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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그리고 훈민정음에 대하여
2008-10-08 20:16:22최종 업데이트 : 2008-10-08 20:16:22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한글날은 훈민정음 반포 기념일

한글날의 역사는 일제세대에 시작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국운이 쇠하여, 민족의식도 점점 가물어지기 시작했다. 이에 위기를 느낀 국어학자들이 국어 운동을 통해 민족 사상을 고취하고자 '조선어연구회(한글학회의 전신)'를 창립하고, 그 사업의 일환으로 민족 문화의 근간이 되는 '훈민정음' 반포 기념일을 추정하기 시작했다. 
해서 세종실록의 기록에 의거 1926년 11월 4일(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로 선포했다. 당시에는 '한글'이라는 용어가 널리 퍼지기 전이었고, '한글'을 배울 때 '가갸거겨'하면서 배웠기 때문에 이런 명칭이 나왔다.

그러다가 한글의 명칭이 보편화되어 쓰이기 시작하면서 '한글날'로 바꾸고, 세종 28년 9월 29일도 양력으로 10월 28일이 분명하다고 해, 이 날이 한글날로 정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추정은 모두 정확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오늘날과 같은 정확한 훈민정음 반포일을 안 것은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고부터이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정인지 서문이 있는데, 그곳에 '정통(正統) 11년 9월 상한(上澣)'이라는 기록이 있다. 정통은 중국 명나라 영종의 연호인데 이는 조선조 세종 28년(1446년)이다. 
이에 근거해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자 한글 학회는 새 살림을 차리고, 9월 상한의 끝날 인 9월 10일에 훈민정음 반포를 했다는 추정을 하고, 이를 양력으로 환산한 10월 9일을 한글날로 확정했다.

간혹 한글날을 훈민정음 창제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방송 등에서도 '오늘은(한글날)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드신 날입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엄격히 말하면 틀린 표현이다. 한글날은 훈민정음을 반포한 기념일이다.

한글날, 그리고 훈민정음에 대하여_1
한글날, 그리고 훈민정음에 대하여_1


한글날은 국경일

광복과 함께 모든 국가 체제가 갖추어졌듯이 한글날은 더욱 빛을 보게 되었다. 광복 다음 해인 1946은 훈민정음 반포 500돌을 맞이하여 한글날을 공휴일로 정하고, 내외 귀빈과 함께 덕수궁에서 기념식을 열었다. 
그러다가 1981년 535돌 한글날부터는 기념식을 서울시가 주관하고, 그 다음 해(1982)부터는 문화공보부(지금은 문화관광부) 주관으로 했다.

그런데, 1990년 총무처(지금은 행정자치부)에서 법정 공휴일 축소 문제와 관련하여,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 이에 대해 한글 학회를 비롯한 학술 단체는 한글날을 국경일로 살려야 한다는 운동을 전개했다.

다행히 2005년 12월 29일 개정된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의해 국가 기념일에서 국경일로 승격되었다. 한글날이 휴일이 아닌 관계로 국경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인터넷에서는 국경일은 나라의 경사스러운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법률로써 지정한 날로, 삼일절(三一節), 제헌절(制憲節), 광복절(光復節) 및 개천절(開天節) 등의 4대 국경일이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한글날이 아예 언급이 되지 않고 있다. 달력에도 10월 3일은 빨간 글씨로 표시되어 있지만, 한글날은 검은색으로 처리되어 있어 국경일 느낌이 안 든다. 

훈민정음, 국보에서 세계기록유산으로

세종이 창제한 훈민정음을 1446년 정인지 등이 왕명으로 설명한 한문 해설서가 훈민정음이다. 
이 책은 세종어제(世宗御製) 서문과 훈민정음의 음가(音價) 및 운용법(運用法)을 밝힌 예의편(例義篇)이 본문처럼 되어 있고 이를 해설한 해례편이 제자해(制字解)·초성해(初聲解)·중성해(中聲解)·종성해(終聲解)·합자해(合字解)·용자례(用字例)의 순으로 나눠 기술되고 있으며 책 끝에 정인지의 서문이 실려 있다. 

세종어제 서문에서는 표기수단이 없는 백성들을 위해 세종이 친히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고 창제 목적을 밝히고 있다. 그 뒤에는 훈민정음 초성을 아음(牙音)·설음(舌音)·순음(脣音)·치음(齒音)·후음(喉音) 등 5음(五音) 분류하고, 중성(모음) 글자와 음가도 밝히고 있다. 중성 설명 다음에는 문자의 운용방법이 제시돼 있다. 
오늘날 받침 규정의 근간이 되는 '종성부용초성(終聲復用初聲)'이 있고, 그 뒤에 연서(連書)와 병서(竝書), 부서(附書), 성음(聲音) 및 가점(加點) 규정 등이 제시되어 있다. 

'해례'는 말 그대로 해설 부분인데, 이것이 훈민정음의 가장 핵심 내용이다. 여기에는 새로 만든 글자의 제자원리를 밝히고, 그 음가와 운용법, 이 문자가 표시하는 음운체계 등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훈민정음의 제자원리가 상형(象形)에 있음을 말하고, 자음자(子音字)의 제자에 있어서는 먼저 조음위치별(調音位置別)로 기본이 되는 초성자를 정하고, 이 기본자들은 각각 그 조음방식 또는 조음위치를 상형하여 제자된 것임을 말하였다. 
중성글자는 초성글자와는 달리 천(天)·지(地)·인(人) 삼재(三才)를 상형하여 기본 모음자를 바탕으로 초출자와 재출자를 만들었다. 

훈민정음이 오늘날 세계기록유산이 된 것도 이 책에 담긴 내용 때문이다. 특히 제자원리나 모음자(母音字)의 음가에 대한 설명 등은 현대의 음성학이나 언어학의 이론에도 부합되는 과학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책 '훈민정음'은 해례가 있다고 해서 다른 훈민정음과 구분하여 훈민정음 해례본이라 부르기도 하고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한다. 이 책의 글씨는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이 목판에 글씨를 썼다. 
크기는 가로 16.9㎝, 세로 22.9㎝다. 국보 70호로 현재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간송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어 세계가 인정하는 문화유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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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열, 한글날, 훈민정음, 세계기록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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