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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100년 역사의 흔적…진해는 근대문화유산 보고
2016-08-06 07:00:00최종 업데이트 : 2016-08-06 07:00:00 작성자 :   연합뉴스
걷거나 자전거 탐방 추천 "도심 전체가 박물관이자 타임 캡술"

(창원=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경남 창원시 진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해군과 벚꽃이다.

그러나 진해의 진면목은 20세기 역사를 한껏 품은 근대문화유산에 있다.

동북아 100년 역사의 흔적…진해는 근대문화유산 보고_1
전국최초로 세워진 이충무공 동상(왼쪽), 러시아풍 진해우체국(오른쪽 위), 100년이 넘은 여좌천 둑(오른쪽 아래)

봄·가을도 좋지만 여름휴가나 업무차 진해로 왔다면 해질 무렵 진해시가지를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근대문화유산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진해는 도심 전체가 박물관이자 타임 캡술이다.

발길 닫는 곳마다 지은지 100년 안팎이면서 이국적인 옛 건물들이 꼭꼭 숨어 있다.

문화재청이 등록문화재로 지정한 근대 건축물만 7곳에 이르고 창원시 근대건조물 9개 중 6개가 있을 정도로 진해는 근대 건조물의 보고다.

진해에 해군이 주둔하면서 주변이 덩달아 개발이 어려운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홍성철 진해문화원 부원장은 "군부대가 진해 발전을 더디게 했지만 거꾸로 근대문화유산을 보존하는데는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그는 "진해 시가지에 남아 있는 근대문화유산 대부분이 해군부대가 몰려 있는 시가지 서쪽에 있다"고 덧붙였다.

일제가 침략목적으로 만들긴 했으나 진해 시가지 자체가 근대의 산물이다.

일제는 1900년대 초 바다에서 적이 침입하기 어려운 요새 지형을 갖춘 진해에 해군기지를 건설했다.

군병력을 따라 이주한 일본인들이 머물도록 현재의 중원로터리를 중심으로 방사선 형태로 8갈래 길을 만들고 시가지를 만들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계획도시인 진해의 시작이었다.

지금도 그때 도시 구조와 8갈래 길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근대 건조물 여행의 시작점은 중원로터리다.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러시아풍으로 1912년 지어진 진해우체국(사적 291호)이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러시아풍 건물이 진해에 있는 까닭은 일찌기 러시아 공사관이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다.

2000년까지 우체국으로 사용됐을 정도로 보존상태가 좋다.

진해우체국에서 유람선 터미널 쪽으로 걷다보면 일본인들이 살았던 2층짜리 연립주택형인 나가야(長屋)가 나온다.

한자 그대로 길다란 목조건물이 도로를 따라 늘어서 있다.

동북아 100년 역사의 흔적…진해는 근대문화유산 보고_1
진해탑(왼쪽 위), 나가야(왼쪽 아래), 흑백다방(오른쪽 위), 해군통제부 병원장 사택(오른쪽 아래)

나가야 건물 모퉁이를 돌면 1938년 건립된 일제시대 해군통제부 병원장 사택(등록문화재 193호)이 보인다.

지금은 선학곰탕이란 이름의 음식점이 영업중이다.

내부는 옛 일본식 가옥 특징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

해군장병들이 꼽는 맛집인 중국음식점 원해루(元海樓)도 중원로터리 주변에 있다.

원래 이름은 영해루(榮海樓)였다.

6·25 전쟁때 중공군 포로였던 장철현씨가 1956년 개업한 중국요리집으로 60년 가까이 한자리에서 중국음식을 판다.

이승만 대통령 등 유명인들이 다녀갔으며 영화 장군의 아들 촬영지였다.

원해루에서 도로를 사이에 둔 맞은편에는 지붕모양이 뾰족해 뾰족집으로 불린 수양회관(현 곱창전골식당)이 있다.

1938년 지어진 이집은 6각 형태의 누각이 있는 중국풍 건물이다.

문화재는 아니지만 독특한 외관이 인상적이다.

이밖에 1955년 문을 열어 여전히 영업중인 흑백다방, 1926년 세워진 진해역(등록문화재 192호), 일본이 세운 러일전쟁 전승 기념탑을 부순 자리에 1967년 세운 군함 형태의 건물인 진해탑도 중원로터리 주변 볼거리다.

중원로터리 쪽에서 내수면연구소 쪽으로 올라가면 벚꽃명소로 유명한 여좌천이 나온다.

여좌천 둑도 100년이 넘는 석조 건조물이다.

일본이 진해를 군사도시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1910년 무렵 하천 범람을 막으려고 조선인들을 동원해 만들었다.

충무공의 후예가 모이 있는 도시답게 국내 최초로 세운 이순신 장군 동상도 진해에 있다.

북원로터리에 있는 충무공 동상은 1952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건립됐다.

남원로터리에 있는 김구 선생 친필시비는 1947년 세워졌다.

진해를 방문한 선생이 남긴 서해어룡동 맹산초목지(誓海魚龍動 盟山草木知·바다에 서약하니 물고기와 용이 감동하고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아는구나)란 한시를 돌에 새긴 것이다.

해군진해기지사령부 안에도 근대문화유산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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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방비대 사령부(왼쪽 위), 진해요항부 병원(왼쪽 아래), 진해방비대사령부 별관(오른쪽 위), 진해요항사령부(오른쪽 아래)

사령부 정문 근처에는 爲國獻身軍人本分(위국헌신군인본분·나라 위해 몸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라는 글을 음각으로 판 새겨진 안중근 의사 유묵비가 있다.

이어 일제가 군수품을 수송하려고 깔아놓은 철도 진해선 종점인 통해역(統海驛)이 나온다.

2006년까지 해군장병들의 출퇴근용 기차가 다녔다.

통해역 이후부터는 고색창연한 붉은 벽돌로 지은 서양풍 건물 형태의 등록문화재들을 줄줄이 볼 수 있다.

옛 진해요항부 사령부(등록문화재 194호), 옛 진해요항부 병원(등록문화재 197호), 옛 진해방비대 사령부 본관·별관(등록문화재 195호·196호) 등 지은 지 100년이 넘은 건물들이 탐방로를 따라 줄줄이 들어서 있다.

해군은 문화재인 이 건물들을 지금도 쓰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머물던 별장도 해군진해기지사령부내에 있다.

옛 일본해군 통신대가 쓰던 건물을 양옥과 한옥을 절충해 별장으로 꾸몄다.

이 대통령 부부가 쓰던 침대, 탁자, 의자,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싱크대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유사시에 대비해 침실 옆에 해안가로 급히 피신할 수 있도록 파놓은 비상탈출구까지 그대로 있다.

별장 옆에는 1949년 8월 8일 이승만 대통령이 중화민국 장제스 총통을 만나 태평양 동맹 결성을 위한 예비회담을 제안한 육각형 형태의 정자에 앉아 볼 수도 있다.

해군기지내 근대문화유산은 예약을 해야 둘러볼 수 있다.

창원시는 해군의 협조를 받아 20인 이상의 단체 관광객에 한해 해군진해기지사령부 내 근대문화유산을 둘러보는 군항문화탐방 관광객을 연중 모집한다.

군 기지인만큼 군사시설을 무단 촬영했거나 훼손하면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에 따라 처벌을 받을 수 있어 어느정도 행동의 제약을 감수해야 한다.

seaman@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08/06 07: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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