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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인간 추사를 만나다
한승원의 장편소설 '추사'를 읽고
2007-11-16 10:08:14최종 업데이트 : 2007-11-16 10:08:14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한승원의 장편소설 <추사> 표지
<서평>인간 추사를 만나다_1

소설가 한승원을 통해서 소설 '추사'를 만났다. 추사 김정희. 그에 대한 이야기는 수없이 들어왔다. '추사체(秋史體)'로 유명한 조선 후기 문신이자 서화가이다. '북학의'를 저술한 박제가와의 인연으로 실사구시(實事求是)사상을 근거로 한 북학파(北學派)의 학문적 세계를 형성했다. 젊은 시절 북한산에 올라 무학대사의 비로 알려진 것을 진흥왕순수비라고 증명했던 천재, 그러나 정치적 음모에 휘말려 10년 넘게 객지를 떠돌았던 비극의 인물이었다.

소설가 한승원은 추사와 독자들의 만남을 추사의 천재성에서 찾는다. 추사의 천재적인 면모를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은 박제가이다. 
"소인이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입니까! 이 원춘 도령은 자기의 앞날, 자기의 운명을 스스로 잘 만들어갈 재목입니다.(1권 p. 71)"
실학파의 대가인 박제가는 어린 추사를 보는 순간 먼 미래의 추사를 짐작했다. 박제가는 추사의 양아버지(김노영)가 자기에게 어린 추사를 맡기겠다는 말을 듣고 이미 범접하지 못하는 인물임을 간파했다.

우의정 채제공도 월성위궁을 지나다가 대문에 붙어 있는 입춘첩을 보고 놀란다.
"어른의 글씨는 아닌 듯하고, 그 글씨가 예사 글씨가 아니고 꿈틀꿈틀 살아 있습니다. 점과 획과 삐침과 파임마다 힘이 넘치고 굳세고, 맺고 뻗어가는 획과 파임에 생생한 기운이 수런거립니다.…<중략>…저 글씨로 미루어 볼 때, 장차 글씨로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듯싶소이다.(1권 p. 72)"
채제공이 지나다가 대문에 붙은 입춘첩(立春大吉 建陽多慶)을 보고 놀라는 장면이다. 채제공은 어린 추사의 글씨를 보고 '글씨로 장차 큰 이름을 드날릴 것'이라고 예언을 한다.

중국의 학자 옹방강도 이제 스물네 살인 추사를 보고 극찬을 한다.
"경술과 문장이 해동 조선에서 제일이구나(經術 文章 海東 第一)!(1권 p. 125)"
옹방강은 일흔여덟 살의 나이였지만 아직 경건한 경학계의 기숙이고 금석학계의 대가였다. 대 중국 안에서 학자로서 누릴 영광을 다 누린 석학이다. 옹방강은 여느 사람들을 만나주지 않는 옹고집자다. 그러나 추사는 만나주었다. 그것은 추사의 탁월한 기재와 사람됨에 대한 이야기를 박제가의 편지로 이미 들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추사는 조선을 뛰어넘어 중국까지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그의 글씨는 신필(神筆)이었다. 

그러나 채제공이 '그 아이가 세상과 쉽게 타협하지 않고 꿋꿋하게만 살아간다면 불행한 일을 많이 당하게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듯이 세상과 타협하지 못한 추사는 인생의 말년을 유배지에서 보낸다. 50대 중반의 나이부터 제주도에서 9년, 그리고 다시 북청에서 2년을 세상과 등지고 살아야했다. 

안동 김씨 일파의 탐욕스러운 정치적 야욕은 무서웠다. 이미 돌아가신 추사의 아버지를 탄핵하고, 추사 또한 간신히 죽음을 면하고 제주도 위리안치(집 주위에서 가시울타리를 둘러치는) 유배형을 받았다. 55세의 나이에 제주도 유배는 삶의 끝이나 다름없다.

육지에서 천 리 만 리 떨어진 곳, 고해절도 이곳은 하늘과 땅, 그리고 말이 없는 파도만이 있다. 언제 갈 수 있는 지 기약 없는 고립 속에 집안의 환란조차 함께하지 못하는 슬픔이 있다. 풍토병과 싸워야 하고 고독감을 이겨내야 한다. 세상에 나가지 못하고 가시 덩굴에 발을 묶고 있는 삶이 한스럽다. 

그러나 추사의 예술 세계를 향한 집념은 꺾지 못했다. 추사의 명작 '세한도'가 이곳에서 완성되었다. 

