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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나는 제주, 다르게 만나는 제주
2019-10-15 08:01:05최종 업데이트 : 2019-10-15 08:01:05 작성자 :   연합뉴스

지속가능한 여행의 방법
(제주=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매번 다른 열풍이 휩쓸고 지나가는 제주에서 주민도 여행자도 모두 '지속가능한 여행'을 말한다.
제주의 자연과 문화를 오롯이 즐기고 현지인과 교류함으로써 지역 사회와 상생하는 것. 이런 유행이라면 기꺼이 동참해도 괜찮지 않을까.
열풍을 넘어 개발의 광풍으로 변해가는 제주의 풍경에 잠시 눈을 돌리고 있다가 오랜만에 찾은 제주에서 조금은 다르게 제주를 다시 만났다.
◇ 제주의 얼, 해녀 이야기
우도가 코앞에 보이는 구좌읍 종달리 선착장 한쪽의 창고 건물 앞. 오후 5시 10분이 되자 묵직한 철문이 열렸다.
한쪽 벽에는 해녀들이 물질할 때 쓰는 테왁이 걸려 있다. 식기가 놓인 테이블이 널찍한 공간 한가운데에 사각형을 이루고 있고, 그 가운데 바닥에는 현무암 더미 가운데 땔나무가, 천장에는 그물이 걸려 있다.
불이 꺼지고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젊은 두 해녀가 모닥불 근처에 등장했다. 테이블 사이의 공간이 연극 무대가 되고, 바다에서 남편을 잃은 해녀 금덕과 금덕을 달래는 미자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이야기가 절정에 다가갈 때 한쪽 테이블 뒤 커튼이 열리면서 무대는 바다로 확장된다. 짧은 연극이지만 한 많은 해녀의 삶을 응축한 이야기에 관객들은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연극의 실제 주인공인 88세 최고령 해녀가 깜짝 등장하면서 막을 내리자, 관객들은 멋쩍게 눈물을 훔치거나 환호와 박수를 보내며 이야기에서 빠져나왔다.
◇ 한자리에서 보고, 듣고, 맛보는 제주
연극이 끝나면 해녀가 나와 잡으면 집에서 식구들이랑 먹느라 팔 게 없다는 군소를 소개하고 망치로 시원하게 뿔소라를 깨는 시범을 보여준다.
그리고 나면 성게 미역국, 전복 물회, 갈치조림, 우뭇가사리 무침, 뿔소라 꼬치, 톳밥, 흑임자죽 등 갖은 해산물과 제주 특산물로 만든 요리가 가득한 푸짐한 밥상이 차려진다.
식사가 마무리될 무렵, 다시 이야기가 시작된다. 관객들이 해녀에 대해 궁금했던 이야기를 묻고 해녀가 답하는 시간이다.
생선을 경매하는 활선어 위판장으로 지어졌다가 어두컴컴한 창고로 전락했던 공간을 이렇게 되살려 낸 건 이곳의 해녀를 가족으로 둔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의 젊은 예술인과 해녀가 주축이 된 주민들이다.
공연에 참여한 해녀는 "식구들한테도 못했던 이야기를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농사지을 땅이 부족한 제주에서 해녀들이 산소마스크도 없이, 테왁 하나에 생명을 의지한 채 수심 10m의 바다로 뛰어들어 채취한 해산물은 가정 경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소득원이었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도 올라있는 해녀 문화는 명실상부 제주를 대표하는 상징이자 얼이다. 하지만 해녀의 수는 점점 줄어드는 동시에 고령화하고 있다.
신선한 해산물을 먹기 위해 마을마다 있는 해녀의 집에 들렀던 것이 전부라면, 해녀 문화를 제대로 들여다볼 기회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었다면 '해녀의 부엌'에 들러보자.
금∼일요일 점심과 저녁 하루 두 차례 진행되는데 연일 만석이니 미리미리 예약하는 게 좋다.
◇ 그냥 쉬기 좋은 돌집
오랜만에 찾은 제주에서는 이전처럼 특별한 목적도, 이유도 없었다. 여행자인 듯 아닌 듯 잠시나마 이곳에 스며들어 쉬는 게 특별하지 않은 목적이자 이유였다.
번잡한 해변에서 조금 안쪽으로 물러서 있는 구좌읍 하도리의 조용한 마을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들었다. 천장이 낮은 돌집은 그냥 쉬기 좋았다. 라디오를 켜니 주파수를 찾을 필요도 없이 클래식 음악 채널에 맞춰져 있었다.
볼륨을 조금 높여도 호스트의 공간인 '안거리'(안채)와 딱 한 팀만 머무는 게스트 숙소 '밖거리'(바깥채)는 완전히 분리돼 있어 부담이 없다.
안채 쪽으로 난 입구 반대편으로는 게스트가 오롯이 누릴 수 있는 아늑한 정원이 있다. 잠에서 깨서는 커피 한 잔을 놓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함께 아침 햇살을, 잠들 무렵에는 풀벌레 소리로 여름밤의 운치를 즐겼다.
