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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행궁 봉수당, 자혜의원으로 사용된 것을 아시는가
‘화성행궁 펜스 사진전1 우화관 그리고 신풍초등학교’ 사진전 관람 후 분노 치밀어
2019-05-14 22:53:14최종 업데이트 : 2019-05-17 14:30:26 작성자 : 시민기자   김연수

수원화성은 백성들을 풍요롭게 살게 하고 행궁의 안전한 방어를 위한 성이다. 행궁은 수원화성 성안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모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정조임금이 수원행차시 머물렀던 봉수당, 혜경궁 홍씨 회갑연과 아들 순조에게 왕위를 물러주고 어머니를 모시고 수원에서 머물 때를 위해 봉수당과 서로 통하게 만든 장락당은 행궁에서도 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건물이다. 이처럼 역사가 깃든 봉수당과 장락당, 행궁 대부분의 전각에 일본 총독부가 환자를 치료하는 자혜의원을 만드는 만행을 저질렀다.

봉수당을 자혜의원으로 사용하던 당시 봉수당 건물이 원형으로 남아있다.

봉수당을 자혜의원으로 사용하던 당시 봉수당 건물이 원형으로 남아있다.

수원화성 행궁은 일제강점기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다 2003년에 1차 복원이 되고, 지금은 완전한 2차 복원을 위한 우화관 복원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수원 시민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기자도 2001년 4월에 수원 시민이 되어 살고 있다. 산천이 두 번 바꿨을 20년의 시간이 흘렀다. 행궁이 자혜의원에 이어 경찰서 등으로 사용되는 수난을 겪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정확히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를 거듭해 왔는지 몰랐다. 때마침 행궁동 담벼락 갤러리에 '화성행궁 펜스 사진전1 우화관 그리고 신풍초등학교'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담벼락 사진전을 관람하는 시민

담벼락 사진전을 관람하는 시민

80점의 사진전은 행궁 수난의 역사와 우화관이 1896년 수원군공립소학교로 사용되고 교명을 신풍초등학교로 변경한데 이어 우화관이 콘크리트 건물로 바뀐 변천사도 볼 수 있다.

 

추억의 흑백사진 봉수당이 있던 뒤쪽 팔달산은 벌거숭이산이 되어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흑백사진 신풍루(헤르만산더, 1907년) 모습을 본다. 파괴되지 않고 온전한 봉수당이 자혜의원으로 사용 될 당시의 모습도 보인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인 것 같다. 뜰에 서 있는 버드나무인지 은행나무인지 모르지만 바람에 흔들린다. 자혜의원 앞으로 모자를 쓴 사람이 말을 타고 지나가고 어린아이는 사다리에 올라 사진 촬영하는 것이 신기한 뜻 쳐다본다.
 

1923년 사진에는 봉수당을 허물고 그 자리에 근대식 건물 2층 슬레이트 지붕으로 된 경기도립병원이 들어서 있다. 이때가 바로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우리민족에게 핍박을 가할 때다. 수원군청으로 쓰이던 낙남헌 건물도 보인다. 낙남헌은 각종 행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공간을 알맞게 배치한 행사용 건물이다. 원래 이 자리에 있었던 득중정을 노래당 옆으로 옮겨 짓고, 그 터를 넓혀서 1794년 정조 18년에 완공했다. 낙남헌은 수원화성행궁 부속 건물 중에서 파괴되지 않고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유일한 건물로 1972년 경기도 기념물 제 65호로 지정됐다가 해제됐다.

우화관 수원공립보통학교 개교

우화관 수원공립보통학교 개교

옛 신풍초등학교 전신인 수원공립보통학교로 쓰였던 우화관 건물 사진이 있다. 남학생은 모자를 쓰고 여학생은 치마저고리를 입고 교사와 함께 단체 촬영한 사진이다. 우화관 건물이 허물지지 않은 상태 그대로 인데 건물 현관에 일장기와 학교기가 달려 있다. 여자 교사는 일본 전통의상 '기모노'를 입었으며 남자 교사는 경찰 복장처럼 보이는 검은 정복 차림에 지팡이인지 총인지 분간 못할 긴 막대를 땅에 짚고 있다.

 

1950년대 경기도립수원의원 정문에서 신문과 서류가방을 든 까까머리 학생으로 보이는 소년이 씩씩하게 걸어 나오고 있다.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 병원에서 일하는 것이 자랑스러워하는 당당한 모습으로 비친다. 1960년대가 되자 경기도립병원이 근대식에서 현대식 2층 콘크리트 건물로 단장된다. 하늘 높게 솟아오른 굴뚝이 보이는 것을 보니 난방시설을 갖춘 것 같다.

행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수원의료원 경찰서 여성회관이 들어서 있다.

행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수원의료원 경찰서 여성회관이 들어서 있다.

1989년 사진에는 행궁의 모든 전각이 사라지고 봉수당은 수원의료원, 봉수당을 바라보며 오른쪽은 경찰서 왼쪽은 여성회관, 우화관이 있던 곳은 신풍초등학교로 변해 4~5층 건물이 들어서 있다. 현대식 건물이 즐비한 이곳이 정조임금이 정치적 꿈을 실현하기 위해 혼혈을 쏟았던 행궁이 있었던 자리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흔적 조차 찾아볼 수 없게끔 변했다.

1996.7.18 행궁복원 기공식 장면

1996.7.18 행궁복원 기공식 장면

「'水原城 축성 200周年의 해' 화성행궁복원 기공식 1996. 8. 18 수원시」라고 적힌 기공식 사진을 본다. 흑백사진에서 칼라 사진으로 바꿨다. 여성 안내원들이 붉은 치마저고리를 입고 있다. 1997년 사진은 봉수당 건물 상량식 행사가 진행된다. 궁중 음악이 연주되고 시민들은 봉수당 건물이 제 모습을 갖춰가는 장면을 지켜본다.

 

봉수당과 장락당 복원공사 전 과정을 보여주는 사진에서 한옥이 어떤 과정으로 지어지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기단석을 쌓고 나무기둥을 세우고 대들보를 올리고 서까래를 걸치는 과정, 그 위에 통나무를 덮고 물에 갠 흙을 바르고 기와를 올리는 모습까지 볼 수 있다.

 

현재 복원되고 있는 우화관터에 있는 신풍초등학교 철거전과 철거 후 모습을 볼 수 있다. 학생들의 생활상과 교실 역사관 등 다양한 사진도 있다.

행궁 전각 복원공사 현장

행궁 전각 복원공사 현장

'화성행궁 펜스 사진전1 우화관 그리고 신풍초등학교' 담벼락 사진전 관람은 처음부터 찬찬히 살피고 느끼면서 보아야 한다. 관람이 끝나면 행궁을 방문하여 사진전에서 본 당시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하면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담벼락 사진전이 철거되기 전에 꼭 관람하여 수원화성행궁의 과거와 오늘을 느껴 보길 바란다.

수원행궁복원, 봉수당. 자혜의원. 우화관, 낙남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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