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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별의 무게는 얼마입니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2008-03-18 11:22:01최종 업데이트 : 2008-03-18 11:22:01 작성자 : 시민기자   장지현

당신의 이별의 무게는 얼마입니까?_1
당신의 이별의 무게는 얼마입니까?_1
p.106
"프란츠는 아버지가 느닷없이 어머니를 버리고 떠나 어느 날 문득 어머니 혼자 남게 되었던 것은 그의 나이가 열두 살쯤 되었을 때였다. 프란츠는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고 의심했지만. 어머니는 그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평범하고 차분한 말투로 비극을 감추었다. 시내를 한바퀴 돌자고 아파트를 나오는 순간, 프란츠는 어머니가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당황했고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까 두려웠다. 그는 어머니의 발에서 눈길을 떼지 못한 채 두 시간 동안 그녀와 함께 거리를 걸어야 했다. 그가 고통이란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p.197
"그녀는 저게 뭐냐고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왜 프라하 공원의 벤치가 물에 떠내려가느냐고? 그러나 사람들은 무심한 표정으로 지나쳤다. 그들에겐 그들의 덧없는 도시 한가운데로 강물이 수세기 동안 흐르건 말건 아무 상관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다시 물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끝간데 없이 슬퍼졌다.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이 이별이라는 것을 알았다. 여러 가지 색깔을 거느리면 사라지는 인생에 대한 작별.

벤치는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최후까지 늑장을 부리는 몇 개가 아직도 보였고, 노란 벤치가 하나 있다가 다시 하나, 그리고 마지막 푸른 벤치 하나."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에서-

나에게 이별이란 무엇일까? 
얼마 전, 그러니깐 정확히 말하자면 약 1개월 전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그 날, 나는 울지 않았다. 아니, 슬프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수세기 전부터 예견된 이별처럼, 그리고 내가 그 이별을 준비했던 것처럼….

내가 왜 그렇게 멀쩡할 수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건데 아마 어쩌면 이별이란 나에게 정해진 계획표였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내가 8살이 되었을 때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내가 20살이 되서 성인이 된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나에게 외할아버지와의 이별은 나에게 있어 당연스레 지나쳐야 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인식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이별을 경험하고 그것을 위해 준비한다. 
내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사람들과의 이별, 혹은 내가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과의 이별을 말이다. 아니, 그것이 꼭 사람간의 이별만은 아닐 것이다. 내 손을 거쳐 갔던 수많은 것들, 그리고 수없이 떠나보냈었던 과거의 내 자신과의 이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소설은 나에게 그 제목의 가벼움과는 달리 내 자신에게 있어서는 참을 수 없이 무거운 소설이었다. 
어쩌면 내가 그 무거움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존재일지도 모르겠지만…. 물론 철학적인 내용과 더불어 무게를 더해준 사회적인 상황까지 곁들어진 사회적인 배경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나에게 그 무엇보다 인상 깊게 다가왔던 것은 사회적 배경도, 철학적 내용도 아닌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별 장면들이었다.

이 소설에는 사랑하던 또는 그렇지 않던, 여러 사람들의 이별 장면이 등장한다. 
가볍게는 토마스와 사랑을 나누던 수많은 여인들에서 부터 그의 첫 번째 부인과의 이별, 프란츠와 마리클로드의 이별과 그녀의 뒤를 이은 사비나와의 이별, 마지막으로 테레사와 그녀의 강아지인 카레닌과의 이별. 
이러한 수없이 많은 이별의 장면 속에서도 나에게 '이별'이라는 두 글자를 내 머릿속에 각인시켜버린 두 장면이 있었다.

106쪽의 이별은 그의 아버지가 떠난 후 어머니의 슬픔을 프란츠의 시점에서 나타낸 것이고 297쪽은 테레사가 토마스와의 이별을 상상하며, 더 나아가 그가 없는 무의미한 삶과의 작별을 상상하며 느낀 부분을 표현해낸 것이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여러 가지의 이별을 겪으면서 '나에게 있어 이별이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이별처럼 가벼움 일까, 혹은 무거움일까. 

이 책을 다 읽은 후에야 비로소 나에게도 이별에 대한 정의가 내려졌다. 
내가 느끼는 이별이란 참을 수 없는 무거움을 가벼움으로 정의내리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리고 그러한 무거움이 수많은 무거움을 거치면서 가볍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것. 중요한 것은 그 무거움의 차이가 결코 이별에 대한 슬픔의 차이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지금 당신이 느끼는 이별, 그 무게는 얼마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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