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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zine] 가을을 붙잡는 3가지 방법 ② 산속 미술관에서 명상에 잠기다
2020-09-17 08:35:21최종 업데이트 : 2020-09-17 07:30:13 작성자 :   연합뉴스

건축, 예술,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진 '뮤지엄 산'
(원주=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자연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인간이 만든 조형물과 어우러질 때 더 큰 울림을 주기도 한다.
고즈넉한 산속에 자리 잡은 '뮤지엄 산'은 그런 울림을 선사하는 공간이다. 자연과 건축, 예술이 하나로 어우러진 풍경 속에서 사색과 명상에 잠길 수 있다.
◇ Space, Art, Nature
서울에서 1시간 30분가량 떨어진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해발 275m의 그리 높지 않은 산 정상 7만여㎡의 부지에 뮤지엄 산이 자리 잡고 있다.
이름 그대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의 품에 안긴 미술관 겸 박물관이다.
한솔문화재단이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게 설계를 의뢰해 2013년 건립했다.
산(SAN)이라는 이름은 공간(Space), 예술(Art), 자연(Nature)의 영문 첫 글자를 딴 것이기도 하다. 건축(공간)과 예술과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진 장소를 의미한다.
이곳에서는 내부에 전시된 유물과 작품뿐 아니라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건물과 정원도 눈여겨봐야 한다.
박물관·미술관 투어와 별도로 건물과 정원에 대해 설명하는 건축 투어가 마련되어 있을 정도로 공간 자체가 중요한 관람 포인트다.
매표소가 있는 웰컴센터에서 나와 돌담을 따라 입구로 들어서면 드넓은 정원이 펼쳐진다. 뮤지엄 본관 건물 주변에 조성된 네 개의 테마 정원 중 꽃을 주제로 한 '플라워 가든'이다.
정원을 둘러싼 산과 진홍빛 패랭이꽃이 수 놓인 잔디, 그 위에 우뚝 서 있는 거대한 붉은색 조형물. 탄성을 자아내는 풍경이다. 강렬한 붉은색 조형물 덕분에 초록빛 자연의 생동감이 더욱 살아난다.
언뜻 보면 팔 벌리고 서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새를 형상화한 마크 디 수베로의 작품이다.
제라드 먼리 홉킨스의 시 '황조롱이 새'에서 영감을 받아 커다란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비상하는 황조롱이 새를 표현했다.
이 작품이 진가를 발휘하는 순간은 바람이 불 때다. 팔처럼 보이는 아치 부분이 상하좌우로 빙글빙글 돌면서 마치 새가 날갯짓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광활한 플라워 가든은 좁은 자작나무 숲길로 이어진다. 180여 그루의 자작나무가 수국, 부용화 등과 어우러진 오솔길이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오솔길을 걷다 보면 콘크리트 담과 돌담이 십자로 겹친 또 하나의 게이트를 만나게 된다.
게이트를 통과하면 담에 가려져 있던 '워터 가든'이 눈 앞에 펼쳐진다. '와∼'하는 감탄사가 또 한 번 나오는 순간이다.
워터 가든은 바닥에 검은 자갈을 깔고 물을 채워 만든 수(水) 공간이다. 총 1천500평에 달하는 '워터 가든'이 뮤지엄 본관 건물의 3분의 2가량을 감싸 안고 있어 마치 건물이 물에 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맑은 날에는 수면 위로 미술관 건물과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이 그대로 비친다.
워터 가든의 비현실적인 풍경을 완성하는 것은 알렉산더 리버먼의 작품 '아치형 입구'(Archway)다. 아치 모양의 거대한 붉은색 조형물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 서 있다.
열두 조각의 강철 파이프를 이어붙여 만든 작품으로, 뮤지엄 본관으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한다.
플라워 가든에서 자작나무 숲길로, 워터 가든으로 공간이 바뀔 때마다 극적인 장면 전환이 이뤄지면서 관람객의 탄성이 나오는 것은 안도 다다오의 설계 덕분이다.
그는 한정된 부지 안에서 다양한 시각적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동선을 일부러 복잡하게 구부리고 의도된 벽과 담을 설치했다.
하나로 이어진 여러 공간을 한 번에 보여주지 않고 담으로 시선을 적절히 차단해 차례로 하나씩 보여주는 것이다. 담에 뚫린 좁은 입구를 지나 확 트인 정원을 만나는 순간 관람객이 느끼는 극적인 효과는 배가된다.
◇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다
본관 건물 외벽은 안도 다다오가 즐겨 쓰는 노출 콘크리트가 아니라 누런빛의 자연석으로 마감되어 있다. 덕분에 산으로 둘러싸인 주변 풍경과 이질감 없이 잘 어우러진다.
본관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2층 건물 네개 동이 각각 □, △, ○ 모양의 중정으로 연결된 형태다. 방대한 야외 정원 못지않게 규모가 상당해 구석구석 제대로 보려면 시간이 제법 걸린다.
