잊는 국민들에게는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6.25전쟁으로 희생 된 아버지의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서운했던 마음을 매년 현충탑에서 유가족들을 위한 급수봉사를 하고 있다.

6.25전쟁으로 희생 된 아버지의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서운했던 마음을 매년 현충탑에서 유가족들을 위한 급수봉사를 하고 있다.

외롭고 힘든 시간을 김석우씨는 시스템 안에서 바른생활을 하면서 살았다.
"살면서 반듯한 생활 태도로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았고 철도공무원으로 앞만 보고 40년 동안 근무했다. 가끔 아버지가 있었으면 남들처럼 막걸리도 함께 마시고 여행도 함께 다니고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철도공무원으로 40년 근무하고 2010년 정년퇴직 했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직장 밖에 몰랐다. 우연히 자원봉사를 시작하면서 보람과 만족을 느끼는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자연사랑 자원봉사 단체 대표로 정자동 주간보호시설에서 정신장애인들의 활동보조 봉사를 3년째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매주 하루는 같은 직장 퇴직자로 구성된 자원봉사 단체원으로 광교호수공원 방문자 안내 및 모니터링, 환경정화,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있다."
그 외에도 버드내복지관에서 스마트폰 이용이 어려운 노인들에게 스마트폰 사용법을 가르쳐주고 수원시 생활공감정책모니터단으로 생활 속의 불편함을 개선 위한 제안 및 민원 활동에도 열심히 임하고 있다.
염태영 수원시장과 수원시 생활공감정책모니터단

염태영 수원시장과 수원시 생활공감정책모니터단

6.25전쟁으로 희생 된 아버지의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서운했던 마음을 매년 현충탑에서 유가족들을 위한 급수봉사를 하고 있다. 한 잔 한 잔 음료를 대접하는 김석우씨의 손길이 더 애절하게 보였던 것은 개인적인 기우는 아니었을 것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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