"추사는 문득 겨울 한파와 적막과 침잠 속에서 다사로운 몸피를 둥그렇게 키우고 있는 우주의 시원을 형상화시켜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림 한 폭이 머리에 그려졌다. 설 전후의 고추 맛보다 더 매운 찬바람이 몰아치자, 모든 짐승과 새들은 모습을 감추고, 푸나무들은 죽은 듯 말라져 적막하건만, 건장한 소나무만 푸른 가지를 뻗은 채 우뚝 서서 제 몸을 지탱하기 힘들어하는 늙은 소나무 한 그루를 부축하고 있다. 그 부축으로 말미암아 늙은 소나무는 간신히 푸른 잎사귀 몇 개를 내밀고 있다. 그 두 나무 옆에 집 한 채가 있는데, 그 집은 마음을 하얗게 비운 유마거사처럼 사는 한 외로운 사람의 집이다."(2권 p. 183)

이상적의 온정에 무엇으로 보답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시방 나의 형편으로는 난을 쳐주거나 그림을 그려 보은하는 수밖에 없다. 설 전후의 추위를 견디고 있는 난이나 소나무를 통해 내 마음을 형상화시켜주자'(2권 p. 183)며 그린 그림이다.

모두가 세상의 인심에 휩쓸려 산다. 형조참판까지 지냈지만, 지금은 영어의 몸. 세상인심이 각박하니 찾아오는 사람도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상적은 잊지 않고 책이며 붓이며 마음을 보내왔다. 그 마음이 따뜻하기도 하지만, 그 정신이 높고 변함이 없다. 그래서 추사는 추운 겨울에도 의연하게 솟은 소나무를 생각했다. 그 높은 정신을 겨울 세찬 바람을 이기고 있는 소나무에 비유했다. 그것이 세한도이다. 

추사는 신기에 가까운 글씨를 남겼다. 그리고 세도정치와 당당히 맞선 정치적 행적을 걸었다. 그러나 소설가 한승원은 이러한 업적보다 추사의 인간적인 면모에 집중했다. 소설에서는 추사의 인간적 괴로움을 첩인 초생과 그의 소생인 서자 상우에서 발견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서자인 상우는 후회스럽고 한스러운 존재였다. 상우, 저 자식을 낳지 않았어야 하는데 ……그것을 그는 뜻같이 할 수 없었다. 초생, 그 여인 때문이었다.(1권 p. 78)

초생은 새벽에 패랭이를 쓰고 소년의 차림으로 왔다. 풍천 부사 유득공의 사촌 동생으로 한평생 원춘 도령(추사)의 시종 노릇을 하자고 찾아왔다. 그해 열아홉 살인 초생은 추사의 첩이 되었고, 자식 상우를 낳았다. 추사는 상우를 낳은 것을 후회한 것처럼, 초생을 품은 것도 평생 한으로 가지고 있었다. 

시대의 관습이 첩을 두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서얼을 두지만, 추사는 그들에게 드려진 그늘이 늘 안타까웠다. 남편의 사랑도 뒷방에서 숨어서 받아야 하는 여인의 운명이 늘 가련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 못하는 상우도 마음이 갔지만 당시 사회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운명이 서글펐다. 그들은 추사의 얼굴에 남은 마마 자국처럼, 늘 추사의 가슴에 안타까운 운명의 자국으로 남았다.

소설가 한승원은 1997년부터 고향인 전남 장흥에 내려가 '해산토굴'이란 시골집에서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그는 이번에 추사가 된 꿈까지 꿔가며 작품을 낳았다고 한다.

한승원의 삶이 담백한 것처럼, 소설 '추사'는 화려한 수식이 없다. 건조한 문체 그리고 간결한 문체 속에 추사의 인간적 고뇌가 담담하게 전해온다. 

불쑥 찾아온 여인을 내치지 못하고 첩으로 만들고, 다시 아들을 낳고 고민하는 추사의 모습은 평범한 사대부 남자다. 자신은 끊임없이 욕망을 버리며 글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는 일에 전념하면서도, 자식들의 살림살이를 도와주어야 한다며 생계를 걱정했던 평범한 아버지였다.

올 여름 역사소설에 발목을 담갔다. 김훈의 '남한산성'과 신경숙의 '리진'을 읽었다. 그리고 다시 조정래의 신작 '오 하느님'까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중이 살아온 생명력에 경외감을 느꼈다. 그러다가 다시 소설 '추사'를 만나면서 천재적인 화가의 삶을 기대했다. 그러나 소설 '추사'는 화려한 서화가의 삶도, 천재의 삶도 없었다. 평범한 아버지의 모습을 지닌 인간 추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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