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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정리의궤, 어떤 가치가 있나
수원화성박물관 한글 정리의궤 역주 발간
2020-06-04 15:11:02최종 업데이트 : 2020-06-05 09:10:06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한글 정리의궤 원본, 정본, 역주본

한글 정리의궤 원본, 정본, 역주본

기자는 2018년 제55회 수원화성문화제와 2019년 제56회 수원화성문화제의 주요 프로그램 중 하나인 '수원화성 낙성연'의 시나리오를 썼다. 낙성연(落成宴)이란 1796년 10월 16일에 열렸던 수원화성 준공을 축하하는 잔치로 수원화성문화제의 정체성을 오롯이 담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한글 정리의궤를 깊이 연구하고 낙성연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낙성연의 절차를 완벽하게 복원해 재현할 수 있었다.

최근에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수원화성박물관 역사자료총서 6 현륭원 조성 230주년 기념 출판 '정리의궤(整理儀軌) 역주(譯註, 번역과 주석을 달았다는 의미)'를 발간했다. 정조대왕 을묘년 수원행차 220주년 기념 출판 '원행을묘정리의궤 역주', '상덕총록 국역', 수원화성 완공 220주년 기념 출판 '화성성역의궤 역주', '현고기 국역', 정조대왕 즉위 240주년 기념 출판 '정조대왕의 수원행차도'에 이어 여섯 번째 발간이다. 한글 정리의궤 역주 발간은 특히 수원에서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원행을묘정리의궤

원행을묘정리의궤


의궤란 조선시대에 왕실이나 국가의 중요한 행사를 기록하고 정리해 체계적으로 분류해 만든 책이다. 정조대왕은 1794년 12월에 현륭원(정조대왕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에 행차하는 일을 주관하는 정리소(整理所)를 설치하였고, 1795년에는 어머니 혜경궁홍씨를 모시고 현륭원에 행차하고 화성행궁에서 회갑잔치를 거행한 일을 의궤로 간행하기 위해 정리의궤청을 설치했다. 이후 1794년에 시작해 1796년 완공한 수원화성 축성에 대한 의궤를 정리의궤청에서 간행하게 하였다. 정리의궤란 정리의궤청에서 현륭원 행행(行幸, 왕의 행차)과 화성성역에 관한 일을 모두 기록한 의궤라고 할 수 있다.

한글 정리의궤는 1901년에 출간된 모리스 꾸랑(Maurice Courant, 1865-1935)의 '한국서지(韓國書誌)'에 소개되었다. "정리의궤 13책은 2절판, 매우 정성들인 필사본, 1조는 29-33, 2조는 34-36, 3조는 39-40, 4조는 46-48이 있는데 완전본은 전 48책인 듯하다. 39책은 수원을 매우 세밀히 소개하는 그림을 싣고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1981년에 프랑스 국립 동양어학교 도서관에 소장된 한국학 관계 고문헌 목록 및 서지를 조사, 작성한 기록이 한글학회에서 발간한 문학한글 제11, 12호에 보이는데 한글 정리의궤 12책에 대해 수록했다. 이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추진한 '해외전적 조사사업'의 도움으로 2002년에 마이크로필름으로 복제했다.

화성성역의궤

화성성역의궤

1994년 7월 한국서지를 번역한 이희재는 서문에서 "국내외에서 한국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성서와도 같은 존재로 일컬어지는 모리스 꾸랑의 한국서지는 그 출판 백여 년이 된 오늘날까지 불어독해가 가능한 일부 학자들의 점유물이었을 뿐 막상 그것을 가장 활용해야할 우리의 학계에서는 그 구체적 내용에 대해 거의 무지에 가까운 상태에 있었다"고 썼다.

기자가 한글 정리의궤에 대해 안 것은 2008년 한국학 중앙연구원 옥영정 교수의 '새자료 한글본 정리의궤의 서지학적 분석과 역주'란 연구 보고서를 보면서였다. 이 보고서에는 12책에 대한 역주가 상세히 나와 있어 화성성역의궤, 원행을묘정리의궤, 홍재전서, 일성록, 정조실록과 비교하면서 여러 차례 읽었다.

