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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안보의식을 되돌아본 영흥도 전적비
인천 상륙작전을 성공시킨 해군첩보부대의 비화(秘話)
2020-05-07 17:12:50최종 업데이트 : 2020-06-01 10:56:36 작성자 : 시민기자   차봉규

영흥도와 대부도를 잇는 영흥대교

영흥도와 대부도를 잇는 영흥대교

친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집에서 무얼 하느냐고 묻는다. 갈곳도 없고 해서 그냥 집에 있다고 했더니 그럼 코로나 때문에 오랫동안 방콕만 했으니 바닷가로 나가 시원한 바닷바람좀 쏘이러 칼테냐고 한다. 오랜만에 반가운 전화다. 그러자고 했다. 하늘을 보니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다. 기온도  따뜻한 봄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승용차로 1시간쯤 갔을까  바다가 보인다. 전곡항이라고 한다.

 

전곡항을 지나 대부도라고 한다. 대부도는 애들 따라 와봤다고 했더니 그럼 영흥도로 가자고 한다. 대부도에서 30리쯤 더 가면 영흥도라고 한다. 영흥도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영흥면이다. 영흥면에 들어서니 도로 주변 비닐하우스에  포도나무를 키우고 있다. 바닷바람이 세차게 불기 때문에 하우스에서 키운다고 한다. 포도는 영흥면의 특산물이라고 한다. 노지의 포도나무는 아직 눈도 안 떴는데 하우스의 포도나무는 새 순이 한 뼘쯤 자랐다.

 

영흥도의 본래 명칭은  연흥도(延興島)였다. 그런데 고려말에 종실(宗室)인 익령군 기(琦)는 불안정한 정국으로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가족과 함께 이곳으로 피신해 살았다. 이때부터 익령군(翼靈君)의 이름 가운데 영(靈) 자를 따서 영흥도(靈興島)라고 부른 것이 지금의 영흥도라고 한다. 영흥도는 대부도와 잇는 영흥대교가 있다. 심플한 디자인에 보기에도 아름다운데 야간에 조명이 비치는 야경은 더욱 아름답다고 한다.

 

수산센터 주차장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니 바닷바람이 세차게 분다. 그래도 봄바람이라 냉기는 없다. 주차장이 운동장같이 넓어 보인다. 휴일에는 차를 댈 대가 없을 만큼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오늘은 바람 때문인지 코로나의 늪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때문인지 다소 여유가 있다. 친지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점심부터 먹고 영흥도 구경을 하자고 한다.

 

우리는 OO 횟집으로 들어갔다. 어림잡아 40 여평쯤 되는 것 같다. 봄바람 쏘이러 왔는지 바닷바람 쏘이러 왔는지 점심때가 되니 손님들이 끊임없이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하기사 우리도 봄바람 따라 여기까지 왔다. 우리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친지는 요즘 기사 많이 쓰느냐고 묻는다. 소재가 마땅치 않아 별로 쓰지 못한다고 했다. 그럼 기삿거리 소재를 구경시켜 주겠다고 한다. 이곳에는 북괴군과 연평해전에 참여했던 해군 퇴역함 고속정과 6.25 전쟁 때 인천 상륙작전을 성공시킨 '해군 첩보부대 전적비'가 있으니 취재해서 전쟁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라고 당부까지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생선회가 나왔다. 보기도 푸짐하니 먹 음적스러워 보여 침이 꼴깍 넘어간다. 오랜만에 생선회를 먹으니 입안에서 살살 녹는 것 같다. 생선회도 4월부터 6월까지가 제철이다. '봄 조기, 여름 농어, 가을 갈치, 겨울 동태'라는 말이 철 따라 생선 맛이 절정이라는 의미다. 횟감으로는 6월 농어라는 말이 있다. 농어의 맛이 절정이라는 의미다. 7,8월에는 바닷물의 수온이 올라오면서 18도 이상이면 비브리오균 발생으로 날생선 먹기가 부담스럽다.

