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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취만 남기고 떠난 여인, 나혜석의 흔적을 찾아서
수원 태생, 그녀의 숨길 찾아 곳곳 돌아보다
2020-07-29 12:58:39최종 업데이트 : 2020-08-10 15:34:39 작성자 : 시민기자   강남철

나혜석 생가터

'나혜석 생가터' 표지석이 장소임을 알린다


코로나19로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대하지 않고 사람과 사람이 직접 접촉하지 않아야 하는 상황속에서 기자는 우리나라 최초 여성 서양화가이자 수원 태생인 나혜석을 만나기로 하였다. 

1896년 수원에서 태어나 남성 중심 권위와 도덕 앞에 조선 여성들을 대변하고, 새로운 여성상을 만들고자 했던 그녀는 남녀평등과 자유연애를 주장하며 일방적인 현모양처를 비판했다. 시, 소설, 그림을 잘 그리며, 3.1운동에도 깊숙이 관여한 신여성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최초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과의 만남은 그녀가 1896년 수원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던 때 부터 타향과 타국을 돌아 다시 고향을 찾을 때 까지의 지난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 부터 시작하였다. 
 

첫 만남은 수원시 팔달구 신풍동 '나혜석 생가터'다. 그녀가 살던 집은 보이지 않고 매만져 곱게 꾸민 장미꽃에 둘러싸인 표지석만 외로이 서있다. 그녀가 즐겨 그림을 그리는데 바탕이 되는 재료 중 하나가 작약꽃이다.

나혜석기념 자료관, 2층에 나혜석기념 자료관이 있다

나혜석기념 자료관, 2층에 '나혜석기념 자료관'이 있다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 길모퉁이를 돌면 수원 문학인의 집이 나온다. 1층은 수원문인협회가 상주하고 2층에 '나혜석기념 자료실'이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혜석이 직접 그리거나 쓴 작품보다 그녀 관련 자료나 작품만 전시되어 있다. 옥탑방 같은 셋방살이 모습이다.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2층 한쪽 구석에 나혜석 상설전시관이 있다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2층 한쪽 구석에 '나혜석 상설전시관'이 있다

 


다음은 행궁광장 옆에 설립된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내의 '나혜석 상설전시관'을 찾았다. 커다란 마술관 건물 2층 한쪽 구석에 '나혜석 상설전시관'이 2~3평 남짓 전시되고 있다. 현재 미술관 1, 2, 3, 4 전시실에서 수원 태생 '백영수' 전이 열리는 것과 비교가 된다.
 

삼일여학교, 현재는 매향여자정보고등학교이다

삼일여학교, 나혜석이 다니던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현재는 매향여자정보고등학교이다화홍문과 수원천 나혜석이 쓴 시 냇물의 배경이 된 곳이다

화홍문과 수원천, 나혜석이 쓴 시 '냇물'의 배경이 된 곳이다

 

1910년 당시 종로교회가 운영했던 삼일여학교(현 매향중학교)를 나온 나혜석은 서울 진명여자보통고등학교를 다녔다. 여학교는 수원천 건너편에 있다. 멀리 화홍문이 보인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그녀는 화홍문, 화녕전, 화성, 융건릉, 방화수류정, 서호를 찾아 그림을 그렸다.
 

수원포교당 수원사, 1929년  '나혜석 구미(歐美) 사생화 전람회'가 열렸다

수원포교당 수원사,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1929년 '나혜석 구미(歐美) 사생화 전람회'가 열렸다


1929년 9월 23~24일 '나혜석 구미(歐美) 사생화 전람회'가 수원 불교 포교당(남수동)에서 열렸다. 수원 최초의 개인전이었다. 이처럼 왕성한 활동을 한 나혜석은 1933년 남편 김우영과 이혼 후 기억 속으로 사라진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길지도 넓지도 않은 인계동 '나혜석거리'이다. 길 양쪽 들어가는 어귀에 나혜석 석상[石像]이 있다. 효원공원 쪽에서는 어머니 나혜석, 반대편에는 화가 나혜석 석상이다.
 

나혜석거리 세워진 나혜석 석상

'나혜석거리'에 세워진 나혜석 석상


'나혜석 생가터'에서 '나혜석거리'까지 거리는 4km, 택시로는 약 15분, 걸어서 1시간이다. 어떻게 여기에 조성되었을까? 1998년 거리를 새로 조성하고 길을 다듬을 때 당시 논란에도 불구하고 문화거리에 썩 어울리는 이름으로 채택됐다.

20년이 지난 현재, 거리에는 사방에 하늘을 지붕이나 벽 따위로 가리지 않는 좌석들과 시끌벅적 맥주 한 잔의 만남으로 빚어지는 밤 풍경이 보인다. 나혜석이 꿈꾸던 삶을 되돌아 그려보는데 한계가 있다.
 

고희동미술관, 외쪽은 미술관 밖 오른쪽은 내부모습

서울시 종로구립 '고희동미술관', 외쪽은 미술관 밖 오른쪽은 내부모습

 

수원 출생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이라면 최초의 남성 서양화가는 서울 비파동 출생으로 춘곡 고희동(1886)이 있다. 서울 종로구에는 종로구립 '고희동 미술관'이 있는데 그가 41년간 거주한 집을 근대식 한옥 복원공사를 거쳐 2012년 개관한 게 부럽다.

나혜석은 1946년 12월 눈보라 치던 날 거리에서 행인에게 발견되어 시립 자제원(지금의 서울시립남부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녀는 무연고 행려병자로 분류된 채 생을 마감한다.

그녀가 어디 묻혀있는지 조차 알길이 없다. 경기도 화성군 봉담면 어느 야산에 있다고 알려졌으나 정확한 위치는 불명확하다. 다만 인계동 한 거리를 서성이는 나혜석이 있을 뿐이다.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을 기억하기 위한 '고희동 미술관' 처럼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을 위한 '나혜석 미술관'이 설립되면 어떨까? 파편화된 그녀의 흔적을 모을 수는 없을까? 그녀의 집에서 따뜻한 차 한잔과 그녀가 그리던 작약꽃을 보며 서로를 마주하고 웃으며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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