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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19)
마르파의 밤별처럼 반짝이는 사람들과 만나다.
2008-04-15 00:20:22최종 업데이트 : 2008-04-15 00:20:22 작성자 : 시민기자   김형효

낯선 길 위에서 익숙함과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큰 위안이 된다. 
그 익숙함의 일상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도 사람살이 중에서 하나의 욕망이다. 
다른 나라에 와서 해발 3000미터가 넘는 낯선 길 위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의 가족을 만났다. 헤어져 사는 친구의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또 그곳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자 찾는 것이기도 하다. 
벽마다 흰 페인트로 칠해진 집들 사이로 조각돌 길이 놓여 있는 마르파의 저물녘이다. 

찬 기운을 느끼게 하는 바람이 조각돌 길을 쓸어 올리듯 길과 길 사이를 비집고 불어온다. 
짐을 풀고 곧 샤워를 하려고 샤워장엘 갔다. 어두운 샤워장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정전이었다. 
게스트하우스 직원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그는 가느다란 양초 두 개를 가지고 왔다. 전기가 들어오려면 두 세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기다리기에는 답답하여 양초를 받아들고 샤워장으로 향했다. 
두 개의 양초를 켜고 샤워를 했지만, 샤워하는 동안에도 가느다란 양초불은 아슬아슬한 네팔 사람들의 삶의 한편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금방 꺼질 듯하다. 아슬아슬하게 연명하듯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신심이 깊은 삶에서 평정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무사히 샤워를 마칠 수 있었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19)_1
왼쪽은 동대문에서 네팔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디네스의 여동생, 오른쪽은 그의 어머니......,
개운한 몸과 마음으로 마르파의 조각돌 길을 걷기 시작했다. 
먼저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인터넷 방을 찾았다. 그러나 그 또한 어려웠다. 일단은 정전된 사실을 잊고 찾아가서도 문제였지만, 회선이 문제가 생겨 접속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저녁 일곱 시가 되어야 회선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는 소리에 다시 찾기로 했다. 

흰 바람이 불어온다. 
온통 흰 벽돌로 단장된 마르파에도 칠흑같이 어두운 밤 그림자가 드리워지며 검은 사자의 은신처 같은 밤이 찾아왔다. 다울라기리의 8000미터가 넘는 신성의 집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가 마르파의 사과밭에 사과나무의 옆구리를 흔들며 불어오고 있는 것이다. 

마르파의 밤 김형효 천년세월 만년세월이 멀고 먼 것은 아니다. 
길이 있어 가고 오며 지새우는 날이라면 수수만년세월도 어제나 오늘처럼 팔 기지개켠 그리움 같은 벗과 다름없는 것이다. 
다울라기리의 신성도 오늘은 벗과 같이 흰 실오라기 같은 만년설을 내뿜으며 하늘을 벗하고 낯선 나그네의 발걸음을 반겨 맞으니 천년세월 만년세월도 오늘 여기 함께 어깨를 겨누고 있네. 

총총한 발걸음처럼 바람의 길을 열며 다가서는 마르파의 밤별처럼 반짝이는 사람들 마르파의 따뜻한 품속을 떠나 다울라기리의 신성의 힘을 받아 천리만리 멀고 먼 그리움을 안고 살고 있으리.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19)_2
길을 가다가 돌아보아도 사방에서 바라다 보이는 고봉들......,
나는 다시 숙소로 돌아와 영국인 여행자와 가이드, 나의 가이드 다와와 함께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곧 저녁 식사를 했는데, 나는 영국인 친구와 함께 식사를 하였고, 다와는 영국인 가이드를 맡고 있는 네팔인과 함께 식사를 하겠다고 했다. 
나의 입맛에는 잘 맞지 않지만, 주문을 편하게 하려고 그냥 달 밧을 주문했다. 

