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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망증
한 겨울밤 두 시간의 조깅
2008-12-25 05:02:57최종 업데이트 : 2008-12-25 05:02:57 작성자 : 시민기자   최은희

나이가 들면서 늘어가는 것이 몇개 있다.  흰 머리카락, 잔주름, 뱃살 그리고 건망증...
그러나 건망증은 나이든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아들아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실내화, 안경, MP3 등을 종종 잃어버렸고, 나도 젊은 시절부터 건망증이 있었던 것 같다.
시댁에서 반지를 앞치마에 넣어두고 그냥 온다던지, 아기의  젖병을 하나씩 빠뜨리고 와서 다음 번에 시댁에 갔을 때 말없이 챙겨주시는 시어머니께 얼마나 민망하였는지 모른다.

좀 더 나이가 들어가면서 증세가  심해져서 급기야는 남편과 다투고나서도 그 다음날 다툰 사실을 잊고, 나중에서야 그 사실을 기억하고 계면쩍어 했던 때도 있었다. 
최근에는 난생 처음으로 친구들과의 약속을 잊고서 친구들을 한 시간이나 기다리게 한 일이 있다.
친구들은 달력에 동그라미로 크게 표시하라고 하지만,  달력에 표시한 사실조차 잊고 있으니 답답해서 혼자 가슴만 퍽퍽 칠 수 밖에 없다.

건망증이 악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지난 겨울 건망증 때문에 남편을 힘들게 했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남편이 저녁운동을 나간 사이에 서점에서 주문해 놓은 책을 가져가라는 전화를 받았다.  서점까지의 거리는 5분 정도라서 빨리 다녀오면 되겠다는 생각에 집을 나섰다. 

건망증_1
건망증_1

서점에서 책을 사고나서,  다음 날부터 운동을 시작하기로 한 택견 도장에  잠깐 들렀다. 마침 도복이 나왔다고 해서 도복을 입어 보았는데 그때  단원들이 운동을 시작하였고,  관장이 동작을 한 번 따라 해보라는 소리에 엉겁결에 태극기를 보고 경례를 하고나서  '이크 에크'  구령에 맞춰서 동작을 따라 하였다. 땀도 나고 갈증도 났지만 운동 후에 느껴지는 개운함 때문에 기분이 아주 좋았다.

노래까지 흥얼 거리며 현관 문을 여는 순간, 두 시간 전에 운동을 하러간 남편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바깥 날씨는 영하였고 매서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관리사무소와 아는 집 몇군데 전화를 해 보았는데 남편은 어디에도 없었다. 마음을 졸이고 서성대고 있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남편은 얼굴이 시퍼래져서 문 앞에서 얼른 들어오질 않고  "어떻게 된거야?"  라며 짜증을 냈다. 
문이 안 열려서 한 바퀴 돌고나서, 또 다시 한 바퀴 더돌고....30분하던 조깅을 두시간을 한 것이었다.
그 날, 미안하다는 말도 못하고 알배긴 종아리를 말없이 두드려 주었다.

사람의 뇌세포는 30세가 넘으면서 점차 일시적인 기억력의 감퇴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뇌세포의 감퇴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머리속에는 처리해야 할 정보가 지나치게 많기 때문에  뇌는 그것을 차단하는 수단으로 저장된 정보의 인출 방해, 내지는 한참 뒤에 생각나는 것 등의 현상으로 장애를 보인다.

아마도 그 날은 내 머리속에 처리해야 할 정보가 너무 많았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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