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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다 못해 잔인한 현실
영화 ‘크로싱’을 보고
2008-07-14 20:44:02최종 업데이트 : 2008-07-14 20:44:02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제법 나이를 먹었는데도 슬픈 영화를 보면 눈물을 찍어댄다. 가슴에 여울지는 슬픈 장면을 보면 눈물샘이 터진다. 
작년에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을 볼 때도, 송혜교가 연기한 '황진이'를 볼 때도 주책없이 눈물이 흘러 같이 보고 있던 아내 보기가 민망했다. 

사실 '크로싱'을 볼 때도 이게 걱정이었다. 
소문에 아주 슬픈 영화라고 하니 눈물이 흐르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탈북자가 가족과 헤어지고 생존의 몸부림을 하는 영화라고 하니 어지간히 눈물을 흘릴 듯해서 마음으로는 단단히 준비를 했다. 

예상대로 영화는 북한 함경도 탄광 아래 마을이다. 
아버지 용수(차인표 분), 엄마 그리고 어린 아들 준이는 여느 가족처럼 평범하다. 넉넉하지 않은 삶이지만 백구(애완견)까지 있어 행복하다. 
이 가족에게 불행이 찾아온다. 엄마가 둘째를 임신한 상태에서 폐결핵을 앓는다. 
먹을 것도 부족한 북한은 약이 없다. 해서 아버지 용수는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너 중국으로 간다. 

중국에 도착한 용수는 벌목장에서 일을 하며 돈을 모아 약을 구할 날만 기다린다. 그러나 밀입국 처지로 돈도 잃어버리고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용수는 우연히 인터뷰만 해주면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에, 독일 대사관으로 뛰어 들어가고 결국에는 남한으로 귀순하게 된다. 

슬프다 못해 잔인한 현실_1
슬프다 못해 잔인한 현실_1
그 사이 용수의 아내는 약 한 번 못 쓰고 목숨을 잃는다. 어머니마저 잃은 준이는 결국 아버지를 만나겠다고 나선다. 
어린 준이는 중국으로 가던 중 북한 당국자에게 잡힌다. 준이는 마을 친구인 소녀와 함께 인간으로 경험할 수 없는 극한적인 상황의 수용소 생활을 한다.  

한편 남한에서도 용수는 아내의 약을 사고, 아들 준이를 위해서 축구공과 축구화를 산다. 용수는 중개인을 통해 가족과의 만남을 시도한다. 
그러던 중 아내의 죽음을 확인하고, 준이를 만나겠다는 마음이 더욱 애틋해 진다. 
중개인의 도움을 받은 준이는 중국 국경을 넘어 몽골에 도착한다. 우여곡절 끝에 중개인의 손에서 벗어난 준이는 사막에서 길을 헤맨다. 
추위와 베고픔 속에서 길을 헤매던 준이는 고이 잠든 상태에서 아버지와 영원히 이별을 한다. 

엄청나게 슬픈 영화였다. 현실이라고 믿기 어려운 영화였다. 그런데도 나는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내가 눈물을 흘리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영화 기법이 그랬다. 
영화는 처절한 현실을 담담하고 평범하게 그리고 있었다. 그래서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가족에 대한 사랑은 인간의 내면에 침윤해 있는 본능이다. 
허기와 부조리한 사회에 사는 사람도 가족은 기쁨이고 희망이다. 가난 때문에 피붙이의 균열을 맛보아야 하는 인생은 누구의 잘못이란 말인가. 
영화는 이 불행의 원인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사회적인 문제와도 연결시키지 않고 있다. 그저 빛바랜 피조물을 카메라에 담듯 담담하게 전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눈물이 안 난다. 그저 잔인하다는 인상이 전부이다.  

지난 해 황석영의 소설 '바리데기'를 읽었다. 그때 나는 열여섯 살 탈북 소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눈물을 삼켰다. 
바리가 밀항선을 탄 장면이 생생하다. 
배 안은 지옥이었다. 사람이 배 컨테이너 속에서 짐처럼 다뤄진다. 허약한 사람은 견디지 못해 시신으로 끌려 나갔다. 
배가 적도를 지나면서부터 초열지옥이 시작되었고, 굶주림과 갈등으로 사람들은 차츰 짐승처럼 변해갔다. 

바리데기가 탈북의 과정에서 만나는 업자들은 철저하게 돈을 챙겼다. 
탈북자들은 배에 실린 컨테이너에 숨어서 목숨을 건 탈출을 한다. 그 중에서 약하고 병든 사람은 바다에 던져졌고 젊은 여자는 강간의 대상이 되었다. 

소설 '바리데기'와 영화 '크로싱'은 체제의 모순이 빚어내는 인간의 파탄을 핍진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동일한 범주에 있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삶의 온갖 억압적인 조건들이 이어지고, 그것에 대응할 수 없는 나약한 주인공의 현실이 똑같다. 
특히 결말에 가서도 풀리지 않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하는 운명처럼 느껴진다. 

영화는 결말에 가서도 답답하다. 
용수를 짓누르는 절망과 아픔이 사라지지 않았다. 
용수는 아들의 싸늘한 시신을 확인하고 남한으로 돌아가야 한다. 용수는 이제 가족이 없다. 가족이 없는 삶은 기쁨은 물론 슬픔도 줄 수 없다. 
용수는 모순의 현실에서 탈출했지만, 다시 불투명한 삶 속으로 돌아가야 하는 순간에 머뭇거리고 있다. 
카메라는 용수의 머뭇거림을 갑자기 내리는 비를 통해서 효과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순간 나에게는 한 여름 더위 같은 벅찬 삶의 무게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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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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