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문화유산> 누운 돌부처와 무수한 불탑의 불가사의
2016-03-17 08:30:00최종 업데이트 : 2016-03-17 08:30:00 작성자 :   연합뉴스

(화순=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흩날리는 부드러운 가을비 속에/ 꿈꾸는 눈 하늘을 관조하는/ 와불/ 구전에 따르면, 애초에/ 세 분이었으나 한 분 시위불이/ 홀연 절벽 쪽으로 일어나 가셨다/ 아직도 등을 땅에 대고/ 누운 두 분 돌부처는/ 일어날 날을 기다리신다/ 그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 거란다…<중략>… 두 와불의 얼굴은 이 비로 씻겨/ 눈은 하늘을 응시한다/ 한 세기가 지나가는 것은 구름 하나가 지나가는 것/ 부처님들은 또 다른 시간과 공간을 꿈꾼다/ 눈을 뜨고 잠을 청한다/ 세상이 벌써 전율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르 클레지오는 2001년 전라남도 화순의 운주사(雲住寺)를 방문해 천불천탑과 와불에 감흥을 받고 프랑스어로 '운주사, 가을비'(Unjusa, Pluie d'Automne)라는 시를 썼다. 독일의 사진작가이자 미술평론가인 요헨 힐트만도 '미륵'에서 "운주사는 노동과 소유와 유용성이 녹아 있는, 생산과 예술이 조화를 이룬 엄숙한 장소"라고 했다. 소설가 황석영은 장편소설 '장길산'에서 운주사를 새 세상을 꿈꾸며 천불천탑을 세우려다 실패한 통한의 땅으로 그렸다.

<문화유산> 누운 돌부처와 무수한 불탑의 불가사의_1
사진/이진욱 기자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송광사의 말사인 운주사는 지금도 창건에서 폐사에 이르기까지 신비의 베일에 가려져 있다. 통일신라 말 도선국사가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쌓았다는 전설을 포함해 지역 호족 세력이 세웠다는 설, 도교사원이나 밀교사원이라는 설, 마고 할미가 세웠다는 설, 천민과 노비들이 세웠다는 설 등 도대체 누가 어떤 이유로 천불천탑을 세웠는지에 얽힌 이야기도 가지가지다. 전남대 박물관의 4차례 발굴조사와 2차례 학술조사를 통해 고려 초에 창건된 것으로 밝혀졌으나 천불천탑의 조성 배경은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1530년 편찬된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절의 좌우 산등성이에 석불과 석탑이 각각 1천 개 있었던 것으로 기록돼 있으나 지금은 석불 90개와 석탑 21기만 남아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은 이곳의 탑과 불상을 헐어다가 묘지 상석이나 주춧돌, 구들장, 섬돌, 축대 등으로 사용했다.

<문화유산> 누운 돌부처와 무수한 불탑의 불가사의_1
사진/이진욱 기자

◇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천불천탑

전남 화순군 도암면에 있는 운주사는 사찰의 이름대로라면 '구름이 머무는 절'이다. 운주사 일원은 해발 100m 내외의 비교적 낮은 야산지대로 수많은 석불과 석탑이 무리를 지어 있고, 정형성, 섬세함, 정교함이 없는 돌덩이 같은 석불들이 방문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운주사 입구 주차장에서 일주문을 지나 천천히 걸어 들어가면 길쭉하고 넓은 앞뜰에 미륵 세상을 꿈꿨던 불가사의한 천불천탑이 펼쳐진다. 오른쪽 길가에는 돌지붕 아래에 하나같이 못생기고 어설픈 석불들이 도열해 있다. 석불들은 크기가 각각 다르고 얼굴 모양도 선만으로 단순하게 처리된 눈과 입, 기다란 코, 단순한 법의 자락 등 매우 다양하다. 언뜻 보기에는 참 보잘것없어 보이는 이 석불들을 아버지부처, 어머니부처, 아들부처, 딸부처라고 불러오기도 했다. 불상은 마모가 심해 얼굴 형체를 분간하기도 힘들고, 돌부처의 코를 긁어다가 삶아 먹으면 아이를 낳는다는 미신과 돌부처의 귀를 삶아 먹으면 과부나 처녀가 애를 뗀다는 미신 때문에 코와 귀도 어디론가 다 떨어져 나갔다. 처마처럼 생긴 암반 위로는 일명 '거지탑'이라 불리는 5층석탑이, 주변에는 제작하다가 중단한 부처와 석탑의 부자재가 널려 있다. 양해숙 문화관광해설사는 "운주사의 돌들은 화산활동으로 생긴 응회암으로 강도가 약해 가공이 쉽지만 정교하게 깎기 어렵고 훼손되거나 망실되기도 쉽다"고 말한다.

석불군 바로 옆에 있는 높이 10.7m 9층석탑(보물 796호)은 운주사에서 가장 높은 석탑으로 부여 정림사지 5층석탑 형식을 닮아서 백제계 석탑이라고도 한다. 자연 암반을 다듬어 그대로 지대석으로 썼고, 탑신부에 기하학적인 문양이 조각돼 있다. 옥개석(지붕돌) 밑 여러 겹의 빗살무늬는 밝은 빛이 하늘로 치솟는 듯한 모습이다. 바로 뒤편의 7층석탑은 직선적이고 다소 가파른 처마의 선, 우람한 옥개석이 감포 감은사지 석탑과 닮아서 신라탑이라고 한다. 광배를 갖춘 불상은 사다리꼴의 판석에 새겨진 석불좌상으로 얼굴은 뚜렷하지 않지만 왠지 모르게 정겹고 친숙함이 느껴진다.

