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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은 달걀
행복과 절망의 경계선은 삶기 전의 달걀과 닮아있다
2008-10-31 11:07:13최종 업데이트 : 2008-10-31 11:07:13 작성자 : 시민기자   임화영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목적은 무엇 때문일까? 
우리는 눈을 뜨면 학교로 일터로 또는 가정에서 매일 같이 반복되는 생활을 살아가야 한다. 어쩌면 지겨워 할 틈도 없이 삶의 분주함에 올라타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말안장 위에 올라타고 달리며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주마간산(走馬看山)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 빠르게 달리며 목적지에 가장 일찍 도착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나치는 곳곳에 숨겨져 있는 인생의 비밀을 발견하고 음미하는 것도 얼마만큼은 중요하지 않겠는가? 

행복한 삶은 달걀_1
행복한 삶은 달걀_1

행복한 삶은? 이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해보았다. 얼마간의 지루한 사색의 시간이 흐르고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이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나만의 사색의 공간에 적합한 결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행복한 삶은 달걀' 여기서 삶은 주어가 될 수도 동사가 될 수도 있다. 주어가 되느냐 동사가 되느냐에 따라 의미는 엄청나게 달라진다. 그래서 이것이 인생이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삶은 달걀은 말 그대로 행복한 삶 = 달걀이라는 1차적 부등식의 결론을 유추해 내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 내포된 2차적, 3차적인 뜻을 알게 된다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먼저 행복이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에 따르면 복된 좋은 운수 또는 생활의 만족과 삶의 보람을 느끼는 흐믓한 상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행복과 삶과 달걀을 어떻게 매치시킬 수 있을까? 
감성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쾌락주의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잘 삶아낸 달걀 껍질을 잘 벗겨내고 짭쪼름한 소금에 찍어 먹는 달걀의 맛은 환상이다. 어린 시절 소풍이나 여행 시 항상 등장했던 단골메뉴이기도 하다. 
인간의 기본 적인 욕구 중에 하나인 먹는 것에 대한 욕구를 가장 잘 반영한 말이 아닐까? 하지만 사람은 먹는 것만으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정신적인 충족감에서 오는 행복감이 더 크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를 철학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스토아 학파이다. 하지만 이들은 작은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감성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행복은 낮은 차원이며 그래서 그것들을 부정하였다. 
결과는 자신들의 인격적 완성에 초점을 맞춰가며 금욕적인 생활 속에서 행복을 느끼려 했다. 감성적인 행복이던 정신적인 행복이던 모두가 중요한 것이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는 관점에서 벗어나 어떻게 두 가지를 조화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를 생각해 한다. 

행복이란 삶기 전의 달걀처럼 깨지지 쉬운 상태의 물질과 액체로 인해 불완전한 분리로 형성된 물질을 뜨거운 물에 삶아내면서 내용물이 흰자와 노른자로 완벽한 분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행복과 절망의 경계선은 삶기 전의 단계처럼 모호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행복이라는 것을 내 것으로 인식하는 순간, 팔팔 끓는 물에 달걀을 집어 넣는 결정의 순간을 통해 행복과 절망의 경계선은 분명해진다. 
노른자만 먹을 때 퍽퍽하며 목이 메이는 현상을 흰자위와 함께 먹었을 때 해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이란 결국은 팔팔 끓는 물에 삶는 행위를 통해 정확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달걀을 씻어 냄비에 넣고 물에 잠길 정도의 물을 붓는다. 물을 너무 많이 부어도 물을 너무 적게 부어도 삶아지는 달걀의 상태는 달라진다. 
잘 삶아진 달걀을 바로 건져 차가운 물에 헹구어 낸다. 이 과정이 없으면 달걀의 껍질은 잘 벗겨지지 않고 하얀 살점이 파헤쳐지는 아픔을 겪게 된다. 
예쁘게 잘 벗겨진 달걀을 소금에 살짝 찍어 입에 넣어보라. 그 맛은 정말 일품이다. 

행복이란 이처럼 달걀을 삶는 과정과 너무나 닮아 있다. 삶는 물의 농도와 불의 세기와 찬물에의 연단의 과정과 소금을 곁들인 먹기까지 모든 것이 행복을 결정짓게 하는 조건들이다. 삶기 전에 날달걀을 먹으면 비릿한 냄새 때문에 역겨울 때가 있다. 

행복이란 완전히 익었을 때 최상의 맛을 내는 것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행복의 강약이 다르듯 달걀의 요리에 있어서도 방법과 정도는 있다. 
어떤 사람은 계란프라이를 좋아하고 계란프라이도 완숙이냐 반숙이냐의 방법이 있다. 
어떤 사람은 스크램블을 좋아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계란찜을 좋아하기도 한다. 

이처럼 행복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온다. 나에게 행복은 삶은 달걀 같은 느낌이다. 
노른자의 퍽퍽한 고단백의 느끼함과 흰자위의 물컹하며 무미건조한 맛의 결합이 삶은 달걀의 맛을 배가시킨다. 퍽퍽하고 힘든 고난의 시간과 편안하고 쉬운 일들의 얼 키고 설 키는 관계 속에서 완성되어가는 인생이라는 행복은 그래서 나에게 기쁨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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