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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그곳] 호텔 뭄바이(Hotel Mumbai)
2019-08-14 08:01:02최종 업데이트 : 2019-08-14 08:01:02 작성자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권혁창 기자 = 2008년 11월 26일 밤 9시 30분 인도 뭄바이의 한 철도역 플랫폼. 두 젊은 남자가 배낭에서 소총과 수류탄을 꺼내 기차를 기다리던 승객들에게 무차별 난사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철도역뿐이 아니었다. 총 10명이 5개조로 나뉘어 뭄바이의 호텔, 병원, 카페 등에서도 동시다발적인 테러 공격을 가했다. 테러범들은 타지마할 호텔 등 3곳에서 인질극을 벌였다.
대테러 특수부대가 투입돼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걸린 60시간 동안 195명이 죽고 350여명이 다쳤다. 테러범 10명이 소지한 무기와 폭탄의 양은 5천명을 살해할 수 있는 분량이었다고 한다.
◇ 뭄바이의 자존심
영화 '호텔 뭄바이'(안소니 마라스 연출, 2018)는 전 세계를 경악시킨 뭄바이 연쇄 테러 이야기다. 테러 발생 10주년을 맞아 타지마할 호텔을 중심으로 사건을 스크린에 옮겼다.
타지마할 호텔은 테러범들의 메인 타깃(main target)이었다. 객실 560개, 스위트룸 44개, 직원 수 1천600명의 5성 특급 호텔이라는 수치만으로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인도 최대 도시 뭄바이의 자존심'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면 조금 수긍이 갈까. 최대 토착 기업인 타타그룹(Tata Group) 소유라는 것도 인도인들에게는 의미심장한 일이다.
100% 신빙성 있는 얘기는 아니지만, 타타그룹 창업주인 잠셋지 타타가 영국 식민지 시절 원주민이라는 이유로 뭄바이의 한 대형 호텔에 출입을 거부당한 뒤 건너편에 이 호텔을 세웠다는 일화도 있다.
한 세기를 거슬러 올라간 1903년 처음 문을 열었으니 100년 인도 근대사의 표징(表徵)이기도 하다.
인도 사라센 양식과 고딕 양식을 혼합한 호텔의 외관은 그 자체로 관광명소다. 이 호텔의 모든 창문은 바다를 향해 있다. 모든 객실에서 바다가 보이는 구조다. 창밖을 보면 배 위에 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고 한다.
설립 초기 유럽인들과 인도 왕족, 고위 관료들만 드나들었던 이곳은 이후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유명 인사들의 이름이 투숙객 리스트에 올랐다.
소설가 서머셋 모음, 재즈 아티스트 듀크 엘링턴, 팝 가수 마이클 잭슨, 다이애나 왕세자비, 전 미국 대통령인 빌 클린턴·버락 오바마 등 일일이 나열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다.
◇ 테러의 배후와 배경
테러의 목적은 단순히 상대를 물리적으로 타격하는 데 있지 않다. 폭력이 주는 공포를 피해자뿐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에게 퍼뜨리는 게 테러의 본질이다.
그래서 테러는 늘 무대 위에서 일어난다. 그 무대는 크고 화려하고 뭇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수 있는 곳일수록 효과적이다.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목표물이 됐듯이 타지마할 호텔에서 일어난 테러에 세계가 집중했다.
당시 호텔 안에는 한국인도 26명이나 있었다. 마침 열린 한-인도 실업인 대회 창립모임에 참석했던 사람들이었는데, 다행히 모두 호텔을 빠져나왔다.
도대체 뭄바이 테러는 왜 일어난걸까.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테러의 배후는 알-카에다와 연계된 남아시아 최대 무장단체 '라시카르-에-토이바'(LeT)로 지목됐다.
이 단체는 파키스탄의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다. 인도에는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오랜 갈등이 있다. 파키스탄 펀자브 지역의 심각한 가난도 거론된다.
이 단체가 테러에 나선 데는 카슈미르 지역에서 다수인 힌두교도의 이슬람교도 탄압이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러한 테러의 사회·종교적 배경에 사람들이 점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테러라고 하면 중동과 이슬람 극단주의만을 떠올릴 뿐, '테러는 무조건 나쁘다'라는 절대 명제 아래 선과 악을 고스란히 테러 피해자와 가해자로 동일시 한 뒤 그 이상은 더 알아보지도, 생각하지도 않는다.
영화 '호텔 뭄바이'는 테러 현장의 긴박감과 현장감이 압권이다. 웬만한 할리우드 장르 영화에 못지않다.
하지만, 이 영화도 테러의 배경에 대해선 당연하게도 불친절하다. 짧은 시간에 이야기를 압축해야 하는 영화가 테러 현장에만 포커스를 맞춘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테러의 배경에 무관심하다면 이는 점차 확산해 가는 다중의 '무사유'에 다름 아니다.
'테러는 무조건 나쁘다'라는 태도만 가지고는 테러와 싸울 수 없다. 오늘날의 테러리즘은 아무런 제약 없이 목표물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제국주의 시대, 반식민주의 투사가 '원흉'을 향해 폭탄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미증유의 폭력을 가해 공포를 확산시킨다. 그리고 누구든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그 이유만으로 공포는 무한대로 증폭된다.
이를 막기 위해선 테러의 배경과 맥락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환기돼야 한다. 공포의 확산이라는 효과를 노리는 테러 집단은 보편적인 정치적 입지를 갖지 못하고 고립될 때 테러라는 수단의 유혹을 받기 때문이다.
그 집단이 테러리즘을 포기하도록 하려면 테러 외에 그들의 의사를 표현할 다른 수단이 주어지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테러의 배후뿐 아니라 배경에도 관심과 조명이 필요하다.
◇ 뭄바이 테러는 치유됐나
타지마할 호텔을 보유한 타타그룹의 계열사 타타호텔스컴퍼니는 뭄바이 테러의 영향으로 그해 순이익이 전년 대비 96% 급감했다.
그러나 타지마할 호텔은 같은 해 12월 부분 개장해 영업을 재개한 데 이어 2천500억원을 쏟아부어 2009년 11월 인질사태로 폐허가 된 헤리티지 윙을 재건했고, 테러 20개월 만인 2010년 8월 인도 독립기념일을 맞아 전면 재개장했다.
뭄바이 테러의 상처는 일단 외형적으로는 치유된 듯하다. 그러나 테러의 배경에 대한 무관심은 결국 더 큰 테러를 낳을지도 모른다.
테러의 악순환은 선악 이분법의 무한 증식을 가져오고, 그런 세상에는 공존이나 대화는 없고 오로지 배제와 투쟁만이 존재할 것이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faith@yna.co.kr
[영화 속 그곳] 호텔 뭄바이(Hotel Mumb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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