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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亭子)의 도시 수원…수원화성은 정자로 꾸며진 성곽
수원의 정자를 생각하며 아름다운 수원을 다시 한 번 느끼다
2020-01-22 12:40:14최종 업데이트 : 2020-01-22 12:40:09 작성자 : 시민기자   하주성
보름달이 방화수류정 위로 떠오르면 아름답다

보름달이 방화수류정 위로 떠오르면 아름답다


우리나라는 경관이 아름다운 곳을 찾아가면 꼭 한 가지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아름다운 경관을 살필 수 있는 정자가 서 있다는 것이다. 정자는 대개 그곳의 경치를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지으며 자연스런 멋을 지나치지 않을 정자를 짓는다. 명칭 뒤에 정(亭), 대(臺), 루(樓) 등의 명칭을 사용한 것은 모두 정자를 뜻한다.

사적이자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에는 치성 위에 전각을 짓고 명칭을 붙였다. 그 명칭들이 대게는 정자를 상징한다. 동북각루(방화수류정), 동남각루, 서북각루, 서남각루(화양루) 등이다. 이 중에서 정자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은 방화수류정과 화양루 등을 들 수 있지만 모두 누각이 정자와 같은 형태로 지은 전각을 치성 위에 얹었다.

수원화성이 대단하다는 것은 치성 위에 지은 구조물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밖으로 돌출된 치성 위에 전각을 짓고 그 용도에 따라 명칭을 붙였다. 물론 수원화성을 지키기 위한 용도로 지어진 전각들이지만 그 하나하나가 모두 용도가 다르고 크기와 모양도 다르다. 그것 하나를 보더라도 수원화성이 얼마나 아름다운 성인가를 알 수 있다.

봄이되면 방화수류정 주변은 꽃으로 치장을 한다

봄이되면 방화수류정 주변은 꽃으로 단장을 한다


북에 방화수류정이 있다면 남에는 화양루가 있다.
수원화성 <동북각루>의 별칭은 '방화수류정'이다. 이 말은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닐다'라는 말이다. 그 정도로 동북각루는 아름다운 정자다. 독특한 건축미가 돋보이는 방화수류정은 2011년 3월 3일 보물 제1909호로 지정되었다. 수원화성의 건조물 중 4곳이 보물로 지정되었는데 그 중 한곳이 바로 방화수류정이다.

1794년 10월 19일 완공한 방화수류정은 그 아래 용연과 더불어 화성의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화성의 백미'라고 칭찬하는 방화수류정.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 보이는 방화수류정은, 주변감시를 하고 군사들이 쉬기도 하는 기능을 함께 갖고 있다. 방화수류정은 송나라 정명도의 시(詩) '운담풍경오천(雲淡風經午天), 방화류과전천(訪花隨柳過前川)'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수원화성 용도 끝에 자리하고 있는 화양루

수원화성 용도 끝에 자리하고 있는 화양루


화성의 북쪽에 방화수류정이 있다면 남에는 화양루가 있다. 화양루는 용도의 끝에 자리한다. 서남암문에서 170m 거리인 용도 끝에 마련한 서남각루에는 화양루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화'는 화성을 뜻하고 '양'은 남쪽을 뜻한다. 서남각루는 정조 20년인 1796년 4월 16일에 공사를 시작하여, 7월 20일에 완공하였다.

용도 끝에 자리한 화양루는 준 지휘소이자, 군사들이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다. 서남각루인 화양루가 서 있는 곳은 능선의 끝이자 용도의 끝이다. 이곳에서 양편으로 돌출된 성벽은 양편 모두가 치의 역할을 하고 있어 용도동치, 용도서치와 함께 적을 공격하기에 용이하게 축성되었다. 오죽하면 유네스코에서 18세기 동, 서양을 통 털어 가장 완벽한 군사시설이라고 화성을 극찬하였겠는가?

화성행궁 후원 담장 안에 소재하고 있는 미로한정

화성행궁 후원 담장 안에 소재하고 있는 미로한정


화성 행궁 미로한정(未老閒亭)의 정취
미로한정은 행궁 후원에 지은 정자이다. 후원 서쪽 담장 안에 있는데 미로한정이라는 말은 '장래 늙어서 한가하게 쉴 정자'라는 뜻이다. 노래당과 함께 갑자년(1804)에 세자에게 양위(讓位)하고 화성으로 가리라던 정조의 뜻이 담긴 명칭이다. 1790년(정조 14)에 세워 졌는데 1칸 6각정으로 '육면정(六面停)'이라고도 한다.

언제인가? 수원 야행 때 미로한정에 오르니 운치 있는 공연이 펼쳐졌다. 경기도립국악단 단원들이 달빛동행에 참가한 관객들을 위한 특별공연을 펼친 것이다. 대금 반주에 맞추어 시조 한 수를 읊는 공연이었다. 예전 정조대왕도 이런 분위기 때문에 미로한정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저 바라다만 보아도 절로 흥에 젖는다.

그런 미로한정의 정취는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다. 과거 학교를 다닐 때 대금을 전공했던 나로서는 그런 미로한정의 연주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달 밝은 밤이되면 미로한정을 찾아가 그런 분위기에 녹아들고 싶어도 야행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늘 마음 한 구석에 채워지지 않은 지난 세월의 아쉬움 때문인가 보다.

화성유수 등이 거북모양의 관인을 주고받던 곳인 영화정

화성유수 등이 거북모양의 관인을 주고받던 곳인 영화정


만석거 영화정과 축만제 항미정
만석거 한편에는 1996년에 복원한 영화정이 있다. 영화정을 교귀정이라고도 부르는데, 이곳에서 화성유수 등이 서로 거북모양의 관인을 주고받던 데서 유래한다. 영화정은 원래 수원미술전시관 앞쪽에 있던 자리를 떠나 이건했다고 한다. 가끔 만석공원을 돌아볼 때면 이곳을 들리곤 한다.

'만석거(萬石渠)'는 정조대왕이 수원 화성을 쌓으면서 정조19년인 1795년에 인공으로 축조한 저수지이다. 이 만석거로 인해 쌀 생산량이 1만석이나 늘어나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니 정조대왕의 위민정책을 알만하다. 이 만석거는 교귀정방죽, 북지 등 많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축만제 한 편에 자리하고 있는 항미정. 서호의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축만제 한 편에 자리하고 있는 항미정. 서호의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농촌진흥청을 끼고 서호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축만제 쪽으로 가다보면, 서호가 시작되는 곳 왼쪽에 정자 한 기가 서 있다. '항미정(杭眉亭)'이라는 현판이 걸린 정자. 이 정자는 조선조 순조 31년인 1831년, 당시 화성유수 박기수가 건립했다고 전해진다.

건립한 지 180년이 지난 이 항미정은 현재 수원시 지정 향토유적 제1호이다. 항미정이라는 정자의 이름은 중국시인 소동파의 시구 중 '서호는 항주의 미목 같다'고 읊은 내용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항미'라는 말 그대로를 풀어보아도 미인의 눈썹이요, 물의 가장자리라는 뜻이다. 정자의 도시 수원, 수원화성을 한바퀴 돌면서 치성 위에 지은 전각을 꼼꼼히 살펴보면 얼마나 아름다운 성인지 알 수있다.

정자, 수원화성, 방화수류정, 화양루, 미로한정, 항미정, 영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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