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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20)
-열흘간의 트레킹을 마치고 입산을 시작하는 길이 곧 하산길이다.
2008-04-16 22:53:35최종 업데이트 : 2008-04-16 22:53:35 작성자 : 시민기자   김형효
그렇게 다와와 헤어진 나는 홀로 길에 나설 채비를 하였다. 다와가 혹시 또 다른 불안을 안겨주지는 않을 지 두려움이 생겼다. 낯선 히말라야의 오지에서 혹시라도 하는 불길한 생각을 반복하다가 앞서 말했던 디네스 집을 찾아 도움을 청했다. 사실을 이야기 하고 일단 그보다 앞서가며 만약에 생길지도 모를 불안을 피하고 싶다고 말했다. 

디네스 여동생이 그의 삼촌을 모셔왔다. 말을 빌려 타고 갈 것인지 아니면 오토바이를 타고 갈 수 있는 데 까지 갈 것인지......, 한참 논의한 끝에 디네스 동생 친구의 오토바이를 타고 갈 수 있는 데 까지 가기로 했다. 
그곳이 갈로빠니라는 곳이다. 갈로는 검다는 뜻을 가진 네팔어이고 빠니는 물이란 뜻이니 검은 물이 흐르는 곳이란 뜻을 가진 곳이다. 

나는 꺼빈드라(Kabindra)의 오토바이에 의지해서 갈로빠니를 향했다. 날쌔게 지나치는 풍경을 보며 도망자 꼴을 한 모양새가 처량 맞다. 하지만, 이만한 것도 호사스런 노름이란 생각이다. 만약 아름아름 아는 사람 없는 곳이라면 엄두도 못냈을 일 아닌가? 혹시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만한 또 다른 댓가가 따를 일이다. 낯선 길을 낯선 사람 등에 기대어 가고 있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20)_1
꺼빈드라(Kabindra)다. 디네스 삼촌의 소개를 받고 난생 처음 만난 그는 디네스 동생인 디페스의 절친한 친구라고 했다. 나는 순박한 그 청년에게 입고 있던 등산복을 벗어주고 왔다. 고마운 친구다.
길이 잽싸게 바뀔 때마다 삭막한 산야를 볼 때마다 꺼빈드라가 끝없이 고맙게 느껴졌다. 물론 그를 내게로 안내한 디네스 가족들에게도 더없이 고마운 일이다. 사실 꺼빈드라가 고마운 것은 오토바이 뒤에 타고 있는 내가 보기에 도저히 오토바이로 갈만한 길이 못되는 곳인데 그 길을 군소리 없이 안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멀리 마르파가 멀어져가고 있다. 그 뒤로 마르파를 감싸 안은 어머니 산 같은 다울라기리와 작별의 안녕도 고하지 못하고 그 곁을 부산스럽게 떠나고 있다.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뒷바람을 동시에 맞으며 가는 길이다. 
멀리 다울라기리에서부터 녹아내린 아니 그보다 더 멀리 안나푸르나와 각베니에서부터 흘러온 강물이 큰 강줄기를 이루며 흘러가고 있었다. 그 물줄기를 쫓아가듯이 오토바이는 바쁘게 길을 재촉했다. 

멀고 먼 고대로부터 흘러온 것일 수도 있는 그 강줄기를 따라가며 듬성듬성 유목의 흔적을 안고 길가는 이들을 붙잡고 그들의 쉼터가 되어주고 그들에게 따뜻한 찌아를 끓여주는 커다란 강안에 뭍을 만난다. 주저앉아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자유로운 영혼의 쉼터를 보는 듯하다. 그렇기에 그들의 패인 주름과 그들의 신고를 보면서도 그들에게 낯선 느낌보다 무한한 자유로움으로 다가가 말을 건네고 싶어진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20)_2
꺼빈드라의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검은 물이 흐르는 계곡 위의 작은 구멍가게에서 네팔 찌아와 비스켓을 먹으며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갈로빠니는 검은 물이란 뜻이고 실제로 3,000미터가 넘는 깊은 계곡을 흐르는 검은 강물은 생소하고 낯설기만 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랑곳없이 고대로부터 흘러온 그 히말라야의 물줄기를 따라가듯 길을 간다. 아니 길을 간다기보다 길을 내며 마치 정처없는 나그네처럼 꺼빈드라는 오토바이를 몰아간다. 길이라기에는 너무나 거칠기에 길이 아닌 듯하다. 잘 닦여진 의미의 길이 못 된다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한마디 건넬 법도한 시간이 지났는데 꺼빈드라는 한마디 말도 없다. 지극히 제한된 필요에 의한 말뿐이다. 오토바이 뒤에 탄 손님의 자세를 안전하게 바로 잡아주는 말 뿐이다. 나도 달리는 오토바이에서는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쉽지 않아 그냥 나무에 찰싹 달라붙은 매미모양 그의 등에 몸을 붙인다. 

