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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둥그런 등불이 켜지는 시간
백영수 작품전 ‘백 년을 거닐다’ 수원시립미술관에서
2020-05-21 23:38:22최종 업데이트 : 2020-05-22 11:07:36 작성자 : 시민기자   유미희


백영수의 대표작 '모자'

백영수의 대표작 '모자'

백영수 작품전이 열리는 수원시립미술관을 찾았다. 코로나에 갇혀 갑갑해 하는 문화시민을 향해 미술관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느라 사전예약을 받아 입장 인원을 제한하고 있었다.

 

수원시립미술관이 올해 기획전으로 진행하는 《백 년을 거닐다: 백영수 1922~2018》 전시회는 지난 12일부터 시작되었다. 백 년에 가까운 96세를 살다간 화가의 일대기를 조명하는 전시회다.

요즘 공공장소를 방문할 때 당연시되는 절차들, 발열 체크와 손 소독을 하고 방명록에 인적사항을 적었다. 예약을 확인하던 직원은 수원시민이냐 묻더니 입장료를 할인해 주었다. 행궁 광장 옆에 있어 늘 지나다니면서도 시립미술관 방문은 처음이다. 대체로 여유롭고 쾌적했다.
 

1층의 제1전시실은 '백영수의 삶을 거닐다'라는 주제로 전시관을 꾸몄다. 이 공간은 화가의 창작 세계를 소개하고 그동안의 업적을 영상과 기록물로 보여주고 있다. 들어가며 바로 마주치는 것은 화가 생전에 작업하던 작업실 모습이었다.

2011년 파리에서 귀국하여 머물던 의정부 자택의 작업실 물건들을 배치하여 재현한 것으로 그가 사용하던 이젤과 붓, 물감, 의자, 작은 연필 등이 보인다. 쓰다남은 물감통과 깔개 등이 작업실의 표정을 나타내는 듯 정감이 갔다.

전시실에 귀국 후 의정부 작업실을 재현해 놓은 모습이다.

전시실에 귀국 후 의정부 작업실을 재현해 놓은 모습이다.

전시실 벽면에는 1998년 파리 아틀리에에서 촬영한 <모성의 나무>와 2001년 <귀로> 제작과정이 담긴 영상물을 볼 수 있었다. 또 김윤섭 미술평론가 등 백영수 화백을 기억하는 지인들의 인터뷰 영상을 보여주었다. 백 화백의 삶과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백영수는 1922년 수원 교동에서 태어났다. 두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와 함께 일본의 삼촌 댁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자라면서 미술을 공부한다. 1944년 귀국한 후 개인전을 열며 활발한 창작활동을 이어간다. 그는 소월 시집이나 박목월 시집, 김남조 시집 등 유명 시인의 시집에 삽화를 그리기도 했고 문학지의 표지도 그렸다.

유럽 여러나라에서 열린 전시회의 포스터와 도록들

유럽 여러나라에서 열린 전시회의 포스터와 도록들


연대기순으로 100여점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제2전시실.

연대기순으로 100여점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제2전시실.

1977년 뉴욕을 거쳐 파리에 정착한다. 유럽 각국에서 개인전을 열며 열정적인 작품 활동하다가 2011년 귀국했다. 2018년 96세로 사망할 때까지 의정부에 살며 쉼 없는 활동을 계속했다. "그림 속에 있지 않으면 나는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다."라는 그의 말에서 그와 그림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1전시실 맞은 편에 2전시실이 있다. 1전시실이 작가의 삶에 대한 기록이라면 2전시실은 작품을 보여주는 곳이다. 194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의 작품들을 연대기 순으로 보여준다. 그동안 열었던 백영수 개인전 중 가장 큰 규모다. <가족> <모자> <귀로> <소년> <피리부는 사람> <여름> 등 100여 점이 전시되었다.

별처럼 화사한, 작품 '모성의 나무'

별처럼 화사한, 작품 '모성의 나무'

전시실 벽 한 면을 채우는 작가의 말이 있었다. "갑자기 깨끗한 벽지가 너무나 고와 보였다. 나는 뒹구는 연필을 집었고, 방바닥에 누운 채 벽 모서리에서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주로 사람을 그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누워서 그리는 그림이라 바로 서 있는 사람, 거꾸로 서 있는 사람, 옆으로 쓰러져 있는 사람 할 것 없이 계속 그렸다. 크게 그리지는 않았지만 한참 정신없이 그리다 보니 벽이 반 이상을 늘어놓은 연작 그림이 되었다. 참 기분이 좋았다. 벽지의 냄새가 좋았다."
 

백영수의 작품을 둘러보며 느낀 감정들은 따뜻함이었고 그리움이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 같은 동그랗고 긴 얼굴, 옆으로 누인 갸우뚱한 얼굴들, 아기를 업거나 안고 있는 엄마, 그림 한구석에 등장하는 새와 강아지 같은 동물들. 이런 것들을 보고 있으면 기다림이라던가 어쩌면 외로움 같은 감정도 느껴졌다. 제목이 모자(Mother and Child)라고 붙은 엄마와 아들 그림이 참 많았다. 차분하고 안정적인 구도가 주는 평온함도 좋다.

연대기 중 후반브로 갈수록 밝은 색으로 표현된 작품들이 보인다

연대기 중 후반부로 갈수록 밝은 색으로 표현된 작품들이 보인다

2011년 작품 <귀로>는 아기를 업은 모자의 모습을 그렸다. 그런데 아기는 수염이 난 늙은 얼굴이다. 왜 노인의 얼굴이냐고 물었더니 이 나라를 떠날 때 아기였던 자신이 돌아오는 귀로에는 수염이 나고 주름진 노인이 되어 있지 않냐고 설명하더라는 일화가 있다. 평생 그림에 전념했고 그림을 그릴 수 있어 행복했지만 늘 모정을 잊지 않고 그리워한 화가의 마음은 그림을 통해 충분히 느껴졌다.

 

전시회 소식을 접한 것은 온라인 카페였다. 백영수 전을 홍보하는 브로슈어에 올라온 작품 <귀로>에서 받은 인상 때문에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림의 이미지가 이중섭 화백을 생각나게 했고 이태준 씨의 따스한 그림책 <엄마 마중>도 떠올랐다. 4전시실에서 만난 <마라케시 풍경>이라는 작품을 보는 순간 머릿속으로 조지 오웰의 산문 '마라케시'가 소환되었다.
작가가 의도한 것이 무엇이든 예술작품을 마주한 관객은 자신이 기억하는 온갖 인상적인 것들을 떠올리며 연결한다.

작품전 포스터.

작품전 포스터.

백영수 작품전은 우리 맘속에 가라앉았던 포근한 감정들, 부모, 가족, 고향, 어린 시절 같은 것들을 불러내어 잠시나마 마음의 경계를 풀게 만드는 힘이 있다. 어디서 본듯한 그림 속 동그란 얼굴을 마주할 때, 사회적 거리 두기로 굳어진 마음이 미소 짓게 될지도 모른다.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에서 열리는 《백 년을 거닐다: 백영수 1922~2018》 기획전은 5월 12일부터 8월 9일까지 열린다. 수원시립미술관 홈페이지 (https://suma.suwon.go.kr)에서 사전예약으로 진행된다. 관람 시간은 화요일부터 일요일 10:00~19:00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전시에 대한 문의는 031-228-3600으로 하면 된다.
백영수전이 열리고 있는 수원시립미술관 SIMA

백영수전이 열리고 있는 수원시립미술관 S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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