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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여성의 삶, 그 질곡의 이야기
<책 이야기>박완서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를 읽고
2007-11-28 13:58:49최종 업데이트 : 2007-11-28 13:58:49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나는 몇 년째 독서 교과 수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말이 독서 시간이지 고등학교 3학년 수업이라 수능 모의고사 문제 풀이를 한다. 당장 수능 시험이 코앞이니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다. 재미가 없기는 아이들이나 나나 마찬가지다.

그 와중에 위안이 되는 것이 있다. 문학 작품을 만나면 좀 낫다. 아이들은 여전히 작품을 읽고 물음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 부담감이 있겠지만, 나는 작품을 읽으며 잠시 감흥에 젖을 수 있다.

그런데 소설은 다르다. 아이들도 제법 흥밋거리로 읽는다. 더욱 박완서의 소설을 만나면 녀석들도 제법 아는 체를 해서 수업이 그런대로 편하다. 그도 그럴 것이 박완서의 소설은 중학교 때 이미 만났다. '옥상의 민들레꽃'인데 중학생도 읽을 만하다. 그리고 고1 때 '그 여자네 집'이라는 소설을 배웠으니 익숙하다. 올해도 모의고사 문제를 풀면서 '엄마의 말뚝',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 '도둑맞은 가난', '겨울 나들이' 등을 만났다.

우리 시대 여성의 삶, 그 질곡의 이야기_1
작가 박완서의 최근 모습과 신작 소설 '친절한 복희씨' 표지

박완서의 소설은 화법이 독특하다. 대부분 체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 많아서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이 주를 이룬다. 그러다보니 서술자와 박완서 개인의 삶과 혼동하기 일쑤다.

'친절한 복희씨'의 9편의 단편도 작가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번 작품집에 대부분 노인이 화자이고 또 노인성 질병을 앓는 주변 인물들이 많다. 역시 '친절한 복희씨'도 애 딸린 홀아비에게 시집가 평생을 살아온 할머니 복희씨가 주인공이다. 사실 복희씨처럼 중풍에 걸린 남편과 살아가는 노년 여성은 우리 주변에 흔하게 볼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복희씨의 과거 삶은 그렇게 평범하지 않다. 열아홉의 꽃 같은 나이에 서른을 넘긴 띠동갑 홀아비를 만났다. 만나고 싶어 만나 것이 아니라, 주인아저씨였던 홀아비가 겁탈을 해 남편으로 눌러 앉은 것이다. 그 후로도 남편은 첫날밤처럼 복희씨를 모질게 학대를 했다. 그렇게 한 평생 살아왔는데, 이 남편이 중풍에 걸려 오른쪽 반신이 흐느적대고 제 입 안의 침도 잘 수습하지 못한다.

이제 남편은 늙고 병들어 썩은 포대자루처럼 처져 있다. 복희씨는 남편이 힘으로 자신을 제압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내심 평온하기까지 하다. 그 남편은 측은하지도 않다. 오히려 이때부터 복희씨는 삶의 여유(?)를 찾았다. 이제 남편의 몸에 본능적으로 숨어 있는 욕망을 증오하면서 살 수 있다.

그런데 이 남편이 몸이 말을 듣지 않는데도 본능은 남아 있다. 어느 날 불편한 몸을 이끌고 동네를 다녀온다. 그리고 복희씨에게 자기가 다녀온 곳을 갔다오라고 한다. 그곳은 약국이다. 남편이 동네 약국에서 정력제 비아그라를 사려고 했다는 사실을 안다. 그녀는 남편에 대해 살의를 느끼고 집을 나선다.  

이번 소설집의 표제작 '친절한 복희씨'는 2006년 '문인 100명이 선정한 가장 좋은 소설'로 뽑혔다. 한 여인의 상처로 얼룩진 일생을 현란한 묘사 없이 담담하고도 예리하게 전개하고 있다. 그 소소한 일상의 국면에서 비극적인 상황에 주목하면서도 절제된 시선과 담백한 서사가 빛을 발하는 소설이다. 

