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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속으로-존엄사와 안락사
2008-12-18 13:50:32최종 업데이트 : 2008-12-18 13:50:32 작성자 : 시민기자   권오기

바다속으로-존엄사와 안락사_1
바다속으로-존엄사와 안락사_1
영화 '바다속으로' 줄거리이다. 26년 전, 수심을 알 수 없는 바다에서 다이빙을 하다 전신마비자가 된 남자가 있다. 라몬 삼페드로, 무기력한 전신마비자이기 보단 의욕적이고 이성적인 모습으로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찾고자 했던 그에게 바다는 단 1미터도 움직일 수 없는 인생을 안겨준 공간이자, 영원한 자유를 소망하는 꿈의 공간이다. 

가족들의 헌신적인 뒷바라지 속에 침대에 누워서 오로지 입으로 펜을 잡고 글을 써왔던 그의 소망은 단 하나, 안락사로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삶에 대한 권리 만큼 스스로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 또한 보장 받아야 한다.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자신과 자신이 살아온 삶을 위해 택하는 죽음을 어떤 근거로 막을 수 있을까?

바다속으로-존엄사와 안락사_3
바다속으로-존엄사와 안락사_3
라몬의 삶은 죽음보다 힘겨워보인다. 26년 전 바다속에서 라몬은 죽기 직전 건져 올려 진다. 그 후, 그는 죽음이 아닌 삶과 싸우고 있었고 고장난 몸은 그를 구속하고 상처받게 했다. 라몬의 죽음을 반대하는 형과 아버지, 라몬이 죽을 수 있도록 돕는 형수와 변호사, 라몬을 비난하는 전신마비 장애인 신부,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 라몬을 바라볼 뿐이다. 

그들은 라몬을 사랑하지만 라몬의 선택을 대신할 순 없다.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고 죽음을 원할 때 그 권리를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다. 그는 죽음을 통해 진정한 자유를 얻고자 했고, 그것은 도망이 아닌 권리를 말한 것이다.

바다속으로-존엄사와 안락사_2
바다속으로-존엄사와 안락사_2
안락사(安樂死)는 편안한 죽음을 뜻하는 그리스어를 17세기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직역한 말이다. 최근 안락사에 대한 정의에 대해 학술적으론 크게 둘로 나뉜다. 존엄사란 의식불명의 고통당하는 환자의 고통을 경감해주기 위해, 의사가 연명장치를 제거하여 죽게 내버려 두는 소극적 안락사와 독극물 주입 등으로 죽음을 앞당기는 적극적 안락사로 구분한다. 
 
존엄사(尊嚴死)는 죽음에 대한 생전에 환자 자기결정에 따른 치료중단이라는 점에서 안락사와 구별된다. 존엄사는 1975년 4월 15일 식물인간 판정을 받은 미국 칼렌 앤 퀸런의 치료 중단을 요구한 부모의 주장에 대해 재판에서 인간답게 죽을 권리를 사상 최초로 인정하면서 생겨난 말이다. 

최근 뇌사 상태에 빠진 환자에게 '존엄사' 를 인정한 법원의 첫 판결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서울 서부지법은 어제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김모(75·여)씨 가족이 "어머니에게서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달라"며 병원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소생 가능성이 없는 치료 행위는 무의미하다"며 "김씨로부터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고 주문했다.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을 보장한 헌법 10조를 판결 근거로 들었다. '행복하게 살 권리'만큼 '품위 있게 죽을 권리'도 인정하는 게 헌법을 따르는 길이라는 판단이다. 

2004년 서울 보라매병원 사건에서 경제적 이유를 내세운 가족의 뜻대로 치료를 중단한 의사 2명을 살인방조죄로 형사처벌한 대법원 판례가 있다. 그동안 안락사를 살인으로 보는 법 해석의 벽에 부닥쳐 김씨와 비슷한 처지의 수많은 환자가 본인의 희망과는 관계없이 불필요한 연명 치료 속에 고통을 받아 왔다. 

회생 가능성 없는 환자에게 연명 치료를 계속하는 것은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에게 물심양면의 고통을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존엄사에 관한 판례가 드물다. 그런 점에서 이번 판결은 하급심 판단임에도 우리 사회에 큰 숙제를 안겼다.

