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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마주치고 싶은 거지(乞人)
"거지 마음이 아쉽다"
2008-10-13 11:16:17최종 업데이트 : 2008-10-13 11:16:17 작성자 : 시민기자   김재철

여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어느 날 저녁 귀가 길. 
버스에서 내린 나는 매교다리 부근을 걷고 있었다. 개울가 근처 빌딩을 지나갈 때, 빌딩 현관 턱에 버려 둔 중국음식 짬뽕 그릇을 휘젓고 있는 걸인을 마주친다. 
걸인은 쳐다보고 있는 것도 개의치 않고 그릇 속 건더기를 찾는다. 
긴 머리카락은 제멋대로이고 수염은 덥수룩하다. 옷은 시커멓게 때로 절었고 발목에도 때로 절은 헝겊을 휘감고 있다. 머리카락과 수염이 검은 것으로 보아 장년정도로 추측될 뿐이다. 

순간 컵 라면이라도, 무슨 도움을 줄 수 없을까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스쳤지만, 이내 근처에 가까운 가게가 없다는 마음 속 핑계로 그냥 지나친다. 
이후 도와주지 못한 마음의 가책을 받아 며칠 밤을 지새우고 후회한 일이, 어릴 적 경험과 교차된다. 그때 현금을 미쳐 챙겨주지 못한 것은 어느 땐가 현금을 마다한 거지를 경험한 생각이 잠재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땐가, 봄. 그날 오후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약 30분 정도 걸렸는데 학교에서 나와 꼬불꼬불 골목길을 지나고 얕은 고개를 넘어 오면 바로 우리 동네로 들어선다. 

그런데 동네 어귀에서 웬 거지와 마주쳤다. 옷이 남루하고 더러운 행색의 20세 안팎으로 보이는 거지는 시커먼 깡통을 팔에 걸치고 있었는데 아마 김치찌개를 담아 오는 것 같았다. 
그는 겨울을 넘긴 김장김치 총각무를 맛있게 씹어 먹고 있었다. 
나처럼 김치 좋아하는 사람치고 총각무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더구나 찌개 맛이 팍 밴 총각무가 아닌가. 군침이 돈 나는 거지의 먹는 모습을 정신없이 쳐다보았다. 드디어 말을 걸었다. 

"한 개만 주셔요." 

이처럼 맛있던 무가 있었던가. 집에 돌아와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그 이야길 하자, 왜 집에는 김치가 없더냐? 
거지 라자로는 부자 집 대문간에서 식탁에서 먹다 남은 부스러기로 주린 배를 채운다. 생전에 불행한 생활을 한 거지는 죽어 천사 품에 안겨 위안을 받고, 부자는 죽어서 땅속 죽음의 세계에서 고통을 받는다. 

그 이후 눈 여겨 매교다리를 몇 번이나 지나쳤지만 아직까지 그 거지를 만나보지 못했다. 다시 만난다면 자장면이라도 곱배기로 시켜주고 싶은데. 

하지만 나야말로 거지의 음식을 얻어먹었으니 진정한 거지일거라. 지금도 그 거지 마음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혹시 아나, 죽어서 위안을 받을 수 있을는지. 
어릴 적 나에게 무를 건네준 그 거지는 자기 음식을 나누어 주었으니 지금쯤은 많은 위안을 받고 살고 있을게다. 

요즘 세상, 새삼 거지 마음이 아쉽다.  

매교다리의 거지, 다시 한번 마주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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