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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어때] 자연을 품은 미술관
2020-08-26 07:30:01최종 업데이트 : 2020-08-26 07:30:01 작성자 :   연합뉴스

강원도 고성 바우지움조각미술관
(고성=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검게 그을린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들 아래로 풀이 파릇파릇 돋아나 있었다.
작년 4월 산불이 할퀴고 간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않은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이 한적한 시골 마을을 지나다 보면 뜻밖의 미술관을 만나게 된다.
◇ 돌과 바람이 빚어낸 미술관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에 있는 바우지움조각미술관은 조각가 김명숙 씨가 2015년 사재를 털어 설립한 조각 전문 미술관이다.
20년 전 아름다운 주변 풍경에 반해 이곳에 주말 주택을 마련한 그는 창고에 쌓여있는 자신의 작품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을 꿈꾸며 집 근처 땅을 조금씩 사들였고, 그렇게 마련된 5천여평(1만6천여㎡)의 부지에 미술관을 완공했다.
'바우지움'이라는 이름은 강원도 사투리로 바위를 뜻하는 '바우'와 '뮤지엄'을 합해 지었다.
미술관이 자리한 원암리(元巖里)는 이름 그대로 바위를 깔고 앉은 마을. 미술관 터를 다지기 위해 땅을 파자 울산바위가 솟을 때 굴러내렸을 것 같은 누런 돌덩이들이 나왔다고 한다.
이 돌덩이로 정원을 꾸미고, 대관령 지하 500m에서 캐낸 바위를 가져다 쪼개 담을 쌓았다. '바우지움'이란 이름 그대로 돌로 지은 미술관이다.
바우지움이 자리한 곳은 울산바위를 넘어온 높새바람과 동해를 건너온 해풍이 만나는 곳이다.
미술관을 설계한 건축가 김인철(아르키움 대표)씨는 이곳에 길이와 높이가 다른 담을 여러 개 세워 바람이 잠시 멈추도록 했다. 담이 겹치고 꺾이는 곳에는 지붕을 얹어 내부 공간을 꾸몄다.
자연을 배려해 낮게 세운 담은 5천여평의 부지를 세 개의 전시관과 다섯 개의 테마 정원으로 나눈다.
담에 의해 나뉜 공간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울산바위를 향해 뫼 산(山)자를 그리고 있다. 담은 공간을 구분 짓는 동시에 이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역할도 한다.
담과 담 사이 미로처럼 난 좁은 통로를 따라가다 보면 전시관 내부로 들어서게 되고, 내부 관람을 마치고 다시 좁은 통로를 지나면 넓은 야외 정원이 나오는 식이다.
깨진 돌과 콘크리트가 뒤엉킨 담은 바우지움만의 개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요소다. 매끈한 콘크리트 담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연스러움이 거친 질감에서 묻어난다.
아무렇게나 지은 듯 보이는 거친 담은 사실 엄청난 정성과 노력을 들인 것이라고 한다.
우선 철근으로 담의 뼈대를 만들고 양옆에 판을 세워 거푸집을 만든 뒤 바위를 작은 돌로 쪼개 그 안에 집어넣는다.
그런 다음 위에서 콘크리트를 부으면 층층이 쌓인 돌 사이로 콘크리트가 스며들면서 돌과 얽혀 굳게 된다. 담에 들어간 돌은 대관령 철도 터널을 뚫을 때 나온 바위를 가져다 쪼갠 것이다.
쇄석 사이로 콘크리트가 스며들면서 만들어낸 돌무늬는 어느 하나 같은 부분 없이 제각각이다.
미술관 내부에 전시된 조각품이 작가의 의도에 따라 정교하게 깎아낸 예술품이라면 돌과 콘크리트가 만들어낸 담의 무늬는 우연이 빚어낸 비구상 작품인 셈이다.
◇ 자연과 건축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다
담과 담 사이 통로를 따라가면 첫 번째 전시관인 근현대 조각관이 나온다. 김명숙 관장이 40년간 사 모은 근현대 조각 40여점을 모아 전시한 곳이다.
