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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동! 시민기자> 왜 난리들이야? 나 안죽었다
핏줄의 재발견-내 언니에 대해서
2008-10-01 20:49:52최종 업데이트 : 2008-10-01 20:49:52 작성자 : 시민기자   이윤

정신없이 지나가버린 9월입니다. 
저의 9월은 언니 이야기, 가족이야기가 머리속에서 내내 맴돌던 한 달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 합니다.

제 부모님은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인생은 항상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거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나이에 그게 뭔 말인지 별 개념은 없었지만 하여간 그 가르침을 바탕으로 많은 일을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했습니다.

좀 더 커서 학창 시절에는 부모님의 그런 교육 철학에 약간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가끔 했습니다.
왜냐하면 친구들이 "이건 당연히 이래야해. 저럴 땐 당연히 저렇게 하는 게 맞아." 할 때의 그 "당연한 것"이 무엇인지 저로서는 하나도 당연하지 않았거든요. 왜 당연한건지 항상 궁금하고 헷갈렸거든요.
그 때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이 가르쳐 주신 기준이 있어서 거기에 우선 맞춘 다음 그것을 벗어나고 성장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는 방향을 잃고 헤매기 십상이지 않을까.

그런 저에게 언니는 참 큰 존재였습니다. 모든 일에 깔끔명료한 판단을 했고...
좋고 싫은 게 분명하고... 그 이유 또한 거침없이 명확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별 생각않고 받아들이는 여러 가지 잣대들을 단호히 거부했고, 속물적인 어른들을 당당히 무시했습니다. 아첨하는 것, 비굴한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세상을 대충대충 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언니는 부모님을 대신하여 저의 판단의 근거가 되었고 차츰 제 우상이자 멘토가 되었습니다. 

언니는 미술-예술 전공자입니다.
예술하는 사람이라 그럴 수 있으려니 하지만 우리 언니도 참 고집 세고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영국 런던에서 '묻지마 유학' 중입니다.
맨 처음 사진, 미술, 순수미술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뭘하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
조금만 기다려달라 자세한 건 묻지 말아달라 그냥 돈만 좀 보내달라고 합니다.

남동생의 공부도 아직 끝나지 않은데다가, 하시던 일을 다 정리하고 은퇴하셔서 이제는 수입이 별로 없는 부모님의 어깨가 상당히 무겁습니다.
저도 한 때는 지원(?)을 좀 했지만 이런 저런 고민끝에 지금은 그냥 부모님께 다 떠넘기고 있습니다.

언니는 뭐하냐고 사람들이 물을 때 영국에 있다고 하면, 그리고 미술을 한다고 하면 으레 "우와" 들 하지만, 위의 속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굉장히 안타까워하고 의아해하죠.

그 동안 언니는 모든 연락을 끊은 채 한두달에 한번 "Send money, Thank you" 가 달랑 적힌 이메일만 보내서 제 마음을 서운하게 했었고, 급기야 지난 해 겨울에는 언니네 하숙집 주인 아줌마로부터 한 밤중에 걸려온 전화
- 이 아가씨가 보름이 넘게 소식이 없다. 나 하숙비 못 받았는데 동생이 줄꺼냐? 안 주면 언니 짐 내다 버리겠다는 내용의로 온 집안이 발칵 뒤집혀 난리가 났던 적도 있었습니다.

얼마 후 "왠 난리냐. 나 안 죽었다"는 태연한 이메일 한 통(-.-;;;;)으로 가슴을 쓸어내렸지만요..

그런 언니에게 며칠 전 긴 메일이 몇 통이나 왔습니다.
언니의 꿈과 그리고 언니가 꿈꾸는 가정을 얘기했고, 엄마와 동생과 나의 안부를 걱정하고, 내 남자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하고, 내가 현명하고 바르게 잘 살기를 응원하고 사촌동생의 안부도 궁금해 했습니다.

몇 년째 지속되고 있는 매정한 메일에 서운함이 점점 쌓여가고 있었던 저의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메일 내용으로 판단하건데, 언니는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던 어릴 때의 모습, 그 따뜻하고 바른 성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별로 변하지 않았고 비뚫어지지도 않았습니다.
여전히 자기 인생을 잘 챙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제 블로그에 들러 제가 쓴 글을 읽고 든든한 조언도 해 주었습니다.
무심한 단절로 한 동안 서운했던 마음이 한 순간 녹아내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래서 가족인가 봅니다.

엄마는 항상 말합니다.
걱정거리 한 가지씩 없는 집이 어디 있냐고. 그래도 우리는 누가 크게 아프거나 큰 사고를 치는 것도 아니고 언니 생활비만 마련하면 걱정없지 않냐고.

네... 아직까지 언니의 묻지마 유학이 끝나지는 않았지만, 조금 더 믿고 응원해 보려고 합니다.
저희 엄마는 요즘도 새벽마다 물을 떠 놓고 기도합니다.
어디가서 언니 입으로 물을 떠 넣어주는 상상을 하면 언니가 더 잘 될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와서 수시로 그런 상상을 한다고 합니다. 언니는 시간이 좀 걸릴 뿐이지 얼마뒤면 틀림없이 빛나는 보석이 될 거라고 언제나 흔들림없이 믿고 있습니다.
지금껏 엄마가 믿어 주는 일은 틀림없이 다 잘 되었으니 언니의 인생도 곧 불투명한 원석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이 될 꺼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무튼 언니의 메일로 우리 가족과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 본 시간이었습니다.
끝나가는 9월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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