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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묵과 고추장아찌
"편하게 삽시다! "
2008-11-02 23:34:23최종 업데이트 : 2008-11-02 23:34:23 작성자 : 시민기자   김성희

평소 성격도 급하지만 그보다는 낯선 곳에 가면 무조건 집에 돌아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상책이라고 여겨왔다. 
천안역에서 화장실 볼일을 본다. 그때 가방을 열었던 기억이 있는 나는 집에 와서 보니 지갑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급기야 천안 유실물센터를 찾았다. 핸드폰과 차키는 보관중인데 지갑은 없다고 한다.

지갑은 형님이 쓰다가 동서가 이쁘다면서 준 건데 그 지갑이 날 갑자기 슬프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아이들의 사진도 들어 있었고 무엇보다 남편 명의의 카드가 들어있다. 오래전 지갑을 분실한 남편에게 비아냥 거린 사람이 나였다.
남편은 자신은 술 취해서 그렇지만 당신은 맨 정신으로 잃어 버렸다고 더 세게 목소리를 높일런지도 모를 일 아니겠는가.

일단 지갑부터 찾아야 하는데....하면서 카드회사에 전화를 한다.
분실신고를 하였더니 전화를 끊고 금방 전화가 온다.
남편 핸드폰에 문자가 왔나 보다.

아무튼 심기 불편한 상태로 밤을 지새워야하나 했더니 열한시가 넘어서 수원역이라면서 전화가 온다.
그쪽 지구대에서 지갑을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이상하다, 가방을 열은 적이 없고 또 가방이 찢겨 있지도 않았는데 무슨 일종의 소매치기같은 것을 당했단 말인가.

역시 칠칠맞긴 한가 보다.
그래도 지갑이 있다고 하니 두다리 뻗고 자야 한다.
아침에 지구대로 갔더니 메모가 있다. 그쪽에서 고물상을 하는 분인데 가끔 지갑을 주워 갖다 주신다고 한다.

세상에 고마울 데가.
운전면허증은 갱신할 때가 되었고 물론 생일부터 시작하여 육개월 이내이긴 하지만 후다닥 해버려야 하는데...양력 내 생일을 혹독하게 치르나 보다. 아침부터 문자가 오더니 '생일 축하합니다' 하고 열개가 넘는 곳에서 축하인사다.

지구대에서는 "거 아줌마, 왠 카드가 그리 많아요" 한다.
"아줌마잖아요.  포인트 카드예요 " 했다. 아침부터 아무 말 안할 것을, 하고도 후회했다.

천안에서 생활안전교육을 받게 되었는데 그 교수님이 그랬다.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욕먹을 것 편하게 사세요" 
그때 이후 함께 교육을 받은 일행끼리 유행어가 되었다. 
"편하게 삽시다 "
낄낄 깔깔 거리면서 전철안에서도 수다맨처럼 수다를 떨었고 급기야 시간의 지체감을 느끼지 못할만큼 빨리 도착할 정도로 우리들의 대화가 재미가 있었나 보다.

사람사는 거 다 똑같지 뭐 하면서도 수다 떨면서 헤어진 역사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안에서 그래도 편하게 사세요라는 말을 계속 되뇌었다. 
오늘 하루종일 일주일의 여독이 나를 짖누르는지 오전내내 콜콜 침대에서 몸을 헌납하는 중이었는데 점심때 들어 온 남편 보고 생뚱맞게 "밥 안먹고 왔어요? "

이런 얼마나 잠에 취했으면 갑자기 헛소리가 튀어 나올까. 
그래도 그 교수님 말씀을 굳게 믿었다.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욕먹을 꺼면 편하게 살자고..그 소리한 것을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혼자 자전거 타고 산행을 갔다 온 남편은 운동으로 서운한 마음을 산에 뿌리고 온 것인지 도토리묵과 고추장아찌를 담은 검정봉지를 딸에게 건네 주었다.

"반찬이 너무 없네 "
마음은 이미 화가 풀렸다는 증거일터이고 점심도 성의없게 챙겨 준 나에게 '편하게 사세요'가 왜 이리 위안이 되었던지. 
그러고 보면 말한마디에 하루 열두번도 웃고 울터인데 나 혼자 상처받았던 일들만 기억하는 못난이는 아니되어야 겠기에 "여보, 배 깎아 줄까 " 애교 아닌 애교로 접시를 들이 밀었더니 어느새 접시는 비어 있었고 코고는 남편 소리가 들린다. 
아직도 무작정 베풀었다는 것에 속상한 것일까.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고 하는데 우리 손해 보았다고 서로 생각하지 말기.

왜냐하면 편하게 사는 지름길이기 때문에.  
 
 
    
 

일상의 아름다움, 서로 상처주지 말기, 시민기자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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