전시관은 흰색 벽으로 마감된 일반적인 미술관과 달리 통유리로 둘러싸여 있다.
설악산을 향해 난 통유리벽 너머로는 소나무 숲과 울산바위가 어우러진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반대편 유리 벽 너머에는 콘크리트와 돌이 엉겨 붙은 거친 담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통유리벽 설계가 가능했던 것은 이곳이 그림을 벽에 걸어야 하는 일반적인 갤러리와 달리 조각품을 전시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전시장 내부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통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자연 채광 덕분에 인공조명 없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근현대 조각관에서 야외로 나오면 물의 정원이 펼쳐진다. 전시관 앞 자갈밭 위로 지하수를 끌어올려 조성한 연못이다.
자갈밭을 채운 물은 그 자체가 커다란 캔버스다. 잔잔한 물 위로 소나무 숲과 울산바위, 하늘에 떠가는 구름이 그대로 비치니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자그락 자그락 자갈 밟는 소리와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귀까지 즐겁게 한다.
물로 된 캔버스 위에는 시시각각 변하는 빛에 따라 제각기 다른 느낌의 그림이 그려진다.
때로는 소금쟁이들이 만들어내는 물결무늬가 전시관 처마 밑에 그대로 비쳐 아름다운 문양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 화마가 남긴 상처를 딛고
물의 정원 너머로 펼쳐진 너른 풀밭은 소나무와 조각 작품이 어우러진 소나무 정원이다. 정원을 장식한 소나무들은 자연이 만든 또 하나의 조각품처럼 보인다.
안타깝게도 소나무들이 줄기 아랫부분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작년 4월 고성을 휩쓸었던 산불이 남긴 아픈 흔적이다.
당시 불은 미술관에서 불과 두 길 건너 지점에서 발화했다. 불이 바람을 타고 번지면서 이 일대를 덮쳤지만, 겹겹이 쌓인 담 덕분에 전시관 내부로는 불길이 번지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김 관장이 20년간 키워온 정원의 나무들은 대부분 새까맣게 불타 죽거나 상처를 입었다.
그는 "1년 동안 나무를 새로 심고 치료하면서 정원이 푸르름을 많이 되찾았지만, 예전 모습은 아니다"라면서 아쉬워했다.
정원 한쪽 구석 담벼락에 붙어 있는 나비들은 산불 당시 공포에 휩싸였던 기억을 담아 만든 조형물이다.
당시 미술관 내 거처에 머물고 있었던 김 관장은 미술관 옆 이층집이 불에 활활 타올라 재로 변하는 것을 보면서 이곳을 탈출했다고 한다.
그때의 심정은 날개가 찢어진 채 새끼들을 끌어안고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탈출해 날아가는 붉은 나비로 표현됐다.
정원 한가운데 커다란 열매 조형물 위의 나비들은 불탔던 나무들이 되살아나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자 보금자리로 돌아온 나비들을 형상화한 것이다.
소나무 정원에 이어 돌의 정원과 잔디 정원을 지나면 김명숙 관장의 작품만을 모아둔 김명숙 조형관이 나온다.
여체의 부드러운 곡선을 통해 사랑, 모정, 행복 등의 감정을 표현한 조각품을 만날 수 있다.
자갈이 깔린 중정 안에 놓인 여러 개의 스테인리스 볼도 그의 작품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공들이 중정을 둘러싼 세 면의 유리 벽에 비치면서 마치 은하 세계에 떠 있는 별처럼 보인다. 그래서 '은하정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김명숙 조형관에서 테라코타 정원을 지나 출구로 나오면 3개월마다 새로운 작가를 초청해 기획전을 여는 '아트 스페이스'와 '카페 바우'가 나온다.
입장료 9천원에는 카페에서 제공하는 커피 1잔이 포함되어 있다.
단체 관람객이 미리 신청할 경우 김명숙 관장이 직접 도슨트가 되어 전시 해설을 해준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8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isunny@yna.co.kr
[여기 어때] 자연을 품은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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