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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탕(rangtang) 히말라야를 가다.(2)
- 보이지 않는다고 길이 없겠는가?
2008-02-16 15:30:51최종 업데이트 : 2008-02-16 15:30:51 작성자 : 시민기자   김형효

협곡의 아침이라 해를 볼 수도 없었다. 앞산을 빗겨서 흘러드는 빛살이 밝혀주는 것으로 아침이 왔음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밤늦게 게스트하우스(산장) 뒷산에 불이 나서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았었다. 그러나 모두 아무 일 아닌 것처럼 불구경들을 하였다. 400미터 정도는 더 되어 보이는 높이에서 불길이 잔풀들을 태우고 있으니 겁이 났다. 그런데 네팔 사람들의 느긋함에 이상한 생각만 하던 내 생각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아침에 할 수 있었다. 아침에 깨어보니 그 불길은 다 사그라들고 생각만큼 불길이 번진 것도 아니다. 그 불길도 고소증(?)에 걸린 것일까?

 

랑탕(rangtang) 히말라야를 가다.(2)_1
샤브르밴시 뒷산을 뱀이 휘감고 오른 것과 같이 산허리를 감고 도는 길, 저 험한 길로 거네스 히말라야를 찾는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낯선 길을 가는 여행자의 아침은 느긋하다. 그것이 여행길이니 그 느긋함이야 두 말할 나위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 히말라야를 트레킹 할 때, 그리고 네팔에 와서 나의 아침은 바쁘기만 하다. 물론 무슨 일에 얽매듯이 그런 것은 아니다. 설레임과 기대감이 나를 반겨 일찍 잠에서 깨우는 것이다. 그러니 여행길이 더욱 느긋하다. 가이드 단두가 일어나기를 기다린다. 커피를 마시고 피자를 먹고 그렇게 기다려도 일어나지 않던 단두가 6시 50분쯤이 되어서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느긋하게 그를 기다리며 다시 찌아를 한잔 더 마셨다. 파상 쉐르파(Pasang Shrepha, 46세)가 나의 말 상대가 되어주었다. 그는 그냥 보면 50대 중반의 느긋한 중년의 사나이로 보인다. 덩치도 크고 성격도 완만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많은 네팔사람들은 그런 품성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우리처럼 부산스런 느낌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니 우리가 일속에서 그들을 대할 때는 답답한 생각도 들만하다.

그와 대화하면서 한국에서의 생활에 대해 많이 묻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질문에는 일일이 응답하고 싶지는 않은 느낌이다. 그래서 피상적인 질문과 의례적인 인사치레 정도의 대화에 머물렀다. 아무튼 그의 산장은 제법 규모도 있고 손님들도 많은 듯했다. 많은 네팔사람들이 한국에 오기를 희망하는 것은 그런 성공 모델들이 있기 때문이다. 샤브르벤시 건너편의 다리를 건너면서 본격적인 트레킹에 들어간다. 사실 전에 걸었던 안나푸르나 토롱라(5,416미터)코스나 포카라를 거쳐 묵디낫(3,800미터)에 비하면 너무나 간단한 경로다. 그러나 낯선 고지의 산행은 초보등반자로서는 항상 부담스러운 것이다. 앞서 언급한 토롱라는 15박 16일 일정이고, 묵디낫은 8일일정이었다.

 

랑탕(rangtang) 히말라야를 가다.(2)_2
컹짐(khangjim 1,800미터)에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티벳계 네팔인
1,360미터에서 1,800미터를 내리막길 없이 수직상승하듯이 걸어 올라간다. 가는 길가에 오래전부터 현지에서 머물던 주민들의 가옥을 만난다. 대부분의 전통 집에는 소나 양, 닭 등을 키우는 축사가 함께 있다. 그리고 배수라든지 환경적 측면에 고려란 없어서 불편할 정도로 냄새가  심하다. 그럴 때는 걸음을 재촉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네팔 산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만발한 네팔의 랄리글라스(네팔 국화)가 나그네를 반겨준다. 오르막길을 허겁지겁 오르는데 우리네 깊은 산골마을을 찾아가는 길과 너무도 닮았다. 시시때때 깊은 생각에 잠기느라면 마치 텔레비전이나 영화속에서 바라보았던 외할머니 댁을 찾아가는 어린이라도 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층층계단식 논밭과 복숭아꽃, 사과꽃이 어우러져 피어있다.

한참을 걸어 올라가며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어젯밤 머물렀던 산장 뒷산으로 꾸불꾸불 산허리를 감고 오르는 뱀처럼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길에 대해서 혼자 생각에 집중하며 걸었다. "길은 우리가 보이지 않는 어느 곳에도 있었구나. 우리가 그저 보지 못했고 알지 못했을 뿐 길이 없는 것은 아니었구나?"라는 자각과 함께 다음 시편을 정리할 수 있었다.    

