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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먼 자들의 도시'를 읽고
전 인류의 눈이 멀었다면?
2008-12-03 12:41:58최종 업데이트 : 2008-12-03 12:41:58 작성자 : 시민기자   임화영

가끔은 세상의 더럽고 추악한 것들을 보지 않는 것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무언가를 볼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세상은 기억 속에 존재하는 세상이고 새로운 장소로 자리를 옮기면 그곳은 촉각과 후각과 청각으로 만들어지는 새로운 창조의 세계가 될 것이다. 

가족과 지인들의 익숙한 목소리와 이미지는 눈 먼 시간이 오래 될수록 잊혀 지게 될 것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머릿속에서 재창조하여 떠올리는 이미지가 될 것이고 이전의 이미지들은 모두 쓸모가 없어져 텅 빈 공간속에서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매일 매일 넘어지기를 반복할 것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포르투갈 출신 주제 사라마구의 '눈 먼 자들의 도시'는 눈뜨고 볼 수 있다는 고마움을 절실히 느끼게 하는 소설이다. 

아무런 대가 없이 숨을 쉴 수 있는 것처럼 눈을 뜨면 보이는 세상의 풍경들을 감사함 없이 살아왔다. 같은 세상을 다른 방법으로 살아간다는 특별한 설정을 통해 인간의 본능적인 행동양식과 사회집단의 이해관계에서 오는 무서운 폭력의 잠재력을 보여준다. 

눈이 멀어 많은 부분에 제약을 가져오는 생활 속에서 인간답게 살아가려는 한 그룹과 자신들의 정체성을 잊어버린 채 동물적 본능으로 살아가는 그룹간의 갈등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었다.
눈 먼 자들의 공통된 주제인 눈을 뜰 수 있다는 희망은 현실의 고통과 절망 속에서 각기 다른 방법으로 표출되고 있다. 

만약 내가 그들 가운데 같은 모습으로 존재한다면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마음속은 희미한 안개가 낀 것처럼 답답했다.

'눈 먼 자들의 도시'를 읽고_1
'눈 먼 자들의 도시'를 읽고_1

분주한 도시의 교차로에서 한 남자가 눈이 멀어버린다. 그리고 그를 도와주었던 차 도둑 남자, 그를 진료했던 안과의사, 함께 진료 받던 검정색 안경을 쓴 여자와 안대를 한 노인, 소년 등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성 백색공포는 사람과 사람사이로 순식간에 번져간다. 

눈이 먼 사람과의 시각적, 촉각적 접촉이나 만남이 있는 모든 사람은 눈이 멀어버린다. 칠흑 같은 암흑이 아닌 너무나 밝은 백색의 세상을 맞이하게 된다.
정부에서는 눈 먼 자들을 격리하여 시내의 정신병원에 격리 수용하고 군인들의 철저한 경계 속에서 감옥 같은 생활을 하게 된다.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의사의 아내는 눈 먼 자들의 생활을 도와주며 살아간다. 

시설 곳곳은 배변과 오물로 가득하고 군인들이 발포한 총에 죽은 사람의 시신 썩는 냄새가 건물을 진동한다.
갈수록 많은 수용자들이 들어오게 되고 어느 날 총을 가진 눈 먼 깡패 조직이 시설에 들어오면서 음식을 장악하고 갖은 횡포를 부리게 된다. 가지고 있는 재물과 돈을 요구하고 심지어는 여자들과의 잠자리까지 강요하게 된다. 비참한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던 중 1호실 의사 아내는 총을 가진 깡패 두목을 죽이게 되고 남아 있던 깡패 집단과의 싸움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시설은 온통 불바다로 변해버린다.
눈 먼 자들은 두려움과 희망을 함께 가지며 저마다 도시 속으로 흩어지고 1호실에서 함께 생활한 사람들은 함께 움직이기로 결정한다. 눈 먼 사람들 가운데 유일하게 세상을 바라 볼 수 있는 의사의 아내는 아침마다 눈을 뜨는 것이 두려웠다. 자신도 눈이 멀어 버릴지 모른다는 공포와 자신이 돌보던 사람들을 돌 볼 수 없게 되어 머지않아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때문에......