작고 낮은 창에 걸린 제주 바다 같은 푸른색 커튼과 귤 그림이 그려진 커튼이 안으로 드는 따가운 햇볕을 반쯤 걸러준다. 창 위의 책꽂이에서 발견한 비슷한 취향의 책들이 마음을 더욱 편하게 해줬다.
호스트가 가꾸는 널찍한 텃밭으로 나갔다. 이곳에서 거둔 신선한 채소로 만든 샐러드가 조식으로 나온다. 호스트가 직접 만든 귤 잼과 크림치즈를 곁들인 제주 보리빵, 모카포트로 진하게 내린 커피와 막 짜낸 과일 주스까지 깨끗이 비웠다.
◇ 동네를 거닐다
조식을 먹는 호스트의 작업실 겸 카페에서 호스트의 반려견들을 만났다. 호스트의 오랜 반려견 꽃님이와 유기견 출신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을 한 똘이가 발밑에서 왔다 갔다 했다. 마당에는 최근 새끼를 낳은 고양이 가족도 있다
꽃님이, 똘이와 함께 동네 산책에 나섰다. 인사를 주고받는 주민과 싱그러운 당근밭을 지났다. 하늘은 잔뜩 찌푸렸다가 곧 비를 뿌렸지만, 기분은 어쩐지 계속 맑음이다.
외출에 나설 땐 렌터카나 택시 대신 버스를 탔다. 안내방송이 나오지 않아 맨 앞자리에 앉으니, 옆자리의 주민이 안전벨트를 매야 한다고 알려줬다. 동네마다 타고 내리는 할머니들의 대화는 절반도 채 알아듣지 못했다. 낯선 사투리에 외국이라도 와 있는 것 같았다.
제주의 정취와 자연을 고스란히 담은 특색 있는 숙소는 너무 많아 고르는 것이 일이다. 너무 깊이 따지고 고민하는 대신 마음 가는 대로 일단 정하고 나면, 숙소와 숙소 주변에서, 그곳을 가장 잘 아는 호스트의 추천으로 새로운 휴식과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
전 세계 현지인과 여행자를 연결하는 숙박·체험 플랫폼 에어비앤비가 제안한 올가을 제주를 오롯이 즐길 수 있는 지속가능한 여행의 방법과 트립 몇 가지를 함께 소개한다.
▲ 제주 메밀 음식과 도자기 만들기
- 흙을 만지며 집중하는 일은 스트레스를 완화해 주는 활동으로 알려져 있다. 많이 먹어도 속이 편한 제주 메밀 요리를 맛본 뒤 호스트의 작업실로 자리를 옮겨 작은 접시와 컵을 만들어 본다. 가마에 구운 완성품은 한 달 뒤 받아볼 수 있다. 투명한 액체에 조개껍데기와 모래 등을 넣고 굳히면 나만의 제주 바다가 되는 레진 공예도 같은 곳에서 체험할 수 있다.
▲ 사계절 즐기는 서핑
- 수도권과 가까운 양양에서 장비 대여와 강습은 물론 숙박과 유흥까지 함께 즐기는 숍 문화가 발달해 서핑의 '메카'로 꼽히지만, 제주의 서핑 역사는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계절에 따라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이 달라지지만, 바다로 둘러싸인 섬에서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 년 내내 다양한 파도를 즐길 수 있는 제주야말로 서핑의 본거지라는 것이 제주 서퍼들의 자부심이다.
▲ 밭담길 걷기 = 해안의 올레길을 경험했다면 이번에는 밭담길을 걸어 보자. 밭 사이에 현무암으로 쌓은 낮은 담이 2만2천㎞에 이른다고 한다. 한적한 밭담길을 걷고 호스트의 소박한 집으로 돌아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하우스 콘서트를 즐기는 트립이 있다.
▲ 오름에서 만나는 제주의 가을 = 제주에는 하루에 하나씩 올라도 일 년이 모자란 368개의 오름이 있다. 유명한 오름도 좋지만 숙소 호스트가 추천하는 집 근처의 오름을 올라보자. 오름에서 해맞이를 함께 하고 일출 사진 찍는 법을 배워보는 트립에 참가할 수도 있다.
▲ 전통시장·플리마켓 = 각 동네의 오일장과 재래시장에서는 지역 주민의 삶을 엿볼 수 있다. 토요일마다 세화포구에서 열리는 '벨롱장'을 비롯해 함덕해수욕장의 '멘도롱장', 서귀포 이중섭 거리 인근에 서는 '서귀포 예술시장'은 지역주민과 이주민, 여행자가 어우러지는 플리마켓이다.
▲ 차실과 명상 공간이 있는 부티크 호텔
- 마음의 쉼을 추구하는 공간이다. 한적한 곳에 자리 잡은 숙소에서 새벽의 다도 명상, 저녁의 액티브 명상에 참여할 수 있다. 가족이 운영하는 리조트로, 바로 앞 식당에서 푸짐한 해산물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아침 메뉴로 제주 들깨 쑥떡국을 추천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mih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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