<문화유산> 누운 돌부처와 무수한 불탑의 불가사의_1
사진/이진욱 기자

돌부처와 7층석탑을 지나면 돌로 만든 팔작지붕 석실 안에 두 석불이 등을 대고 앉아 있는 석조불감(보물 제797호)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대개 탑에 감실을 설치하고 불상이나 불경을 봉안하는데, 운주사 감실은 야외에 나와 있을 뿐 아니라 부처 두 기가 등을 맞대고 각각 남쪽과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 특이한 형태이다. 남북의 문설주 위아래에 구멍이 뚫어져 있는데 "돌문 여닫는 소리가 하도 시끄러워서 도선국사 마누라가 문짝을 치마폭에 싸다가 전남 영광의 칠산 앞바다에 갖다 버렸다"는 이야기가 민간에 전해 내려온다. 운주사를 밀교사원으로 보는 사람은 쌍배불상을 음양(陰陽)상으로 보기도 한다.

석조불감 바로 북쪽의 원형다층석탑(보물 제798호)은 중국 원나라의 영향으로 지대석 기단부부터 탑 꼭대기까지 둥근 모습인 이국적인 탑이다.'연화탑', '호떡탑'으로 불리는 이 탑은 현재 6층이지만 더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색적인 탑을 지나 보제루를 거치면 1990년대에 새로 지은 대웅전으로 들어서게 된다. 매우 단아한 대웅전을 돌아보고 대웅전 오른쪽으로 돌아 올라가면 거대한 바위벼랑 암벽의 요철 부분을 그대로 살려 부조로 새긴 마애여래좌상이 희미하게 남아 반긴다. 오랜 풍상에 마모돼 파손의 정도가 심하지만 길쭉하고 두툼한 코는 비교적 뚜렷하게 남아 있다. 운주사의 유일한 마애불에서 계단을 오르면 바로 운주사 창건 설화가 서려 있는 공사바위다. 운주사의 천불천탑을 쌓을 때 도선국사가 이 바위 위에서 전체 공사를 지휘 감독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서는 석탑과 석불들이 죽 늘어서 있는 협곡은 물론 산등성이의 석탑들도 한눈에 들어온다.

공사바위를 내려와 경내에 들어서니 뎅그렁거리는 맑은 풍경소리가 경외감마저 자아낸다. 운주사를 찾았던 정호승 시인은 "운주사 와불님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데 바람 불어와/ 풍경소리 들리거든/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고 읊었다.

<문화유산> 누운 돌부처와 무수한 불탑의 불가사의_1
사진/이진욱 기자

◇ 기이하면서도 경이로운 와불

대웅전 서편으로 발길을 옮겨 비스듬히 깎아지른 바위 위에 홈을 파서 만든 7층석탑을 지나면 동자승이 벌을 받아 시위불로 변했다는석불 입상이 반긴다. 도선국사가 하루 낮밤에 천불천탑을 세워 새로운 세상을 열려고 했으나 게으른 동자승이 거짓으로 "꼬끼오" 하고 닭소리를 내는 바람에 석공들이 날이 샌 줄 알고 하늘로 올라가 버려 결국 와불(臥佛)로 남게 됐다는 이야기가 얽혀 있다. 민초들은 이 와불이 일어서는 날 새로운 세상이 온다고 믿어 왔고 운주사의 전설이 됐다.

시위불 바로 위 산꼭대기에는 미처 일으켜 세우지 못한 부처 한 쌍이 반듯이 누워 있다. 자연암반에 새기다 만 길이 12m, 폭 10m에 이르는 거대한 와불은 팔베개하고 옆으로 누워 있지 않고 천공을 쳐다보고 있다. 얼굴이 갸름한 달걀형 와불은 머리는 남쪽을 발은 북쪽을 향하고 있다. 세계에서 하나뿐인 거대한 와불은 천 년 동안 눈과 비를 맞았고, 그 위로 바람과 구름이 스쳐 지나갔다.

와불 아래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둥근 바위 7개가 북두칠성 모양으로 놓여 있는데, 선조들의 천문학과 민간신앙을 엿볼 수 있다. 이칠성바위의 무게는 12t에서 20t에 이르고 평균지름은 3.2m나 된다. 양해숙 문화관광해설사는 "일곱 개의 둥근 돌이 하늘의 북두칠성과 같은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고, 원반 지름은 북두칠성의 밝기와 비례한다"며 "칠성바위는 별이 인간의 길흉화복과 수명을 지배한다는 칠성신앙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서로 같은 듯하면서도 다르고 다른 듯하면서도 같지만 하나같이 정겹고 소박한 운주사의 석불들을 친견하던 날, 하늘은 새파랗게 펼쳐져 있었다.'와불이 일어서는 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염원을 간직한 채 운주사 일주문을 나섰다. 산 넘어 밀려오는 봄기운은 또하나의 새로운 세상이었다.

changho@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03/17 08:30 송고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