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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와의 전쟁 伊피렌체 대성당, 디지털 낙서장 도입
2016-03-17 11:49:31최종 업데이트 : 2016-03-17 11:49:31 작성자 :   연합뉴스
감시카메라·벌금 별무 소용…"낙서 지우는 작업 병행돼야"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나는 계단이 정말 싫어, 케이트, 너와 결혼하고 싶어, 뉴저지에서 온 재키+데니스….

이탈리아 피렌체의 주성당(두오모)인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은 오묘한 색감과 화려한 장식을 지닌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전 세계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넘쳐나는 방문객 수 만큼 이처럼 의미없는 낙서들이 건물축의 벽면에 다양한 언어로 우후죽순 새겨지며 골머리를 앓아 왔다.

특히 2000년대 초반 피렌체 대성당을 주요 배경으로 한 일본 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와 동명의 영화가 한국과 일본에서 화제가 된 이후에는 일본어와 한글 낙서도 크게 늘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곳곳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고, 적발되면 처벌하는 등 오랫동안 낙서와의 전쟁을 벌여왔으나 낙서를 향한 인간의 원초적 욕망에 속수무책 당해오던 피렌체 두오모가 최근 궁여지책을 내놓았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피렌체 두오모에 최근 디지털 낙서대가 설치돼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두오모를 관리하는 현지 회사는 두오모에서 가장 낙서가 많이 되는 공간으로 꼽히는 지오토의 종탑(캄파닐레) 입구에 태블릿 컴퓨터 3대를 놓았다.

르네상스의 거장인 지오토가 설계한 이 캄파닐레에 도달하려면 414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이 계단을 에워싸고 있던 벽면은 수 세기에 걸친 갖가지 낙서로 채워져 있었다.

낙서와의 전쟁 伊피렌체 대성당, 디지털 낙서장 도입_1
피렌체 대성당(두오모)에 적혀있는 일본어와 한글 낙서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두오모측은 이곳의 낙서들을 올 초 특수 젤과 레이저로 깨끗이 지운 뒤 새로운 낙서가 등장하지 않도록 디지털 낙서장을 마련했다.

이 계획에 관여한 알리체 필리포니는 "새로운 낙서를 막기 위해 뭐라도 하고 싶었다"며 "사람들이 두오모의 벽을 다시는 더럽히지 않으면서도 하고자 하는 말을 남기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디지털 낙서장에서 나무, 대리석 등 서로 다른 질감의 배경 화면을 고른 뒤 립스틱, 스프레이 페인트, 손끝 등 다양한 느낌을 내는 도구로 낙서를 하면 메시지들이 웹사이트에 저장돼 온라인상에 영원히 보관된다.

회사측은 몇 년 후에는 보관된 디지털 낙서들을 출력해 두오모의 문서보관소에도 보관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9명의 문화재 복원사를 동원해 3개월에 걸쳐 종탑에 이르는 벽면의 낙서 지우기 작업을 진두지휘한 베아트리체 아고스티니는 "이 공간은 너무 좁기 때문에 모든 곳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그래서 나온 대안이 바로 디지털 낙서장이었다"고 설명했다.

판단은 이르지만 이 장치는 일단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낙서판이 설치된 지 첫 사흘 동안 3천 여명의 방문객이 종탑을 찾았으나 새로운 낙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대신에 304개의 디지털 메시지만 남겨졌다.

수 년 동안 피렌체의 낙서를 제거하는 데 힘을 보태온 한 자원봉사 단체의 대표는 "디지털 낙서장은 매우 훌륭한 기획"이라면서도 "경험에 비춰보면 낙서를 막기 위한 완벽한 해결책은 없다. 끝임없이 낙서를 제거하는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탈리아 국립 반(反)낙서협회의 안드레아 아마토 회장도 "공공기물 파손자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이 어디라도 낙서를 하기 마련"이라며 감시 카메라나 디지털 낙서장이 낙서를 완전히 근절하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그러면서 "낙서 제거 작업 이후에는 다시 더럽히는 데 심리적으로 부담을 느낄 수 있다"며 낙서를 지우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벽이나 문화재에 낙서를 하면 훼손 정도나 작품의 가치에 따라 벌금형이나 구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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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피렌체 대성당 [AP=연합뉴스 자료사진]

ykhyun14@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03/17 11:49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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