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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행] 왜군 수장된 이순신의 바다와 섬
2019-02-11 08:01:05최종 업데이트 : 2019-02-11 08:01:05 작성자 :   연합뉴스
경남 통영 한산도와 추봉도를 가다
(통영=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한산도는 임진왜란 최대 해전(海戰)인 한산대첩이 펼쳐진 곳이다. 이순신 장군이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던 장소다. 한산도에는 지금도 옛 전쟁의 기억이 곳곳에 남아 있다.
한산도는 경상, 전라, 충청 3도의 수군을 통할하는 해상 방어 총사령부인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초대 통제사로 전라좌수사였던 이순신이 임명됐다. 한산도는 바로 이충무공의 섬이다.
1592년 음력 7월 7일 오후 2시 이순신 함대를 격멸하라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명을 받은 왜군 수군장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는 함대 73척을 이끌고 견내량(見乃梁, 통영 장평리와 거제 덕호리 사이의 좁은 해협)에 도착해 후발 함대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통영 남서쪽 당포에 도착해 있던 조선수군연합함대는 이튿날 새벽 견내량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은 수로가 좁고 물살이 세며 암초가 많아 우리 판옥선이 기동하기에 불리했다.
조선 수군은 와키자카의 함대를 남쪽의 통영 앞바다로 유인했다. 한산도 북쪽 방화도와 화도 뒤편에 매복해 있던 조선 수군은 학익진(鶴翼陣)으로 왜군 함대를 에워싸고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조선 수군은 이날 왜선 59척을 부수고 왜장 2명과 왜의 수군 8천여 명을 수장시켰다. 한산대첩은 패색이 짙은 전황을 뒤바꾼 분수령이었다.
◇ 대첩 펼쳐진 격전의 바다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출발한 여객선은 한산대첩이 펼쳐졌던 격전의 바다를 거쳐 한산도로 향했다.
왜군의 처참한 비명으로 떠들썩했을 그 옛날의 바다는 잔잔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왼편에는 조선 수군이 숨죽이고 숨어서 왜군을 기다리던 방화도와 화도가 떠 있다.
한산도에 거의 다다르자 거북 모양 등대와 한산대첩기념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객선은 출발 25분 만에 한산도 여행의 출발점인 제승당 선착장에 도착했다.
여객선에서 내려 오른쪽으로 가면 제승당이 있는 이충무공유적지가 나오고, 왼쪽으로 가면 섬 안쪽을 돌아볼 수 있다. 함께 온 관광객의 발걸음을 따라 오른쪽으로 향했다. 모퉁이를 돌자 이내 유적지의 출입문인 한산문이 나타났다.
한산문을 들어서면 해안을 따라 난 길이 두 팔로 바다를 감싼 듯 부드러운 곡선을 그린다. 오른쪽으로 펼쳐진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하고 드넓다. 하늘에서 보면 전체적인 모습이 하트 모양이라고 한다.
길 한쪽엔 이순신의 '한산도가'와 '한산도야음'을 새긴 비가 서 있다. 동백나무와 아왜나무, 후박나무는 푸른 잎사귀를 반짝거리고, 소나무는 초록빛으로 싱그럽다. 동백나무는 벌써 붉은 꽃망울을 품었다.
이순신 장군과 군사들이 함께 사용했다는 우물과 창을 든 모형 수군이 지켜선 대첩문(大捷門)을 지나 완만한 언덕길을 오른다. 언덕에는 아름드리나무들이 즐비하다.
계단을 올라 충무문(忠武門)으로 들어서자 정면으로 팔작지붕을 얹은 제승당(制勝堂)이 늠름한 모습을 드러냈다. 제승당은 지금으로 치면 해군작전사령관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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