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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해를 보내며
윤재열/수필가, 고교 교사
2008-12-09 13:09:27최종 업데이트 : 2008-12-09 13:09:27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또 시간이 간다. 
엊그제 새해 태양을 본다고 법석을 떨었는데 어느덧 한 해의 길목에 서서 허전함을 쓸고 있다. 내가 일상에서 허우적거리는 순간에 시간은 벌써 저 만치 혼자서 흘러간다. 
세월이 유수와 같다고 했다. 그러나 흐르는 물은 눈에 보이고 소리도 들려오지만, 세월은 보이는 것도 없고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나는 급하게 달려오면서 인생의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앞만 보고 달려왔지, 달려온 길을 되돌아볼 기회를 가지지 않았다. 어릴 때는 일기도 썼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일기는커녕 한 줄의 반성문도 남기지 않았다.

불가에서는 과거의 죄악을 깨달아 뉘우쳐 고치는 것을 행한다. 기독교에서도 죄악을 자각하여 이것을 하나님 앞에 뉘우쳐 고백하는 참회의 시간을 갖는다. 
이처럼 참회라 하면 종교인만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또한 참회를 하거나 반성문을 쓰는 일은 부끄럽게 생각했다. 과거를 반성한다는 것은 내 자신의 잘못을 드러내는 꼴이라 싫었다. 그것은 가능한 한 숨기고 싶었다. 

그러나 이 나이까지 살면서 참회의 글도 남기지 않은 것은 내 자신이 올바르게 살았다기보다는 인색하게 살았다는 증거이다. 
시인 윤동주가 스물넷에 참회의 글을 남긴 것처럼 나도 지금이라도 한 편의 참회록을 남겨보고 싶다. 누구나 마음속에는 어둠을 남겨두고 싶지 않은 것처럼, 나도 이 기회에 깊이 뉘우쳐 마음을 밝게 하고 싶다. 

다시 한 해를 보내며_1
다시 한 해를 보내며_1

나는 올 한해도 마음에 잡초만 무성하게 키웠다. 일상에 지쳐서 앙팡지게 살지 못했다. 
일상에 밀려서 계획도 없이 무질서하게 살아온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도 높은 곳을 바라보고 그곳에 가고 싶은 생각만 담았다. 이곳에 서 있으면서도 저쪽으로만 가고 싶었고 막연하게 현재의 삶을 만족하지 못하고 휘적거리기만 했다.   

혹시 나는 능력이 없는 데도 큰 것만 가지려고 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그러다보니 늘 내 생활은 만족함이란 것이 없었다. 앞으로 내닫는 사람의 등만 바라보면서 마음만 상했다. 
내가 두려워 할 것은 앞서가는 사람이 아니라 앞서가는 사람만 보고 있는 나 자신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자기와 싸워서 이기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이제 나와 싸우는 삶을 살아야겠다. 탁월한 신체적 장점과 지적 재능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서툴지라도 열심히 땀을 흘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올해 나는 교직에 발을 디딘지 스무 해를 넘기고 있다. 추상적인 시간의 흐름을 숫자로 매듭지어 생각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20년의 오랜 세월은 벅찬 감동을 준다. 아울러 앞날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짧지 않은 교직의 길을 돌아보니 나는 아이들에게 내가 아는 것만 가르치는 일에 집중을 했다. 그리고 많이 가르치는 데만 몰두했다는 생각이다. 정작 아이들이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에게 명령하고 통제만 했다. 나이가 들면서는 강제적이고 지배적인 지시에 맛들이면서 내 자신의 삶도 안일과 나타에 빠지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동안 아이들보다 높은 곳으로만 올라왔다. 자연히 아이들을 보는 눈은 멀어지기만 했다. 이제 아이들을 보기 위해 낮은 곳으로 내려가려고 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한 발 한 발 낮은 곳으로 가는 것이 나의 진보이다. 내가 아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모르는 것을 가르치는 것도 내가 감당해야 할 못이다. 그리고 말보다 윤리적 책임을 다하는 성실한 선생님이 되는 것도 앞으로 내가 묵묵히 걸어갈 길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것은 반성을 통해서 나날이 발전하는 것이다. 시간의 변화에도 과거의 인습에 얽매여 있다면 웅덩이의 고인 물과 다를 것이 없다. 사람이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은 거울의 흠을 보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흠을 보기 위한 것이다.   

참회는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한다. 자아를 냉정한 시선으로 응시하면서 한해를 접어야 한다. 반성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내일의 나의 모습을 다듬기 위한 숭고한 행위이다. 반성은 잘못 가던 길을 돌이켜 올바로 가게 하는 힘을 공급한다.

12월은 한 해의 마지막이라 쓸쓸함이 있다. 나무도 봄부터 키워온 잎을 모두 버려 더없이 황량하다. 하지만 겨울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는 나무는 봄에 더 성숙한 몸짓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리도 이 겨울에 추운 바람을 이겨내야 눈부시게 따뜻한 봄의 햇살을 맞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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