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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206호 융.건릉에 가다
자녀들과 함께하는 효 문화 체험코스로 추천
2008-06-28 14:27:35최종 업데이트 : 2008-06-28 14:27:35 작성자 : 시민기자   박종일

자라나는 미래의 주인공들에게 우리 민족의 고유 정신인 효 문화에 대한 중요성을 알리고 효의 정신을 배우고 실천할 수 있는 살아있는 교육현장이 있다.
조선의 제22대 임금 정조대왕의 지극한 효심을 엿볼수 있는 융릉과 건릉이 그곳으로 시민기자가 찾았다.

숲속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연 속으로 들어가면 절반 이상은 고목이 되어 버렸고 한쪽 가지만 살아 버팀목에 의지하여 근근히 버티고 있는 수령 140년 향나무의 모습과 수령 110년 향나무가 비스듬하게 서서 세월을 말해주며 관람객들을 반겨 주었다.

사적 제206호 융.건릉에 가다_1
수령 110년 향나무가 세월을 말해준다
       

사적 제206호인 융릉.건릉은 당파 싸움에 의한 노론의 모함에 의하여 뒤주에 갇혀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사도세자와 그의 부인 혜경궁 홍씨의 무덤인 융릉과 조선 22대 정조와 그의 부인 효의왕후 김씨의 무덤인 건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융릉과 건릉을 간단히 소개해 본다
 

사적 제206호 융.건릉에 가다_2
융릉 . . . 사도세자와 그의 비 홍씨의 합장 능
      
                                                      
융릉은 사도세자(후에 장조로 추존)와 그의 비 홍씨의 능이다.
장조는 영조의 둘째 아들로 1735년 창경궁에서 태어났다. 영조12년(1736)에 세자가 되었고, 10세에 혼인 하였다.
영조38년(1762) 뒤주속에 갇혀 28세로 창경궁에서 돌아가셨다.
뒤에 영조가 세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사도라는 시호를 내렸다. 훗날 아들 정조가 즉위하여 시호를 장현세자라 하였다.
고종 광무3년(1899) 10월 장조로 추존하고, 같은해 11월에 황제로 추존하였다.

헌경왕후 홍씨는 영의정 홍봉한의 딸로 영조20년(1744)에 세자빈이 되었고, 순조 15년(1815)에 81세로 창경궁에서 돌아가셨다.
광무3년 10월에 왕후로 같은해 11월에 왕후로 추존하였다.
사적 제206호 융.건릉에 가다_3
건릉 . . . 정조대왕과 왕비 효의왕후 김씨의 능
        
                                                    
건릉은 조선 제22대 정조와 왕비 효의왕후 김씨의 능이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영조35년(1735) 세손이 되었고, 영조51년(1755)에는 임금을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렸으며 영조가 승하하자(1776) 경희궁에서 왕위에 올랐다.
정조는 재위기간 동안 탕평책을 실시하고 규장각을 설치하여 문물제도를 정비 보완하였으며 많은 업적을 남겼다.
재위24년(1800) 49세로 창경궁에서 돌아가셨다.

효의왕후는 청원부원군 김시묵의 딸로 영조29년(1735)에 태어났으며, 영조38(1726) 세손빈이 되었고,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다.
정조가 돌아가시고 순조(1800)가 즉위하여 왕대비가 되었다.
순조21년(1821) 3월9일에 69셀 창경궁에서 돌아가시어 시호가 효의가 되었고, 광무3년(1899)에 왕후로 추존하였다.

이곳에는 역사의 소중함과 함께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융.건릉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울창한 소나무 숲 속의 산책로는 도시의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여유를 맛보게 하는 곳이다. 

수원화성은 역사와 자연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여행지, 그 가운데 효자로 소문난 정조대왕의 유적지인 융.건릉을 자녀들과 함께 나들이 코스로 추천해 본다.

▶ 위치: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
▶ 전화: 031-222-0142
▶ 문화유산해설사 안내를 받을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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