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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으로 승화된 경기재인청 춤을 지켜가는 춤꾼들
“깊이가 깊어 그대로를 지켜가는 일이 가장 힘들어요”
2019-02-11 17:58:09최종 업데이트 : 2019-02-14 14:05:00 작성자 : 시민기자   하주성
고성주 명인이 제자들과 함께 재인청춤 중 교방무를 추고 있다

고성주 명인이 제자들과 함께 재인청춤 중 교방무를 추고 있다

'재인청(才人廳)'은 조선조 말 세습 무녀와 화랑, 재인, 광대 등 직업적인 민간 예능인들의 예능 및 사회 활동을 관장했던 민간조직체였다. 1920년대 일제에 의한 문화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재인청이 문을 닫을 당시 재인청에 속한 인원이 3만여 명에 달했다고 하니 당시 재인청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할 만하다.

재인청이 흡사 세습무부들의 집단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지만 재인청의 조직은 상당히 엄격했다. 재인청은 경기도를 비롯해 충청과 전라도에도 있었으며, 각 도 재인청의 수장을 대방이라고 하고 그 밑에는 좌·우 도산주가 있었다. 각 군에도 재인청이 있어 군의 재인수장을 장령이라고 불렀다. 재인청에서는 선생 밑에 제자들을 두어 학습을 하게 하였으며, 전국에 산재한 많은 예인들이 이 재인청에서 학습을 하거나 재인청에 적을 두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재인청은 그 규제가 까다로워 스스로의 천시 받는 형태를 벗어나기 위해 당시에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스승에게 예를 갖추지 않거나 주정을 하면 태장을 칠 정도로 엄한 규제 속에서 조직을 이끌어 갔다.

지금도 경기도 내의 여러 곳에 보면 광대마을, 혹은 재인마을로 불리는 곳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아마도 지난 날 군 재인청이 있던 곳으로 보인다. 재인청이라는 곳이 춤을 추거나, 단지 소리를 하거나 하는 예인집단이 아니다. 재인청이란 한 마디로 3도에 있던 모든 예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거대한 기, 예능조직이었다.
고성주 명인은 스승 고 이동안 선생에게서 30여 종이 넘는 재인청춤을 사사받았다고 한다

고성주 명인은 스승 고 이동안 선생에게서 30여 종이 넘는 재인청춤을 사사받았다고 한다

故 운학 이동안의 춤을 기억하다

경기재인청에서 가장 많은 활동을 하고 가장 많은 춤제자를 남긴 사람은 바로 고 운학 이동안 선생이다. 이동안 선생은 1906년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송곡리에서 재인청의 세습광대 후예 이재학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세습광대의 집안으로서 그의 할아버지(이화실)는 단가와 피리의 명인이었고, 작은할아버지(이창실)도 줄타기의 명수였다.

이동안 선생은 그런 재인청의 기예를 물려받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집안의 반대로 통감 등을 서당에 가서 배웠다. 하지만 그런 학습보다는 재인들의 재주에 눈을 뜬 이동안 선생은 가출을 하게된다. 그 후 부친에게 붙들려 돌아왔지만 선생의 예능에 대한 배우고자 하는 마음은 해가 갈수록 깊어만 간다.

이동안 선생은 용인 춤꾼인 김인호에게 재인청 춤을 배운다. 이동안 역시 김인호와 같이 화성재인청 출신으로 1922년 광무대로 진출하여 김인호로부터 전통춤과 장단을, 김관보에게 줄타기를, 장점보에게 대금, 피리와 해금을 배웠으며, 방태진에게 태평소를, 조진영에게 남도잡가를, 박춘재에게 발탈을 배워 다양한 방면의 예능을 두루 익혔다.

이동안 선생이 기억하고 있는 춤은 모두 41종에 이른다. 이동안 선생이 생전에 기억하고 있던 재인청류의 춤은 기본무, 살풀이춤, 승무, 태평무, 엇중모리 신칼대신무, 한량무, 화랑무, 도살풀이, 검무, 선인무, 팔박무, 진쇠무, 승전무, 장고무, 노장무, 소고무, 바라무, 나비춤, 장검무, 신노심불로, 학무, 하인무, 춘앵무, 화선무, 포구락무, 연화대무 등이다. 이동안 선생이 스승 김인호에게서 배운 춤은 17종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김인호 외에도 많은 재인에게서 춤을 배운 것으로 보인다.
제자들이 추고 있는 '엇중모리 신칼대신무'를 보고 있다

'엇중모리 신칼대신무'는 이동안 선생에게서 보편적으로 전해진 춤이다

스승에게서 배운 재인청 춤을 전수하는 고성주 명인

경기안택굿보존회 고성주 명인은 이동안 선생 생전에 가장 오랜 시간을 춤을 배운 사람이다. 이동안 선생이 기억하고 있는 41종의 재인청 춤 중 그가 선생에게서 전수받은 춤은 30여종이 넘는다고 한다. 매년 한 차례씩 경기재인청 춤을 무대에 올리는 것도 선생의 춤을 온전히 기억해 내기 위함이다.

9일 오후, 팔달구 지동 271~124에 소재한 고성주 명인의 집을 찾아갔다. 이 집 지하에 무용연습실이 있고, 그곳에서 제자들에게 재인청춤을 전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하 연습실에는 고성주 명인을 비롯해 김현희, 김미경, 박미애씨 등이 경기재인청의 춤 중 엇중모리 신칼대신무와 교방춤을 추고 있다.

"재인청춤을 배운 많은 사람들 중 선생님에게 배운 춤꾼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 다음 대에 학습한 제자들이 재인청춤을 추고 있어요. 그런데 요즈음 그들이 추는 춤을 보면 이동안 선생님의 춤과는 동떨어진 춤을 추고 있죠. 그런 춤을 무대에서 추면서 이동안 선생님의 존함을 팔고 있다니 한심할 뿐이죠."

고성주 명인은 어려서부터 이동안 선생의 무릎제자로 재인청춤을 배웠지만, 요즈음 재인청춤이라고 해서 추는 것을 보면 전혀 다른 춤을 추고 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사람들이 재인청춤이나 이동안류 춤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이라도 스승의 춤을 온전히 전승시켜야 한다면서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엇중모리 신칼대신무는 춤 장단에 엇중모리가 들어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엇중모리 신칼대신무는 춤 장단에 엇중모리가 들어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멋과 깊이가 다른 재인청춤

그동안 고성주 명인에게서 재인청춤을 배워나간 제자들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이번에 춤을 배우고 있는 제자들은 춤을 제대로 알고 있는 제자들이라고 한다. 춤을 추어온 지 15년 정도가 된 사람들로 재인청춤의 멋과 깊이에 반해 찾아온 사람들이다.

"만석공원에서 선생님이 재인청춤 공연을 하는 것을 보고 그 멋에 반해 선생님을 찾아왔어요. 그런데 제자들을 받지 않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세 번이나 찾아와 겨우 승낙을 받았어요. 재인청춤은 추면 출수록 그 깊이가 있고 멋을 알아가게 되죠."

전통춤을 추어왔지만 진정한 전통춤을 고성주 명인이 추는 재인청춤 발표회를 보고 알았다고 하는 김미경씨는 "전통은 원형이 지켜질 때 그 멋이 더 있다"면서 "앞으로 춤을 더 열심히 추겠다"고 한다. 깊이가 있고 멋을 더한 화랭이 위주의 춤인 재인청춤. 김인호-이동안-고성주로 이어진 재인청춤이 이제는 제대로 전승되고 그 가치를 인정받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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