길이 험악한 탓도 내가 말을 붙일 수 없는 미안함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길을 가다가 멀리서 한때의 당나귀에 짐을 가득 싣고 오는 사람들이 보이고, 또 다른 여행자들이 보인다. 그들이나 나나 왜 이 오지의 낯설음을 향하고 있는 것일까?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20)_3
가사 지역을 벗어나며......,
어찌보면 한심할 법도 한 이 행보를 사람들은 부러운 시선으로 보기도 하고 쓸데없는 일로 치부하기도 하리라.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나는 그 낯설음 속에서 나를 응시하고 내가 살아왔던 나의 변방을 바라보게 된다. 

그곳에 내가 온전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 기특하기까지 하다. 그 온전함이 세속의 무늬와 다르다하더라도 그곳에 분명히 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내게 내가 무너지는 시간, 그렇게 내가 나를 바라보며 스스로를 관망하는 시간이 흘러가고 꺼빈드라는 그의 목적지 아니 내가 정한 오늘의 일정을 위해 달려온 길을 멈추었다. 

마침 그곳에는 작은 레스토랑이 있었다. 레떼(Late)라는 이정표가 있었다. 제법 넓은 평지를 이루고 있으며 마을길은 아스팔트길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정교한 돌들로 포장되어 있었다. 
레스토랑 아래로 절벽이 있고 세찬 물소리를 내며 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꺼빈드라에게 너무나 고마웠다. 그 레스토랑에서 찌아와 비스켓을 사서 나눠먹고 난 후, 나는 그에게 지불하기로 약속한 500루피보다 많은 10달러를 주고 내가 입고 있었던 등산복 상의를 그에게 선물로 주었다. 

하루 반 정도의 일정을 앞당길 수 있었다. 이제 다와와의 불안한 만남, 불길한 사유에서는 자유로워질 수 있을 법하다. 나는 그와의 만남을 기억하겠다며 서로 멀리 바라다 보이는 흰 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20)_4
여전히 삽과 곡괭이를 이용해 길을 닦고 있는 네팔 사람들......,
이제야말로 혼자 길을 가는 것이다. 어찌 보면 열흘간의 트레킹을 마치고 입산을 시작하는 길이 곧 하산길이다. 히말라야의 디딤터 쯤 될 법한 산길로 흙먼지를 날리며 오가는 당나귀 떼를 먼저 앞세워 보내고 그 뒤를 따라간다. 
걷고 걸으며 비탈진 산 계곡의 험난함을 보았고, 그 험난한 계곡 사이사이로 우리가 생각하는 천수답과는 차원이 다른 천수전답이 늘어져 있어 마치 천상을 오르는 계단처럼 장관을 이룬다. 그 무한대로 펼쳐진 듯 바라다 보이는 그 천수전답 위로도 마을과 천수전답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내가 걷고 있는 길은 새로 닦여지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바윗돌들과 험악한 산 난간을 곡예 하듯 삽과 괭이를 이용해서 길을 닦아내고 있었다. 그들의 초연한 노동, 길가는 나그네의 눈길에 눈물이 맺힐 만큼 아득한 노동의 고통, 아마도 우리나라의 대관령이나 미시령을 닦던 그때도 우리의 선배들이 이런 노동을 해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 무심한 노동을 이겨내는 그들의 땀방울이 히말라야의 흰 눈길로 이어지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푸른 하늘로 흰 구름들이 떠오른다. 그렇게 그들의 고통을 달래는 살풀이라도 하는 듯이 하늘이 하늘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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