달은 우리 식으로 생각하자면 국에 해당할 텐데 사실은 죽과 같다. 죽처럼 생겼지만, 국물을 곁들여 먹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게스트하우스 바로 앞에는 친구의 집이 있고 드세게 불던 바람도 자고 갈 듯한 평온한 마르파의 저물녘에 낯설지만 밀어내고 싶지 않은 네팔음악을 들으며 그런대로 무난한 저녁식사를 했다. 이때만 해도 내가 네팔인 가이드 다와와 다음날 다른 길을 가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식사를 마치고 찌아를 마시며 먼 길을 종일 걸었던 피로를 덜어내며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와는 나와 영국인의 통역이 되어 주었다. 영어가 안 되는 중간 중간에 네팔말로 소통하며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다와가 네팔어 통역을 한 셈이다. 
한편으로는 참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고 한편으로 아쉬운 일이기도 하다. 
아쉽다는 것은 영어가 되지 않아 직접 소통의 기회를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다와가 식사를 하러간 사이 우리는 둘만 남았다. 그렇게 둘이서 어려운 소통을 계속하고 있다가 다와가 돌아와서 쉽게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잠시 인터넷이 가능한 지 알아보기 위해 다시 마르파에 하나뿐인 인터넷방(네팔에서는 사이버(CYBER)로 통한다)을 찾았다. 외길인 탓(?)으로 가는 길에 함께 길을 걸어왔던 독일인 친구들을 만나 가벼운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도 사이버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그들과 나는 헛걸음 하고 되돌아왔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19)_3
3000미터가 넘는 높이에 자동차가 들어오게 된다고 한다. 지금 언덕배기를 깎아서 넓은 도로를 만들어가고 있다. 삽과 괭이를 이용한 재래식 길을 닦는 모습이 애처롭기만하다.
이제 내일 갈 길을 위해 휴식을 취해야 한다. 
그런데 다와는 함께 숙소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다. 영국인 가이드와 이야기가 남은 모양이다. 어제부터 조금씩 불안해지는 다와가 영국인 가이드와 어울리는 일이 못마땅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못이기는 척 그들을 인정하고 잠자리에 들기 위해 숙소를 향했다. 

한참 동안 일과를 정리하고 책을 읽고 있는 데도 들어올 생각을 않는다. 그렇게 잠이 들어 새벽에 잠에서 깨었는데도 다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불안한 생각을 하였다. 가이드를 다 마치지도 않았는데 그냥 날 떼놓고 가버렸는가? 그런 걱정을 했다. 아침이 밝았다. 식사를 마치고 났는데도 가이드가 나타나 주지 않았다. 여지없이 먼저 가버린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찌아를 마시고 짐을 챙긴 후 기다리고 있는데, 다와가 나타났다. 
영국인 가이드인 네팔인 친구와 함께......, 

반가우면서도 황당한 일이다. 그때부터 문제가 시작 되었다. 갑자기 돈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무슨 돈인가? 생뚱맞은 내가 그에게 물었다. 나는 트레킹을 시작하면서 1만2000RS(네팔 루피)를 그에게 주었다. 그리고 그에게 계산을 맡겼다. 사용하다가 모자라면 다시 주겠다며 편리함을 추구했다. 

그런데 그런 계산법에 문제가 생긴 듯하다. 
사실 그런 문제를 예방할 목적으로 트레킹 가이드 비용은 나중에 지불하기로 했었다. 나는 그에게 현재 얼마의 돈이 남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2000RS(네팔 루피)가 남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다짜고짜 고자세를 취하며 추가로 돈을 줄 것을 요구하였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19)_4
불심이 깊고 종교적 신심은 네팔인들의 일상이듯 가는 곳마다 돌조각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나는 단호히 그의 요구를 거부하고 그렇다면 당장 나의 가이드를 그만 둘 것을 요구했다. 
그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 동안의 성실했던 가이드 다와가 갑자기 다른 태도를 보인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홀로 남은 일정을 소화해야한다. 갑작스런 가이드 해고로 긴장한 것은 나다. 다와는 어떨지 모르지만, 낯선 안나푸르나 기슭의 히말라야에 홀로 남겨진 신세나 마찬가지다. 
사실 서툴지만 언어 소통이 가능하다는 용기가 그를 해고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의 불손한 행동에 제동을 걸겠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나의 내심은 정말 해고할 생각은 없었다. 그의 다음 행동은 사과하고 다시 길을 가리라고 기대했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엇나가고 말았다. 

***네팔의 가까운 지인들이 내게 충고를 했다. 
물론 가이드 다와 일을 네팔 친구들한테 말한 이후다. 한꺼번에 돈을 맡기지 말라는 것이다. 일이 완전히 마무리 될 때까지 돈을 전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정이나 믿음이라는 이유로 미리 돈을 건네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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