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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 of Mongolia] ① 13세기 시간여행
2019-10-12 08:01:02최종 업데이트 : 2019-10-12 08:01:02 작성자 :   연합뉴스

(에르덴[몽골]=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초록색 땅과 파란 하늘, 그리고 하얀 구름이 전부였다. 예상했던 풍경이었다.
하지만, 끝이 있긴 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은 드넓은 초원을 달리는 일이 다시 없을 황홀한 순간으로 남으리라는 것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같은 풍경은 매 순간 다르게, 깊숙이 다가왔다.
몽골 여행의 목적지는 대부분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멀지 않은 테렐지 국립공원과 북서쪽 홉스굴 호수 국립공원, 남서쪽의 고비사막 정도다.
외국 여행자는 물론 몽골인들도 가본 사람이 많지 않은 동부 지역, 칭기즈칸의 고향 헨티주와 세계에서 가장 넓은 대평원을 지나 최동단 도르노드주의 중국 접경 지역인 할흐골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2천500㎞의 여정을 위해 한국에서 온 노란색 중고 미니버스에 올라탔다.
◇ 몽골의 시작과 끝, 칭기즈칸
이른 아침, 울란바토르 시내의 교통 체증을 벗어나자마자 구릉과 초원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동쪽으로 바로 이어지는 메인 도로가 공사 중이어서 울란바토르 남쪽의 산을 빙 둘러 가야 했다.
울란바토르를 벗어나기 직전, 멀리서도 눈에 뜨이는 거대한 기마상이 보였다. 몽골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영웅, 칭기즈칸이다. 높이 40m의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들어진 기마상은 칭기즈칸의 고향이자 그가 몽골제국을 일으킨 헨티주를 향해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그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1천여㎞를 달릴 것이다.
경기도가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울란바토르를 완전히 둘러싸고 있는 터브주에 들어섰다. 에르네에서 동부고속도로를 벗어나 비포장도로를 달려 남쪽으로 향했다.
고속도로라고는 하지만 왕복 2차선에 여기저기 패여 덜컹거리기 일쑤였다. 이런 도로라도 깔린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는 며칠 뒤 10시간 가까이 오프로드를 달리면서 깨닫게 된다.
8월 한여름 몽골의 날씨는 20도가 채 되지 않았고 쨍하니 해가 비추다가도 먹구름이 깔리고 빗방울이 떨어졌다. 포장되지 않은 흙길은 수많은 바퀴와 비에 여기저기 웅덩이가 생기고, 웅덩이를 돌아가는 또 다른 길이 만들어지면서 이리저리 이어졌다.
흰색, 검은색, 갈색, 회색, 얼룩무늬까지 털 색도 다양한 소들이 때때로 길을 가로막았다. 이곳에서는 경계도, 길도 무의미해 보였다.
◇ 멀고 먼 영광의 시대
마을을 벗어나자 인터넷은 물론 전화도 끊겼다. 흙길을 달려 향한 곳은 13세기의 문화와 생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13세기 마을'(13th Century Complex)이다.
13세기는 칭기즈칸이 제국을 건설해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정복했던, 몽골이 가진 가장 자랑스러운 역사이자 여전히 놓지 못하는 과거다. 그 시절의 한반도 역시 몽골에 정복당했던 치욕을 겪었으니 단호히 입장을 거부하기라도 해야 하나 싶었지만, 21세기에 이곳을 찾은 여행자에겐 사실 그저 너무 먼 과거일 뿐이었다.
한참을 달리자 나무를 세워 올린 성벽이 멀리 보였다. 말을 타고 성문을 지키고 있던 앳된 얼굴의 연락병 둘이 버스를 보자 먼저 안으로 달려가면서 연락병 캠프로 이끌었다.
장수 역할을 맡은 남자가 나와 방문객을 맞고 게르 안으로 안내했다. 장수의 의자에 앉아 털모자를 쓰고 큰 칼을 들고 근엄하게 포즈를 취해줬지만, 전통 복장 안에 받쳐 입은 형광 티셔츠가 너무 도드라져 웃음이 나왔다.
다시 차를 타고 왕의 캠프로 향했다. 야트막한 돌산을 뒤로하고 한가운데 장대 사이로 난 길 끝에 가장 큰 게르(Ger)가 있다.
유네스코 무형 문화유산에도 올라있는 게르는 유목민들이 쉽게 조립하고 분해할 수 있는 가볍고 단순한 전통 가옥이지만, 초속 18∼20m의 강한 바람에도 견딘다.
천장의 둥근 창인 투노를 통해 빛이 들어오는 게르 한가운데는 말린 말똥 등으로 불을 피우는 난로가 자리 잡고 있고, 남쪽으로 난 입구 반대편 가장 안쪽에 화려하게 장식된 왕의 자리가 있다.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왕과 왕비의 옷을 걸치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남은 공간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전통 음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우유에 물을 섞어 끓인 수테차로 시작해 양고기가 들어간 튀김만두 호쇼르와 칼국수와 거의 똑같은 랍샤가 나왔다. 한반도에서 국수를 먹기 시작한 것이 고려 시대부터라 하니 연결고리는 분명히 있을 법하다.
◇ 낯익은 것과 낯선 것의 조우
원시 종교의 주술사인 샤먼의 캠프도 낯선 듯 낯익은 모습이다. 서낭나무처럼 주변에 색색의 천을 매단 나무 한 그루가 가운데 있고, 그 주변을 뾰족하게 깎은 나무 기둥이 바깥을 향하도록 방사형으로 빙 둘렀다.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공예가의 캠프다. 칭기즈칸의 어릴 적 이름을 딴 테무친(7)과 툽쇼(2) 형제가 조부모와 함께 일행을 맞았다. 아이들은 낯선 사람들에게 사진 찍히는 일이 익숙한 것 같았다.
아직 말을 못 하는 툽쇼는 자신을 보고 귀엽다며 인사를 하거나 다가가려는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갈퀴를 말처럼 타고 휙 지나쳤다. 테무친은 게르 안에서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포즈를 취하거나, 맷돌을 돌려 밀가루를 만드는 시범을 보였다.
불평 한마디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계속 맷돌을 돌리다가 힘이 들었는지 잠시 멈추고 작게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아이에게 향했던 카메라를 잠시 내려놓고 어설프기 그지없는 발음으로 '바야를라'(고마워)라고 말했더니, 테무친은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깜짝 놀랄 만큼 환한, 아이다운 미소를 보여줬다. 그 예쁜 얼굴을 카메라에 담지 못한 건 아무래도 괜찮았다.
게르 입구에 서서 형이 사진 찍히는 걸 물끄러미 보고 있던 툽쇼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더니, 툽쇼는 그 작은 손으로 검지 손가락을 쥐고 한동안 얌전히 곁에 있어 줬다.
볼이 빨간 작은 얼굴에 한참을 빠져 있었다. 사진 촬영에 열중하던 사람들이 어느 정도 빠지고 나서야 게르 밖 난간에 테무친과 잠시 나란히 기대섰다. 그제야 쑥스러워하면서도 낯선 사람이 궁금하다는 듯 조금은 편안하게 다가왔다.
테무친의 부모님은 울란바토르에서 일하고 있고, 테무친도 울란바토르에서 학교에 다니다 방학 동안 이곳에 와 있다고 했다. 아까 맷돌을 너무 오래 돌려서 힘들지 않았냐고 묻자 '조금 힘들지만 괜찮다'고 한다.
'솔롱고스'(한국)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쪼그려 앉아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내가 솔롱고스에서 온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작별의 악수를 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mih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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