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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꼭 살아야 해!"
죽음 앞에서의 삶을 생각하다
2008-12-12 11:21:03최종 업데이트 : 2008-12-12 11:21:03 작성자 : 시민기자   송인혁
며칠 전 지인께서 저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의 글을 보내주셔서 얼마나 눈시울을 적셨는지 모릅니다.
오늘은 그 글을 읽고 느꼈던 생각을 전해드릴까 합니다. 

제가 참조한 이야기의 원문은 http://www.ppomppu.co.kr/zboard/view.php?id=humor&page=1&sn1=&divpage=3&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5701
에 올려져 있으며, 이 이야기는 MBC 에서 방영된 '엄마의 약속'이라는 프로그램의 것입니다. 

1. 엄마의 약속
33살의 안소봉씨는 사랑스러운 딸 소윤이를 출산합니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소윤이의 탄생. 소봉씨네 가족은 소윤이의 방문으로 행복하디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나는 꼭 살아야 해!_1
나는 꼭 살아야 해!_1

그러나 소윤이를 출산한지 겨우 이틀 째, 그녀는 위암말기라는 청천벽력같은 사형 선고 소식을 전해듣게 됩니다.
임신 기간 중에도 여러가지 징후가 있었지만 그저 입덧이라고 생각하고 제대로 검사와 치료를 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 될 줄은 생각치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단, 3개월. 얼마 지나지 않아 암세는 척추에까지 퍼져버리고 이내 허리를 펴는 것조차 불가한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소봉씨는 극심한 고통속에서 하루하루를 눈물로 보내야만 합니다.

'왜 나에게... 왜 내게 이런 시련이 닥친 것일까... 이제 내 인생의 행복이 시작되었는데...'
그러나... 소봉씨는 살아야 했습니다. 
내 딸... 내 딸 소윤이가 무럭무럭 자라나고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으니까요. 소윤이가 필요로 할 때 옆에 있어주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매일매일 죽음같은 고통의 순간들... 그럴수록 그녀는 불굴의 의지로 병마와 싸워나갔습니다.
3개월을 넘기지 못할 거라던 사형선고... 그녀는 일년이 지나도록 병마를 이겨내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에겐 최소한 꼭 한 가지 이루고 싶은 꿈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소윤이의 첫 생일...
그 생일만큼은 소봉씨의 두 손으로 꼭 챙겨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소봉씨의 간절한 바램에도, 최악의 상황이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복수가 차오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꼭 살아야 해!_2
나는 꼭 살아야 해!_2

복수가 차오르면 얼마 지나지 않아 간성혼수가 오고, 이내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제 아버지도 간성혼수가 오신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답니다.)

안돼... 제발...살아야 했습니다. 아무리 아파도, 아무리 죽을 것 같아도 꼭 살아야 했습니다.
소윤이의 생일까지는 꼭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간성혼수로 의식이 멀어져가는 동안에도 소윤이를 생각하며 참아내었습니다.
의식이 희미해져가는 순간에도...소윤이를 생각하면서 정신을 차리기 위해 죽을힘을 다했습니다.

9월 30일. 
마침내 그녀는 소윤이의 생일을 함께 해 줍니다.

나는 꼭 살아야 해!_3
나는 꼭 살아야 해!_3
소윤이의 이 예쁜 모습을 절대로 놓칠 수가 없었습니다. 나의 분신, 나의 사랑 소윤이...그런데 야속하게도 점점 의식이 희미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소봉씨는 소윤이의 첫번째 생일을 함께 보냅니다.

나는 꼭 살아야 해!_4
나는 꼭 살아야 해!_4
 9월 30일. 상상을 초월하는 죽음의 고통과 공포를 무려 1년이 넘도록 힘겹게 싸워내었던 그녀 안소봉씨.
그녀가 절대 놓지 않고 싶었던 삶의 끈은 바로 아이, 그리고 가족.
소윤이의 첫번째 생일만큼은 꼭 챙겨주겠다던 작디 작은 꿈은 그렇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1
0월 1일. 그녀는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와 그리고 가족들을 남겨 둔 채 세상을 떠납니다.

소윤씨네 가족의 행복을 마음 깊이 바랍니다.

이 이야기를 보신 여러분, 지금 기분이 어떠신가요. 
저는 마음이 너무너무 아팠고, 차오르는 눈물을 참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사실 막 울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게 아쉽습니다. 그리고 찬우가 제 와이프가 너무너무 보고 싶어졌습니다.

삶이 지치고 무의미하다고 생각되고 세상사가 다 짜증나고 답답하게만 다가올때 이렇게 소봉씨의 이야기를 접하고 나면, 나의 마음이 어느새 눈물로 '비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그리워지고, 
꼭꼭 걸어잠그고 있는 마음의 빗장문을 열게 됩니다. 그리고 주위를 돌아보게 됩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왜 갑자기 어떤 이의 죽음을 목격하며 돌연 내 삶의 소중함을 반추하는 걸까요?


2. 생명을 주는 죽음의 독 - 페노탈
제가 정말 좋아라 하는 파울로 코엘료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읽어보면 책 말미에 번역자 '이상해'님께서 쓰신 글이 제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정말 마음에 와 닿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다소 긴 내용이지만, 꼭 전해드리고 싶어 옮겨보았습니다. 이런 좋은 이야기를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p.299
먼 옛날, 그것도 아주아주 먼 옛날, 지구상에 생명이 탄생이라는 엄청난 기적이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당시 지구라는 에덴 동산에는 세균들이 무한한 자기 복제(세포분열)을 통해 영생을 구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먹고 마시고 자신을 복제해내는 일에만 열중해 있던 세균들은 평소와 달시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생각에 잠겨 있는 동료 하나(효모군, 아마 아담이라는 이름을 가지지 않았을까?)를 발견하게 된다.