'마흔 아홉 살'도 중년 여성의 위태로운 삶의 경계를 노련한 말솜씨로 포착하고 있다. 중년 여성의 일상과 그들이 사는 삶의 현장 구석구석을 날렵하고 발랄한 감각으로 그려낸다.

주인공 카타리나는 성당을 다니면서 목욕 봉사를 열심히 하는 중년 여성이다. 아이들을 과외 공부시켜 대학까지 보내놓고 나서 빚 없이 강남의 오십 평 아파트에 사는 나름대로 성공한 인생이다. 카타리나는 마흔 아홉 살로 아이들의 대학 입시를 끝내고 봉사 활동을 하면서 삶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카타리나는 누구보다도 봉사 활동에 헌신적이다. 모임의 회장도 하고, 홀로 된 남자들의 노인들의 목욕 봉사를 하자고 한 것도 그녀였다. 남들은 아무리 노인이어도 벗은 노인의 얼굴을 마주 보는 것도 민망해했다. 하지만 카타리나는 달랐다. 기쁜 얼굴로 아랫도리를 닦아주었다.

그런데 그녀가 자신의 시아버지 팬티는 손으로도 잡지 못하고 집게로 잡는 이중성을 보인다. 완벽한 박애주의자로 알려졌던 카타리나가 위선자로 폭로 당한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시어머니는 젊은 시절 늘 마음의 상처를 안겼다. 시아버지의 팬티는 카타리나에게 시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게 했다. 따라서 시아버지의 팬티를 볼 때마다 시어머니에 대해 참을 수 없는 적의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래서 카타리나는 회원의 비난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않는다.

"난 왜 이렇게 겉 다르고 속 다를까.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 가짜인지 나도 모르겠는 거 있지.(p. 105)" 라며 자신의 내면에 잠복해 있는 위선을 고백한다. 오히려 "모든 인간관계 속엔 위선이 불가피하게 개입하게 돼 있어, 꼭 필요한 윤활유야.(p. 107)" 라는 친구의 위로에 대해 고맙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제목을 '마흔 아홉 살'이라고 한 것처럼, 40대는 이렇게 살지도 모른다. 40대는 이제 아들, 딸을 낳고 살고 있기 때문에 고부간의 갈등을 묻어버렸을 것 같지만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그동안 시어머니의 상처와 균열에 무심한 듯 살아왔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앙금으로 있다.

작가 박완서는 자신이 스스로 밝히는 것처럼 나이를 많이 먹었다. 8순을 바라보는 노인이다. 이 정도의 나이라면 정신도 흐릴 때이다. 그러나 박완서에게는 생물학적 나이가 무의미하다. 나이를 뛰어넘어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이야기는 대가의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 밖에도 박완서는 여성의 밑바닥에 도사린 정신적 갈등과 삶의 도처에 잠복해 있는 모순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어떤 때는 냉정하게 그리면서도 어떤 때는 삶의 내면을 따뜻하게 바라본다.

개인적으로 박완서의 장편 '오래된 농담'을 만나고, 꽤 오랜만에 작품집을 만났다. 그때는 주인공 의사 심영빈의 눈을 통해 가진 자들의 천민성을 고발하는 목소리를 냈지만, 이번에는 작가가 사회를 향해 던지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작품도 나이를 먹은 것인지 황혼에 든 노인들의 삶을 담담하게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노작가의 구수함이 돋보인다.

스스로 마지막 창작집이 될 것 같다고 고백하고 싶었다고 말한 것처럼 작가 박완서가 우리 곁을 차츰 떠나는 나이테를 넘고 있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세대를 뛰어넘어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작가 박완서의 삶을 접하면서 불현듯 나도 박완서처럼 늙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욕심인 줄 알면서도, 힘겹게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노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강하게 담아본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까지 총명함을 잃지 않는 건강한 노년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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