각 동은 돌로 된 커다란 박스 안에 노출 콘크리트로 된 여러 개의 작은 박스(전시실)가 들어 있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종이 박물관인 페이퍼갤러리 4개관, 미술관인 청조갤러리 4개관, 판화 체험을 할 수 있는 판화 공방, 안도 다다오의 건축 세계를 소개한 안도 코너 등 여러 개의 전시실이 1층과 2층을 오가며 마치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다.
전시실에서 나와 다음 전시실로 향하는 복도는 한 템포 쉬어가는 공간이다. 잠시 벤치에 앉으면 창밖으로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종이 박물관 1전시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커다란 창 너머로 워터 가든이 보였다.
2층에서 창을 통해 내려다본 정원은 아래에서 본 것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거대한 '아치형 입구'가 물 위에 그대로 비쳐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보인다.
야외 정원을 지나며 봤던 풍경들도 이처럼 건물 내부에서 창을 통해 다른 각도로 바라보면 새롭게 다가온다. 건물 내부의 복잡한 동선에도 건축가의 의도가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 페이퍼갤러리와 청조갤러리
본격적인 뮤지엄 내부 관람은 종이 박물관에서 시작해 판화 공방, 미술관으로 이어진다.
종이 박물관은 2층의 정사각형 중정에 위치한 파피루스 온실에서 시작한다. 고대 이집트에서 파피루스지를 만들 때 쓴 식물 파피루스를 4계절 내내 볼 수 있도록 조성한 공간이다.
이어지는 네 개의 전시실에서는 종이의 역사와 함께 종이로 만든 다양한 유물을 볼 수 있다.
두 번째 전시실은 조선 시대까지 사용했던 다양한 한지 공예품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종이를 구긴 다음 기름칠을 해 만든 귀주머니, 종이에 옻칠해 방수 효과를 낸 조족등(밤길 발밑을 비추는 등) 등 종이의 다양한 쓰임새를 보여주는 유물 12점이 전시되어 있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종이로 만든 요강이다. 혼례를 치르러 먼 길을 떠나는 신부가 가마 안에서 사용했던 것이라고 한다.
방수를 위해 기름칠한 종이로 만들었는데, 실제 사용할 때는 안에 여러 겹의 천을 덧대 썼다고 한다. 종이로 만들어 가볍고 소리가 잘 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종이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1층으로 내려가면 판화 공방이 있다. 판화 작품을 통해 다양한 판화기법을 접하고 직접 체험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판화 공방은 4개의 미술 전시실로 구성된 청조갤러리로 이어진다. 평소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고 이인희 전 한솔그룹 고문이 평생 모은 컬렉션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원형의 중정에 마련된 백남준 홀은 미술 전시실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공간이다. 한솔문화재단이 소장한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 10여점이 주기적으로 교체돼 전시된다.
9.5m 높이의 천정에 뚫린 둥근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더한다.
상설전시관에서는 국내 거장의 회화를 다양하게 접할 수 있다. 재단이 소장한 이중섭, 김환기, 박수근, 김창열 등 거장들의 작품이 1년여 주기로 번갈아 전시된다.
◇ 명상과 사색의 공간
청조갤러리까지 내부 관람을 모두 마치면 다시 야외로 나오게 된다. 돌을 테마로 한 정원 '스톤 가든'이다.
신라 고분을 모티브로 해 만든 돌무덤 형태의 조형물 9개가 조각 작품과 어우러져 구불구불한 산책로를 따라 이어진다.
낮게 깔린 선율을 들으며 고즈넉한 분위기의 산책로를 걷다 보면 저절로 사색과 명상에 잠기게 된다.
여러 개의 돌무덤 중 하나는 개관 5주년을 기념해 2019년 새로 만든 명상관이다. 이곳 역시 안도 다다오가 설계했다.
돔 형태의 내부 공간에 들어서면 반원 모양으로 길게 난 창을 통해 쏟아지는 빛과 풍성하게 울리는 소리에 자연스레 경건한 마음이 든다.
명상관이 포함된 관람권을 구입하면 매일 시간대별로 열리는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비 오는 날이라 아쉽게도 빛이 만들어낸 무늬는 볼 수 없었지만, 창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맑게 울려퍼지며 명상의 운치를 더했다.
스톤 가든 끝자락에는 뮤지엄 산의 마지막 전시관인 제임스 터렐관이 있다.
'빛의 마술사'로 불리는 세계적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의 다섯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터렐의 작품은 빛과 공간을 재료로 한다. 프로그램에 의해 세밀하게 조정된 자연광이나 인공광을 공간에 투입해 작품을 만든다.
작품은 공간 속에서 빛을 바라보는 관람객의 경험을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
세밀하게 조정된 조명 덕분에 뻥 뚫려 있는 공간이 막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넓은 공간이 좁고 답답한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막혀 있는 듯 보이는 출입구를 통해 작품 속으로 들어간 관람객은 좁아 보이던 공간이 무한히 확장되는 경험을 하면서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내가 보고 느끼는 것이 과연 참일까 허상일까? 나는 허상에 사로잡혀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9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isun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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