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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10)
새벽, 낯선 여행자와 게스트 하우스 여주인이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2008-03-25 22:14:40최종 업데이트 : 2008-03-25 22:14:40 작성자 : 시민기자   김형효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다시 불러본다. 
그런데 얼마나 다행인가? 이번에는 스르르 방안에 불이 켜진다. 그리고 인기척이 난다. 
살았구나! 옷이야 단단히 챙겨 입었지만, 히말의 찬바람과 고산의 추위는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검문을 거치듯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그는 낮에 식사를 하고 팬 케잌을 굽던 부엌으로 나를 안내했다. 새벽 두시가 넘은 시간이다. 

게스트 하우스가 아니라면 엄두를 낼 수 없는 일이었다. 
또한 게스트 하우스라고는 하지만, 외진 산골이라 아주 난감한 일이었다. 그는 부엌에 불을 켠 후 땔감을 가져다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금방 따뜻해지지는 않았지만,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 불길만 보아도 훈훈함이 느껴지는 새벽녘이다. 그는 내게 숙박을 하고 갈 것인지 물었다. 나는 그녀에게 차를 마시며 이야기 나누다 아침 해 뜨는 시간에 맞춰 마낭으로 가야겠다고 말했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10)_1
잠에서 깨어난 안나푸르나의 밤 안개가 걷히면서 흰구름으로 피어오르고 있다.
그도 그러라면서 불을 지피고 물을 데우기 시작했다. 금새 물 주전자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안나푸르나의 산기슭에 애틋한 로맨스의 한 장면을 연상할 만한 분위기다.
낯선 여행자와 게스트 하우스 여주인이 마주 앉아 따뜻한 물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했을 만큼 상식이 있다. 
하지만, 낯선 이방인과의 일상적 대화란 특별날 것이 없다. 더구나 말이 완벽하게 통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가족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제일 쉽다. 

가족관계를 물었다. 
그는 남동생과 여동생이 카트만두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남동생은 카트만두의 가든 호텔에서 일하고 있고, 여동생 또한 카트만두에 시집가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날더러 언제 다시 오냐고 물었다. 8월이나 10월 다시 올 것 같지만, 아직 확실한 일정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매년 12월에는 이곳에 눈이 많이 내려서 문을 닫고 카트만두 여동생 집에 머문다고 말하면서 만약 12월 달에 네팔에 오거나 머물게 되면 전화하라면서 여동생 집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10)_2
저 당나귀는 네팔의 산중 사람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주요 수단이다. 산중에서는 야크 기름으로 만들어진 치즈나 버터를 산아래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생필품을 지고 다시 산으로 돌아온다.
따뜻한 물을 연거푸 마시다가 갈루 찌아(검은 차)를 한 잔 마시고 싶다고 했더니 금새 차를 준비해 주었다. 그녀는 지난 3개월 동안 이곳에 많은 눈이 내렸고, 마오이스트들로 인해 외국인 관광객이 줄어들면서 영업에도 지장이 많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그가 특별히 마오이스트를 경계하는 이야기를 전한 것은 없다. 

다와를 통해 전해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이곳 마낭 인근에는 평소에도 마오이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이곳 생활은 비행장이 있어 다른 지역보다는 편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며칠씩 걸어야 도심에 접근할 수 있는 네팔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까운데 공항을 통해 카트만두나 포카라를 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네팔 수도와 제2의 도시를 당일에 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호사스런 것인가? 꼬박 일주일 혹은 한 두 달 씩 걸어야 하는 오지도 있는 나라 네팔을 생각하고 보면 분명 커다란 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많은 외국인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고 있으니 외국 소식도 잘 알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영어를  능숙하게 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여명이 느껴졌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10)_3
지붕 위에 오방천을 단 깃대가 세워져 있다. 저 멀리 안나푸르나의 설산이 신비롭다.
나는 그에게 이제 되돌아가야겠다고 말했다. 그도 기다렸다는 듯이 그렇게 하라며 다시 따뜻한 물 잔을 권했다. 고마운 권유다. 
낯선 나그네의 초행길을 이렇게 위로해주는 그에게 고마운 답례를 해야겠기에 성의 표시를 하려는데 그는 거절하였다. 보통의 도시 거리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아니 경험하기 힘든 상황이다. 

많은 사람들이 눈독을 들여 타인의 호주머니를 탐하는 듯한 도시 거리의 표정을 생각할 때, 너무나 따뜻한 인간미를 느끼게 한다. 
어쩌면 이 불청한 손님에 대해 저 안나푸르나도 용서한 것일까? 저 여인! 꽃 사랑이란 이름을 가진 저 여성을 통하여 그렇게 용서를 표하는 것일까? 낯선 나그네가 하늘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머리가 아파온 것을 안 것일까? 그래서 조금이나마 위로해주는 표시일까? 
작은 경제적 가치를 두고 이렇듯 감동하는 것은 낯선 이방인이 많이 오가는 카트만두에서 느껴보지 못한, 아니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도 그리고 많은 도시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10)_4
방목 중인 야크다. 빨간색 표식은 주인이 매달아 놓은 것이라 한다. 저 멀리 구불구불 작은 산길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들이다.
나는 그와 인사를 나누고 다시 마낭을 향해 걸었다. 
새벽 4시 30분이다. 아직 어둠은 가시지 않았다. 안나푸르나의 별들은 여전히 키재기를 멈추지 않고 있었다. 
한참을 걸어가는 데 안나푸르나가 성체를 드러내듯 온몸을 하늘을 향해 뻗어 올리는 기세를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등 뒤로 동녘의 해가 떠오를 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나는 계속 서쪽 편을 향하여 걷고 있다. 그러니 마낭이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걷는 방향 왼쪽 편에는 안나푸르나가 웅장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순간 밤 하늘 별도 달도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내가 잠시 안나푸르나에서 눈길을 떼고 걷는 데 열중한 잠깐 동안에 밝아져서 안나푸르나는 자신의 몸통을 드러내었다. 
아침이 밝아온 것이다. 그렇게 길을 걸어 내가 다시 야크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6시 30분경이다. 

다와는 막 일어나 식사를 주문하고 앉아  있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그가 주문한 스프가 방으로 배달되었다. 나는 한숨 잠을 청하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다와가 스프를 먹고 잠을 청할 것을 권했다. 
야채스프를 주문한 후, 잠시 기다렸다. 곧 스프를 먹고 잠을 청했다. 하루라도 빨리 일정을 소화해내고 싶었다. 
이왕지사 겪을 일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이겨내고 싶었다. 

잠에서 깬 시간은 아홉시 삼십분 쯤이다. 나는 곧바로 씻고 준비를 마친 후 출발하자고 했다. 그 시간이 10분도 채 안되는 듯하다. 
다와가 당황한 눈빛을 한다. 내가 너무 서둘렀나, 혼자 잠시 엉거주춤하다 다시 마음을 잡고 길을 청했다. 
이제 다와도 함께 길을 나서는데 동의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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