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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군 참전비에서
6.25 전쟁 때 1600 여명 인명 피해
2008-05-09 14:30:28최종 업데이트 : 2008-05-09 14:30:28 작성자 : 시민기자   박형규

프랑스군 참전비에서_1
프랑스군 참전비에서_1
지난 7일 오후 5시 30분쯤 부광공부방 아이들과 함께 1번도로 지지대고개 근처에 위치한  유엔 참전국 16개국 중 하나인 프랑스 참전비에 현장 견학을 갔다. 
차에서 내려 참전비에 가보니 문은 열쇠로 굳게 잠겨 있었고 주위는 온통 크로바가 피어 있고 세멘트 바닥은 곳곳이 깨져 있었다. 

아이들이 "여기가 어디에요?"라고 물었다.
"응 여기는 유엔 16개국 프랑스군 참전비야"  
일단 아이들과 함께 참전비 앞에서 사진을 찍고 6.25전쟁과 유엔군에 대한 설명을 하고 네잎 크로바를 찾고 저녁을 먹고 귀가시켰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군이 남침하였다. 
당시 아무런 준비도 없었던 남한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었다. 
7월 중순 맥아더 장군이 유엔군 사령관이 되고 그 때에 16개국의 일원으로 프랑스가 한국전에 지상군과 해군을 파견하였다. 

프랑스군 참전비에서_3
프랑스군 참전비에서_3
특히 프랑스 지상군은 1950년 11월 29일 부산에 도착하여 약 2주간의 현지 적응훈련을 마친 후, 12월 11일 미 제2사단에 배속되어 전투에 참가하였다. 
프랑스군은 참전 32개월 동안 모두 3개 대대 약 3500여 명이 교대 참전하여 전사 280명, 부상 1350명, 실종 19명 등 1600여 명의 인명피해를 냈는데, 참전규모로 볼 때 전 병력의 3분의 1 이상이 희생된 셈이다. 
그들은 백병전으로 원주탈환에 전과를 올렸고, 지령리 전투, 단장의 능선, 피의 능선 등의 격전에서 용맹을 떨쳐, 프랑스 국가표창 6회, 미국 대통령표창 3회, 한국 대통령표창 2회 및 많은 훈장과 개인표창을 받았다. 

우리나라가 어려울 때 파견된 프랑스군은 쌍터널 부근 전투, 지평리 전투, 화살머지고지 전투, 단장의 능선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워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이 공로를 기리고 산화한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기념비를 건립한 것이다. 

고귀한 젊은 생명을 바친 프랑스 군인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억하며 세운 참전비의 앞의 깨진 부분 등에 대한 수원시의 세심한 유지관리를 부탁해 보면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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