도시의 모든 사람이 눈이 멀어 생산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기존에 생산되어진 것에 대한 소비만이 가능했다. 유한한 식자재와 마실 물이 없다는 것은 바로 죽음을 얘기하는 것이다.
수용소를 탈출하고 의사의 집에서 머물게 된 7명의 사람들은 본능적 삶이 아닌 품격 있는 생활을 하기 원한다. 도시에 비가 내리자 여자들은 내리는 빗속에서 샤워를 하며 온갖 오물들로 더러워진 몸을 씻는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의 감정을 발견하게 된다. 

도시는 쓰레기 더미처럼 변해버렸고 눈 먼 자들은 살아있는 시체 좀비들처럼 먹을 것을 찾아 허우적거리며 돌아다녔다. 주인을 잃은 개들은 야생 들개로 변해 버렸고 죽은 사람의 시체를 먹으며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 거렸다. 

어느 날 아침 첫 번째 눈이 먼 남자가 눈을 떴다. 눈이 보이는 것도 전염병처럼 빠르게 번져 도시 전체의 사람들이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의사 아내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밝은 빛이 눈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 독백처럼 한마디 말을 내뱉는다. "이제 내 차례구나....." 

작가는 첫 번째 눈 먼 사람, 첫 번째 눈 먼 사람의 부인, 의사, 의사부인, 검정색 안경을 쓴 여인 등으로 등장인물을 호칭하며 특징적인 묘사를 이름으로 사용한다.
익명성을 통해 눈 먼 사람이 네가 될 수도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얘기한다. 국가 나 도시의 이름조차 없다. 세상의 어떤 곳도 그곳이 될 수 있다는 얘기이다.

모두가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 틈에서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의사부인은 기쁨이 아닌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음에 힘들어했다. 
볼 수 없다는 한 가지 사실로 인해 발생하는 수만 가지의 불편과 고통, 무엇보다도 어제까지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던 고결한 성품의 사람들이 먹는 것과 배설하는 기본적인 욕구에 동물처럼 변해가는 모습은 가슴을 아프게 했다.

배설물을 밟아대고 온 몸에 묻히면서 썩어가는 시체들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먹고 자는 인간들의 적응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약자들 틈에서 조금 강한 자가 군림하는 장면은 이 세상의 추악한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눈이 멀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가진 대부분의 것을 모두 잃었다는 것을 말한다. 법과 질서의 견고한 틀들이 눈 먼 자들이 넘쳐나는 현실에서는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다.

갑자기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은 걸음마를 처음 배우는 아이들처럼 모든 것을 새롭게 배우고 적응하며 살아가야 한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사람들 틈에서는 혼자서 고고한 윤리의식에 사로잡혀 살 수가 없다. 이제 그들에게는 제 3자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눈이 멀었기 때문에 인간 본연의 감정들을 무섭게 표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의사 아내를 통해 인간 본연의 인간성 회복을 보여준다. 그리고 1호실 사람들의 끈끈한 연대의식으로부터 새로운 인간관계의 회복에 대한 희망의 불씨를 제공한다. 


작가는 눈이 멀어버린 사람의 고통과 본능에만 시선을 두지 않았다.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의사 아내의 고통과 생각을 통해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한 인간들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마지막 장을 넘길 때 까지 개운하지 않은 그 무엇이 나를 괴롭혔다. 불을 끄고 어둠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갑자기 다가오는 폐쇄공포의 두려움이 무서워 잠이 들 때까지 불을 켜두었다. 의사 아내의 힘든 독백이 들려왔다.
"가장 두려운 것은 오직 나만이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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