당장 이번 판결에 따라 비슷한 처지에 있는 환자 가족들의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되지만 모든 존엄사 판정을 소송에만 의존하기는 어렵다. 무의미한 치료임을 서로가 논의할 수 있는 합당한 제도적 장치와 합리적 협의과정이 전제됨이 없이, 그러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국립암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 10명 가운데 7명이 '소극적 안락사'에 찬성하지만, 자유로운 의사 개진은 금기시하고 있다. 시대적 변화에 따른 일부에서는 조심스럽게 존엄사 문제를 공론화하고 있다. 
 
의사협회는 2002년 4월 의사의 사회적 역할과 의무를 규정한 의사윤리지침을 제정하면서, 소극적 안락사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진 바 있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의원이었던 안명옥 의원은 2006년 3월 '불합리한 연명 치료 중단을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의원 9명의 서명을 받아 발의한 바 있다. 한편 종교계를 중심으로 한 일부에서는 우리 사회에 이미 만연한 생명경시 풍조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발해 왔었다. 

연세의료원 박창일 의료원장은 지난 12월 17일 오전 11시 병원 종합관 6층 교수회의실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난 16일 항소여부를 놓고 병원윤리위원회에서 논의한 최종 결정 내용을 이같이 발표했다. 미국의 경우, 존엄사 남용 가능성 때문에 엄격한 전제조건을 붙이고 있다. 연명(延命) 치료를 원하지 않는 말기환자가 미리 유언을 남기면 의식이 없어졌을 때 치료를 중단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생명에 관한 문제는 최대한 신중해야 하고 자칫 초래될 수 있는 생명경시 풍조를 방지하기 위해 관련 입법 전까지는 연명치료 중단의 기준에 관해 대법원의 최종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법적 제한 등을 고려해 상소키로 했다. 
그러나 환자 보호자의 고통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현실적 고려와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의 존엄성은 최대한 지켜져야 한다는 대명제에 따라 항소 없이 바로 대법원의 판단을 받는 비약상고를 결정했다"

박창일 의료원장은 이어 "원고측이 우리가 결정한 배경에 대해 이해하고 동의할 것으로 예상한다. 바로 원고측과 논의할 예정"이라며 "원고측이 비약상고에 동의하지 않으면 고등법원에 항소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일본은 1955년 요코하마 법원의 판례 이후 용인하고 있고, 네덜란드는 2000년 불치병 환자의 안락사를 인정하는 법을 통과시켜 적극적 안락사까지도 인정하고 있다. 생명 존중에 엄격한 교황청도 1980년 존엄사에 관한 선언문을 채택했다. 죽음의 시간만을 연장하고자 하는 '집착적 행위'보다는 생명을 포기하는 게 오히려 윤리적일 수 있다.

존엄사의 결정은 환자 가족만이, 의료진만이, 법조인만이 내릴 결정이 아니며, 모두가 주체가 되어 깊이 논의함을 통해 내릴 문제이다. 존엄사의 여부는 재판부가 결정할 사안이라기보다는, 병원 내의 제도적 장치를 통해 논의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회복이 불가능한 환자에게서 연명장치를 제거한다는 것은 환자 가족만이 부담할 짊은 아니며, 의사들도 어느 정도 함께 짊을 져야 한다. 병원 내에 마련된 의료진과 환자가족, 자원봉사자로서의 법률전문인 및 종교인 등으로 구성된 병원윤리위원회(존엄사위원회) 등의 활동을 통해, 이런 문제들을 심도 깊게 논의할 수 있는 인간적이며 신중한 장치를 만드는 일이 전제된다.
 
정말 무의미한 치료라면, 의료진과 환자의 가족들의 신중한 의논을 통하여 '연명'을 중지할 필요도 있다.  

고통을 피하려는 목적으로 극약 등을 투여해 목숨을 끊는 적극적 안락사는 용인하면 안 된다. 그것은 엄연한 살인행위로 환자를 도운 이들까지 엄히 다스려야 할 것이다. 존엄사가 악용되지 못하도록 사회감시체계를 구축하는 일도 중요하다.

가뜩이나 효와 품앗이 등 전통적 미덕이 사라지고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노인이나 빈곤층이 존엄사라는 이름으로 치료 혜택에서 멀어지는 패륜 사회가 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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