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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더스] 익산에서 섬세한 백제를 만나다
2020-07-05 10:30:02최종 업데이트 : 2020-07-05 10:30:02 작성자 :   연합뉴스


서동요의 주인공 무왕이 세웠다는 유명한 석탑을 보기 위해 익산 미륵사지를 찾았다. 드넓은 잔디밭 우측으로 최신식 티가 나는 탑이 하나, 왼쪽에는 쌓다 만 듯한 반쪽짜리 탑이 하나 보일 뿐이었다.
더위를 뚫고 한참을 더 걸어가니 90m 거리를 두고 당간지주 2개가 서 있었다. 당간지주란 절에서 당을 걸어두던 깃대의 지주다. 잠시 더위를 피하기 위해 오른쪽 탑 밑에 들어가 왼쪽 탑을 쳐다보니 미처 복원하지 못한 기물들이 번호표를 달고 바닥에 줄 서 있었다. 절에서 쓰던 기둥과 바닥 돌들이다.
미륵사지의 미관을 고려해 지하에 만든 박물관에 들어갔다. 이곳에는 미륵사를 복원한 모형이 있는데, 조선 시대 궁궐처럼 모든 건물을 연결해 놓았다. 어마어마한 규모는 물론이고 궁궐처럼 아름답고 웅장했다.
반쪽짜리로 나를 실망하게 한 석탑은 알고 보니 국내에 남아 있는 석탑 중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크며, 한국 석탑의 기원이 되는 탑이었다. 또 미륵사는 고통과 죄악의 윤회에서 민중을 구원하기 위한 상징물이었다.
화강암을 반듯하게 잘라 목탑을 쌓듯 석재를 다듬고 쌓아 만들었다. 그리고 새처럼 날개를 달아 하늘을 향해 드리웠다. 미륵을 맞기 위해서였을까? 미륵사에서 나온 유물들로 꾸며진 박물관은 꼭 추천하고 싶은 코스다.
산세가 너무 아름다워 화산(華山)이라 불리는 산 중턱에 '나바위 성당'이 있다. 화산 산줄기 끝자락에 광장처럼 너른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의 이름을 따 나바위라고 불렀다. 성당에 들어서니 중국 상하이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입국한 한국인 첫 사제 김대건 신부를 기리는 동상이 보인다.
나바위 성당은 한국식과 서양식 건축 양식이 혼합된 특이한 모양이다. 앞면은 3층 수직 종탑과 아치형 출입구로 꾸며졌고, 지붕과 벽면은 전통 목조 한옥 형태다. 기와지붕의 처마 위마다 십자가를 세워 놓았다.
성당 뒤편의 야트막한 계단으로 올라가니 금강 황산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망금정이 나왔다. 망금정 옆의 커다란 돌에는 삼존불이 새겨져 있는데 오랜 세월 비바람에 깎여 윤곽이 또렷하진 않았다.
하지만 성당에 삼존불이 있다는 것만으로 놀라웠다. 이는 작은 절이 있던 자리에 성당을 지었기 때문이다. 한쪽에는 프랑스 신부의 묘도 있었는데 한국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에 따른 것이라니 한국 사랑이 무척 컸던 모양이다.
나바위 성당으로부터 10km에 걸쳐 강변 포구 길과 성당포구 길이 있다. 산과 강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성당포구 길은 드넓은 습지도 마음껏 볼 수 있다. 자전거 동호인들이 무척 선호하는 길이다.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며 걸을 수 있고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바람개비가 어서 오라고 손짓하듯 열심히 돌아간다. 풍경이 좋으니 사진을 찍으면 모두 화보 같다. 마음까지 뻥 뚫리는 금강을 끼고 바람개비 길을 열심히 걸었다.
교도소는 범죄자들이 가는 곳이다. 그런데 익산에는 일반인들이 가는 교도소가 있다. 영화와 드라마 촬영장소로 쓰이는 국내 유일의 교도소 세트장이다. 이곳에서만 200여 편의 영화·드라마가 촬영됐다고 한다.
실제와 흡사한 교도소 모습에 절로 감탄이 터졌다. 입장하는 곳엔 검색대가 있고, 옆에는 법정이 있는데 판사석과 방청석 면회실까지 마련돼 있다. 옷도 빌려주므로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교도소 벽에는 수많은 수갑이 걸려 있다. 수갑으로 고백하는 곳이다. 많은 연인이 수갑을 차고 고백했는지 담마다 빽빽하게 걸려 있었다.
회색의 높은 담장이 주위를 둘러싼 교도소 세트장은 폐교를 활용해 만들었다. 운동장에는 잔디가 깔려 있고 축구 골대도 있다. 2층으로 꾸미고, 독방과 다인실을 오픈했는데 잠깐의 체험이라도 자유가 정말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스락'은 순우리말로 으뜸, 정상을 뜻한다. '우리 전통이 으뜸'이라는 의미에서 지은 고스락 농장에도 갔다. 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햇빛, 바람, 물이 좋아야 하는데 고스락 전통 장은 이 3가지 조건을 모두 갖췄다.
약 2만5천 평의 소나무 숲에 3천500여 개의 전통 항아리가 놓여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50년 이상 된 이 항아리들은 전국 각지에서 모았다고 한다. 간장은 3년간 숙성시키는데, 황토에 항아리들을 반쯤 묻어놔 잘 익은 간장 냄새가 풍겼다.
고조선의 마지막 왕이 배를 타고 도착해 내린 뿌리가 백제의 30대 왕인 무왕 때 꽃으로 피기까지 천년의 향기로 발전해온 익산. 고조선에서 이어진 백제의 향기가 천 년 전의 바람으로 남아 있다.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이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익산'이라고 표현했듯이 섬세한 백제를 만날 수 있는 익산 여행이었다.

[마이더스] 익산에서 섬세한 백제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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