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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요정 빙어의 눈물…포근한 날씨로 혹독한 겨울
2016-01-05 14:30:48최종 업데이트 : 2016-01-05 14:30:48 작성자 :   연합뉴스
2년 연속 축제 취소된 인제 빙어의 힘겨운 겨울나기
소양호 어민 조업포기 생계 위협…겨울 낭만 실종

(인제=연합뉴스) 이재현 기자 = 해마다 1월이면 강추위가 몰아쳐 광활한 얼음벌판이 끝없이 펼쳐지는 곳.

이곳은 얼음이 30㎝ 이상의 두께로 꽁꽁 얼어 마치 빙하시대의 얼음벌판을 연상케 했다.

은빛 요정 빙어의 눈물…포근한 날씨로 혹독한 겨울_1

살을 에는 듯한 차디찬 강바람과 깊은 골바람까지 더해져 한파의 대명사로 불렸던 이곳은 강원 인제군 남면 부평리 소양호 상류 일명 빙어호다.

이곳에 사는 나는 빙어(氷魚)다. 겨울호수의 은빛요정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빙어라는 이름 만큼이나 차디찬 얼음을 추위를 좋아한다. 하지만, 올해는 수온마저 따뜻한 느낌이다.

겨울철 소양호에서는 나를 주제로 한 겨울축제가 펼쳐진다. 나는 인제 빙어축제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올해는 겨울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 탓에 축제가 전면 취소됐다.

5일 2016년 새해도 벌써 닷새가 지났지만, 강추위는 고사하고 빙어호는 따스한 햇볕만 가득하다. 얼었던 얼음마저 스르르 녹아내렸다.

은빛 요정 빙어의 눈물…포근한 날씨로 혹독한 겨울_1

역설이지만 포근한 날씨 탓에 나는 그 어느 해보다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사람들이 발길이 뚝 끊긴 혹독한 겨울은 지난해에 이어 벌써 두 번째다.

작년에는 극심한 가뭄으로 소양강 물이 메말라 바닥을 드러내 아예 축제를 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 올해는 얼음이 얼지 않았다. 2년 연속 축제가 취소된 이유다.

원래 내 고향은 바다였다. 10℃ 이하의 찬물을 좋아하는 나는 산란기인 2월에 하천을 따라 내륙으로 오는데, 소양강댐 건설로 바다와 하천이 단절되면서 소양강에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

정을 붙이고 오래오래 살다 보니 1998년에는 나를 주제로 한 겨울축제가 생겼다.

처음부터 나를 위한 축제가 기획됐던 것은 아니다. 자연이 준 선물이었다.

내가 사는 곳에 강추위가 몰아쳐 광활한 얼음판이 형성되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 얼음판에 구멍을 뚫고서 나를 낚아 올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한겨울만 되면 나를 낚으려는 사람들로 소양강 상류 얼음 벌판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마을 주민들은 나를 잡으려는 낚시꾼에게 요깃거리와 낚시도구를 팔면서 덩달아 살림살이가 나아졌다.

사람들이 얼음 판 위에서 나를 낚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현재 빙어축제의 실마리가 된 셈이다.

겨울시즌 내내 사람들이 던지는 낚싯바늘에 입질도 해야 하는 등 여러모로 귀찮지만 나를 주제로 한 축제가 열리는 동안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사람들 모두가 나를 필요하고 나 때문에 모여들면서 겨울 낭만과 추억을 만끽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원조 겨울축제라는 명성도 얻었다. 2003년에는 전국 3대 우수축제로 선정되기도 했다.

제12회 축제가 열린 2009년에는 나를 찾는 관광객이 100만명을 돌파했다.

달이 차면 기울 듯 유사 겨울축제가 이웃 동네에서도 우후죽순 생기면서 나의 전성기도 지났다.

그러나 원조 겨울축제라는 명성만은 계속 이어가고 싶었다.

사실 지난해 극심한 가뭄으로 축제가 취소됐을 때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마부작침(磨斧作針)이라는 고사성어를 가슴에 품고 나는 올해 겨울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인제군에서도 가뭄 때문에 축제를 열지 못하는 사태는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소양강 상류에 높이 12m, 길이 220m 규모로 건설한 부평보를 축제장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호수의 이름도 내 이름을 따서 빙어호라고 지어줬다.

올해 축제를 위해 빙과 어리라는 새로운 캐릭터도 선보였다. 이전 축제까지는 나의 천적 수달이 대표 캐릭터였다.

비로소 이 축제의 진짜 주인공인 된 나는 무대가 개막하기만을 학수고대했다.

설렘도 잠시뿐. 슈퍼 엘니뇨라는 복병이 나타났다.

결국 이상고온에 발목이 잡혀 나를 주제로 한 제17회 인제 빙어축제는 전면 취소됐다.

축제 취소로 인제군 남면 소양호 어민들도 나만큼이나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은빛 요정 빙어의 눈물…포근한 날씨로 혹독한 겨울_1

나를 축제장에 공급해 연간 2억원의 소득을 얻었던 이 일대 어업계원 60여명은 축제 무산으로 판로마저 끊겼다.

호수 밑에서 바라본 어민들의 표정은 무척 어둡다. 애꿎은 담배만 피우는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관광객들의 발길도 끊겨 대다수 어민은 아예 조업도 포기했다. 극심한 가뭄으로 물이 없어 작년에도 조업을 포기했던 어민들이다.

나를 보려고 연평균 70만명이 찾아와 500억원의 경제효과도 물거품이 됐다고 한다.

이 모든 불행이 나 때문인 듯해 괜히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이날도 어민들은 그물에 있는 나를 꺼내 소양호 상류에 다시 방류했다. 사람들이 나를 찾지 않기 때문이다.

한창 잘 나갈 때는 1㎏당 1만원에 거래될 만큼 귀한 대접을 받았던 그 시절이 그립다.

2년 연속 축제가 취소되다 보니 물 밖에서는 여러 가지 억측도 난무한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부평보를 막아 생긴 빙어호의 수질이 나빠 애초 축제 장소로 부적합하다거나, 축제를 강행했더라도 나쁜 수질 탓에 빙어호에서 잡은 나를 먹을거리로 사용할 수 없었다는 얘기도 떠돈다.

주최 측이 축제 개최의 의지가 없었다는 모함도 들린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안전이다.

충분히 얼음이 얼지 않은 얼음판 위에서 겨울 낭만을 만끽하려던 사람들이 안전에 위협을 받는 것은 나는 원치 않는다.

올겨울 그 어느 때보다 외롭고 쓸쓸하지만, 더욱더 완벽하고 성숙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jlee@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01/05 14:3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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