한글 정리의궤는 29권-32권 까지는 1796년 1월 2일부터 1796년 2월 14일까지 '병진년 원행'을 기록했다. 33권은 1796년 6월 11일부터 1797년 윤6월 18일까지 '혜경궁홍씨 탄신경하'를 기록했다. 34권-36권 까지는 1797년 1월 25일부터 1797년 8월 16일까지 '정사년 원행'을 기록했다.

한글 정리의궤

한글 정리의궤

 
39권은 '화성전도' 등 총 79점의 채색된 그림과 '각항일시'가 나오는데 '화성성역의궤' 권수의 시일, 좌목 등이 한글로 날짜순서로 기록되어 있다. 그림 중에서 '봉수당도', '장락당도', '복내당도', '유여택도', '낙남헌도', '노래당도', '미로한정도', '신풍루도', '동장대시열도'는 한글 정리의궤에만 나오는 귀중한 자료이다.

40권은 1793년 12월 6일부터 1794년 4월 6일까지 '화성성역 제1'을 기록했다. 46권-48권 까지는 1795년 9월 27일부터 1797년 1월 29일까지 '화성성역 제7, 제8, 제9'를 기록했다.

한글 정리의궤는 전체 48책으로 구성된 것인데 현재 13책만 남아있다. 편찬 체계와 내용을 보면 정조대왕의 현륭원 행행과 화성성역을 기록한 것이다. 1책부터 38책은 행행, 39책부터 48책은 화성성역을 기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수원화성박물관에서 발간한 책들, 왼쪽부터 원행을묘정리의궤, 화성성역의궤, 한글 정리의궤

수원화성박물관에서 발간한 책들, 왼쪽부터 원행을묘정리의궤, 화성성역의궤, 한글 정리의궤


한글 정리의궤는 원행을묘정리의궤, 화성성역의궤의 구성 체계와는 다르게 날짜순으로 기록했고 형식을 보면 한문을 한글로 번역한 게 아니다. 한문 원본을 한글 독음으로 표기한 것도 보이지만 대부분은 순수하게 당시의 한글로 표기한 것이어서 당시의 한글 표기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이다.

2018년 수원시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본' 정리의궤 39 성역도 채색본 1책'과 프랑스 국립동양어대학 언어문명도서관 소장본 '정리의궤 12책' 등 총 13책을 복제해 수원화성박물관에서 공개했다. 1책씩만 복제해 아쉬웠는데 이번에 전체를 책으로 발간한 것이다.

이번에 발간한 한글 정리의궤는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은 원본으로 직접 붓으로 쓴 글씨이다. 편찬 당시의 아름다운 궁서체로 되어있지만 해독하는 게 쉽지 않다. 2권 '정서(正書)'는 옛 한글로 된 원문을 한자를 병기하고 띄어쓰기를 추가해 수록했다. 3권이 역주본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수원화성,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유네스코 세계유산 수원화성,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화성성역의궤에는 '어제성화주략'에 해자(垓字, 성벽 밖에 인공으로 땅을 파 물을 채우거나 자연하천을 이용해 적을 막는 시설로 호참(壕塹)이라고도 한다) 마치 판 것처럼 기술하고 있어 많은 연구자들이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한글 정리의궤에는 수원화성에 왜 해자가 없는지에 대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나온다.

"상께서 내리신 주략을 받든 처음에 먼저 해자 파기를 강론하여 겸하여 흙 쓰기를 취하였더니 삼태기와 삽이 일제히 모여 모래와 석각이 두루 드러나 공사비용은 점점 많아지고 일은 더욱 더디게 진행되어 마지못해 땅 파는 역사를 그만두었다. 이제 남성 바깥과 북문 곁에 절로 생긴 깊은 개천이 있고 서산 뒤와 동성 아래에 또한 절로 긴 구덩이가 만들어져 있으니 비록 한 성을 두른 참호는 아니나 충분히 땅을 따로 굳게 지킬 수 있다" 수원화성에 해자가 없는 수수께끼가 자연스럽게 풀린 것이다.

한글 정리의궤에는 원행을묘정리의궤, 화성성역의궤에 나오지 않는 귀중한 내용이 많이 있다. 많은 시민들이 읽어서 다양한 콘텐츠로 활용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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