제2 연평해전에서 교전중 침몰한 000호와 동종의 고속정

제2 연평해전에서 교전중 침몰한 참수리호와 동종의 고속정

점심을 먹고 해안 따라 서쪽으로 5분쯤 가니 해안가에 연평해전에서 북괴군 함정과 교전 중 침몰한 고속정 참수리호와 동종인 퇴역함이 해안에 정박해 전시되어 있다. 2002년 6월 29일 일본에서 열리는 월드컵 경기에 온 국민들이 흠뻑 빠져있을 때다. 연평도 근해 NNL 부근 해상에서는 남북 간 군사충돌이 일어났다. NNL을 순시하는 우리 해군 고속정에 북괴군 경비정의 기습공격으로 고속정 357호는 교전 중 침몰했다. 윤영하 소령 등 해군 6명이 전사하고 19 명이 부상을 당한 사건이 제2 연평해전이다.

해군 첩보부대 영흥도 전적비

해군 첩보부대 영흥도 전적비

참수리호에 다가가 보니 출입구에 자물쇠가 잠겨 내부를 보지 못하고 전적비(戰跡碑)를 보러 갔다. 전적비는 산 꼭대기에 세웠는지 올라가는 계단을 보니 45도쯤의 경사도가 까마득히 높아 보인다. 하도 높아 보여 오르면서 세어보니 자그마치 93계단이다. 정상에 올라와 보니 평평한 분지다. 전적비 왼편에는 태극기가 펄럭이고 좌우에는 영산홍이 곱게피어 영령들을 추모하는 꽃다발 같다.

사진출처; 용산 전쟁기념관 전시 1950년 9월 15일인천앞바다에 상륙하는 맥아더 사령관

  1950년 9월 15일인천앞바다에 상륙하는 맥아더 사령관(용산 전쟁기념관 전시 사진)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우리 군은 28일 만에 대구까지 후퇴했다. 낙동강에 최후 전선을 구축하고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는 중 이었다. 8월 24일 해군 첩보부대(부대장 함영수)는 영흥도를 거점으로 상륙 목표 해안을 비롯한 인천, 서울, 수원 등 북한군이 장악한 점령지역에서  첩보공작을 수행 9월 1일 미 극동사령부 첩보부대에 상륙작전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했다. 인천 상륙작전 이틀 전인 9월 13일에는 북한군 대대급 병력이 영흥도를 공격하자 해군 첩보 부대원들과 영흥도 청년 방위대원들이 북괴군과 전투가 벌어졌다.

 

이때에 해군 703함(중령 이성호)의 포사격 지원으로 북한군을 격퇴시켰다. 이 전투에서 해군 첩보 부대원과 영흥도 반공 청년단원 등 14인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의 희생과 공훈(功勳)을 기리기 위해 해군본부와 국가보훈처 옹진군 주민들의 지원으로 전적비를 세웠다. 우리 해군 첩보부대가 영흥도 첩보공작(Opertion Xray)을 성공시킴으로써 9월 15일 맥아더 사령관이 지휘하는 인천 상륙작전에 성공할 수 있었다.

영흥도 해수욕장 갈매기가 머리위를 비행하고 있다

영흥도 해수욕장 갈매기가 머리위를 비행하고 있다

영흥도 해수욕장으로 이동했다. 넓고 푸른 바다를 보면서 큰 숨을 들이쉬고 내쉬니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 하늘을 나는 갈매기들도 우리를 환영이라도 하는 듯 날갯짓을 하다 멈추고 머리 위를 빙 돌다가 백사장에 앉는다. 해수욕장 경사도 완만하고 백사장 모래도 세사(細沙)라 부드럽고 좋다. 수원 시민들도 사람들이 북적대는 먼 거리 해수욕장을 가기보다 거리도 가깝고 비용도 덜 들고 조용한  영흥도 해수욕장에 애들하고 놀러 오면 좋을 듯싶다. 오늘은 친지 덕분에 우리의 안보의식을 되돌아보는 좋은 시간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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