"왜 그러나?"
"모르겠어. 그냥 사는 게 지겹고 시들해."

별소리 다 들어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세균들은 곧 다시 자신의 일에 열중했다.
하지만 효모군의 상태가 점점 심각해지자 균들은 효모군이 미쳐버렸다고들 수군거렸고 그 소문은 조물주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왜 그러느냐?",
"매일매일이 똑같고 모든 게 뻔하니 이런 식으로 영원히 살면 뭐 하나 싶어 그럽니다."

곰곰히 생각에 잠겨 있던 조물주가 결심이 선 듯 입을 열었다.

"좋다, 그럼 너에게 짝을 만들어주마. 그런데 문제가 있다.
 너는 이제 그 짝과 사랑이란 것을 나누게 될 텐데, 그러려면 네 유전자를 그대로 복제하는 지금의 방식과는 달리,
 네 유전자와 네 짝의 유전자를 번갈아 가며 복제하는 교차복제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그 방식에는 염색체의 맨 끝부분이 복제가 되지 않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
따라서 일정 횟수에 달하면 더이상 세포분열을 할 수 없게 되어 점점 늙어가고 종국에는 죽음에 이르고 만다. 대신, 유전자를 나눠 가짐으로써 네 후예들은 한없이 다양해지고 점점 진화하게 될 것이다. 자, 어떻게 하겠느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효모군은 그야말로 역사적인 선택을 한다.
"사랑을, 그리고 죽음을 택하겠습니다."

효모군이 자신의 선택에 만족했는지, 후회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아무튼, 다른 세균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그는 (이브라는 이름의) 짝과 더불어 죽음으로 한정된, 그래서 가치를 가지는 삶을 살았다.

임종의 순간, 그는 각기 다르게 생긴 자식들을 모아놓고 그들의 눈을 그윽히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몫의 선택을 통해 너희들에게 삶과 죽음을 동시에 주었다. 좋건 싫건, 이젠 너희들도 너희 몫의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용기를 가져라."

아담이라는 효모군은 그렇게 눈을 감았고, 그 후예들은 옳고 그름을 떠난 각자의 선택을 통해 오늘날 그 또한 자기 몫의 선택을 해야 하는 인간이라는 가장 고등한 동물에까지 이르렀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아는 것과 자신의 죽음을 실감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언젠가 자신도 죽으리라는 것은 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막연한 미래의 일일 뿐, 우리는 죽음을, 달리 말하면 삶의 진가를 잊고 산다.

만약 우리가 영원히 죽지 않고 산다면, 무엇이 아쉬울까요. 사랑도 진부하고 삶도 진부합니다. 시간의 개념도 무의미하고, 노력과 열정의 의미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이라는 필연의 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때때로 우리는 내 삶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죽음이 찾아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게 됩니다. 그래서 죽음은 긴 호흡의 저편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내게 아직 남은 시간의 의미보다는 미래의 어떤 더 나은 가능성 (더 좋은 집, 나에게 더 이상적인 배우자, 더 큰 꿈) 에 매달리게 되나 봅니다. 이런 생각들이 나쁘다는 얘기가 절대 아닙니다.

중요한 건,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을 자각하는 것의 중요성입니다.
내게 남은 시간을 의식하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지금 현재'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니까요.

지금 이 순간에 내가 살아있음을, 내가 살아있는 이 공간에 나와 함께 하는 이가 있음을, 그 사람과 함께 아웅다웅 시간을 보낼 수 있음을 비로소 감사하게 되죠.
결혼한 동기 한명에게 1년이 지난 뒤 결혼 소감을 물었을 때 친구는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처음엔 정말 치고 받고 장난 아니게 싸웠거든. 얘는 완전 초딩인거야. 그것도 저.학.년 초!딩! 정말 많이 싸웠어. 나는 내 안의 분노가 이렇게 클 수도 있구나 하는걸 실감하고 놀라기까지 했다니깐.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
그래도 내가 이렇게 짜증낼 수 있는 사람이 언제나 내 곁에 있다는 거,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있다는 거, 태클을 걸지라도 그래도 내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거. 그냥 '있어준다'는 거. 그것만으로 고맙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 남편은 그래서 있어줘서 고마운 존재야. 나머진 저학년 초딩 키운다고 생각하면 편해"

동감하시죠?^^

여러분, 어떤 분의 죽음을 먼저 전해 드리고...(그래서 미안한 마음입니다)
지금 여기까지 읽으셨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생뚱맞게 존재함에 감사하자 했으면 그냥 '아 예~'하고 지나쳤을 가능성이 더 높지 않았을까요?

그렇습니다. 죽음이란 그래서 우리를 불가항력의 회피하고 싶은 삶의 공포로 몰고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살아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세포가 무한자기증식하여 영원히 사는 길을 선택하지 않고, 죽음을 선택한 것은 어떤 힘이 작용한 것인지는 명확하지가 않습니다만, 죽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삶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내가 바라는 어떤 꿈을 위해 깨어있도록 해 주는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이 소중한 시간들을 그냥 '그냥' 보내지 맙시다. 어느 순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질 날이 올 것입니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번쯤 다시 상기하시면서 무언가라도 '선택' 하고, '행동' 하는 하루가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비록 그것이 잠깐일지라도 말입니다.

죽음, , 고통, , 존재, 감사, 행복,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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