길 1

돈의 힘을 믿고
그 길을 만들며 사는 사람
정신의 힘을 믿고
그 길을 만들며 사는 사람
꿈과 희망의 힘을 믿고
그 길을 만들며 사는 사람
강철 같은 믿음이라면
그 무엇도 길이 아닌 것은 없다네.

길이 있었네.
뜬 구름 뒤에도
높고 높은 히말라야에도
깊은 바다 속에도
사람과 사람 속에도

깊은 골짝과
만년설의 히말라야 산길에도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길이 없는 것은 아니네.

그처럼 길에 선 사람이
길을 외면하지 않으면
다시 길에 서리라.

히말라야 산길을 걸으며 사람을 믿고
사람의 길을 만들며 사는 사람
그가 그립다.

숨찬 일상은 네팔 사람만의 삶도 아니고 또 그 외의 어느 나라이거나 어느 계층에 것만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거기 뱀이 휘감고 오르는 듯한 산길을 오가는 버스를 보면서 어쩌면 우리 모두는 저렇게 상존한 위험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다만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 길처럼 그 위험한 일상을 인식하지 못하면서 하루하루 성취라는 명목만을 내세우고 자신을 가혹하게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가혹한 삶 자체가 천길낭떠러지와 같은 위험 속으로 자신을 몰아가는 것일 수 있음을 현대인들은 자각해야 하지 않을까? 여유를 잃은 삶이란 삶이라기보다 죽음에 가깝다. 육신은 시한부이다. 그 시한부일 수밖에 없는 육신을 자기 소유라고 해서 가혹하게 몰아붙이기만 하면 그것은 위험한 일이다.

 

랑탕(rangtang) 히말라야를 가다.(2)_3
저 멀리 등허리를 보여주는 거네스 히말라야, 앞에 보이는 꽃이 네팔의 국화인 랄리글라스
히말을 걷는 여인들이나 아이들 그들이 바쁘다고 그 걸음만 재촉하거나 도망치려고만 한다면 그들의 생존은 막막할 것이다. 그들의 생활은 히말라야를 닮아야 가능한 것이다. 느긋하고 여유롭고 품이 넓은 마음을 가져야만 그 고산지대에서의 생존은 가능한 것이다. 이런 저런 사색은 산행을 하면서 갖는 특권이다. 입산의 의미란 그 산과 호흡하며 그 산을 벗하며 사는 사람들을 배우는 것이고 어쩌면 그 산에 주인들과 가까워지려는 노력과 이해가 아닐까? 그렇게 생뚱맞은 나그네의 정신 차리기 걸음으로 컹짐(khangjim 1,800미터)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20분이다. 잠시 쉬어가기로 하고 작은 산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쉬면서 찌아를 주문하고 주인이 먹어보라고 준 보리로 만든 빵을 먹었다. 고소하고 맛있었다. 그런 친절과 우리네 동네 형님같이 닮은 티벳계 네팔인들을 보면서 깊은 동질감을 느낀다. 아쉬운 만남이라고 해야하나? 헤어짐이라고 해야하나? 살아서 다시한번 찾을 기회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여행이다.

 

랑탕(rangtang) 히말라야를 가다.(2)_4
티벳마을에서 팡상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는 네팔인
계속 걸었다. 멀리 코사이쿤드도 보이고 거네스 히말라야도 보였다. 쉐르파 마을(sherpha gaun 2,560미터)에는 낮 1시30분에 도착했다. 팡상(pangsang) 게스트하우스라는 곳에서 달밧으로 점심을 먹었다. 25세의 쉐르파인과 그의 부인이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마을 분위기는 전형적인 우리네 시골마을과 같았다. 집옆에 남새밭도 그렇고 거기 심어놓은 마늘 양파 파 등의 먹을거리도 그런 것이다. 유채도 심어놓았다. 정서적으로 평온한 휴식을 즐기기에 좋은 이유도 되는 것이 히말라야 트레킹의 장점이다.

***덧붙이는 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네팔사람들은 찌아를 마신다. 네팔식 찌아는 인도에서는 짜이로 불리는 홍차다. 네팔의 아낙네들은 일어나자마자 홍차를 끓인다. 적당량에 물을 끓인 다음 끓는 물에 홍차를 넣고 그대로 걸러 마시는 것을 갈루찌아(black tea)이고 우유까지 넣고 끓인 찌아는 둑찌아(milk tea)이다. 아침 식사 전 공복에 마시면 참 좋다. 더구나 추운 겨울 감기 기운이 있을 때 마시면 건강에도 참 좋다. 이것은 나의 네팔 경험 중에 하나다. 원하시는 분들은 수원역 인근의 네팔레스토랑이나 수원역 북측 광장 버스터미널 건너편 네팔가게(인터아시아)를 찾으면 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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