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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죽서루에 가다…화성행궁 낙남헌과 같은 역할
수원문화원 인문학 역사탐방, 강원도 최남단 삼척지역 돌아봐
2019-06-14 15:00:44최종 업데이트 : 2019-06-14 14:54:48 작성자 : 시민기자   이경

13일 오전 7시 30분 수원문화원 인문학 역사탐방이 시작되었다. 40명의 탐방객은 이른 아침 팔달산 중턱에 있는 수원문화원에서 삼척으로 떠났다.
 

염상균 해설사는 "강원도 최남단에 위치한 삼척은 원래 삼국시대 실직국(悉直國)이라는 작은 나라였으나, 신라 지증왕 당시 항복하여 신라의 군현이 된 곳입니다"라며 "바다와 산의 자연환경과 오랜 역사를 간직한 삼척지역에서, 관동팔경 가운데 가장 먼저 만들어지고 제일 큰 죽서루, 공양왕릉, 척주동해비, 추암 비경 등을 둘러볼 예정입니다"라고 설명을 했다.
 

"동해의 망망대해를 볼 수 있다는 거야?", "몇 해 전 촛대바위에 가 본 기억이 있는데 다시 간다니 좋다", "공양왕릉이 삼척에 있다는 걸 오늘 알았네" 등 탐방객들은 기대감을 내비쳤다.

삼척시에서 동해를 바라보며 7번 국도를 따라 17km 정도 남쪽으로 내려가 고개를 넘으면 바다가 보인다. 그리고 왼쪽 낮은 야산에 공양왕릉이 있다.

공양왕 3부자와 빈이나 시녀 또는 말의 무덤으로 알려진 장소가 있다. 공양왕은 삼척에서 귀양을 산지 한달만에 죽는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공양왕릉이다. 사실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과 순비(順妃) 노씨의 능은 경기도 고양시 원당에 있고 사적 제191호로 1970년 지정되었다. 이곳 삼척의 능은 공양왕의 마지막 유배지였고, 사사지(賜死地)였기에 능으로 추론 가능할 뿐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창왕을 폐위시키고 공양왕을 즉위시켰습니다. 그는 허수아비 왕에 불과했고, 이성계에게 실권을 빼앗긴 후 '덕이 없고 어리석다'라는 이유로 폐위당하고 말았어요." 염상균 해설사는 고려 정치사와 '고려 망국의 왕'으로 알려진 공양왕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관동 제1루란 명성을 얻은 죽서루는 유일하게 강가에 자리잡았다.

오십천 절벽위에 자리 잡은 죽서루는 관동팔경 중 제일 큰 정자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두 번째 방문지는 보물 제213호로 관동팔경의 제일루인 '죽서루(竹西樓)'다. 연어가 가장 많이 몰려온다는 오십천을 배경으로 지어졌고, 주춧돌 대신 자연 암반과 자연 초석을 이용한 기둥을 볼 수 있다.
 

염상균 해설사는 "현종 시대 삼척 부사 허목이 쓴 '제일계정'을 시작으로 정조와 숙종의 어제시, 죽서루를 예찬한 시와 편액 등이 많습니다"라며 누각 전면과 내에 게시된 현판을 설명하고 "죽서루는 화성행궁의 낙남헌과 같은 역할을 했고, 바로 옆에는 우화관과 같은 진주관이 있다"라고 덧붙였다.
 

낙남헌은 일제 강점기에 화성행궁이 철거될 당시 훼손되지 않고 남아있는 건축물로, 1795년 을묘원행시에는 각종 행사가 이 곳에서 치러졌다. 특별 과거시험의 급제자에게 합격증을 내려주는 행사와 군사들의 회식을 이 곳에서 했다는 기록이 있다.
 

우화관은 화성유수부의 객사로 외부에서 온 관리들이 숙소로 이용하거나 고을의 인사들을 초대하여 연회를 베풀기도 하는 곳인데 현재 복원중이다.
 

죽서루 동쪽에 있는 바위 상부의 성혈 유적도 볼 만 했다. 성혈은 풍요와 다산을 의미하는 선사시대의 상징물로 조선 시대에 와서는 민간신앙으로 정착되어 득남의 기원처로 변모하게 되었다. 수원화성 북문인 장안문 안쪽에도 있다. 

척주동해비는 강원도 삼척시 정상동 82-1에 있다.

강원도 삼척시 정상동에 있는 비석인 척주동해비는 조선 현종 2년 (1661년) 미수 허목의 글씨로 전서체로 쓰였다.

세 번째 방문지는 삼척항이 잘 바라보이는 육향산 위의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다. 화강석 기단위 오석(烏石) 비신에 새겨진 전서체는 미수 허목의 글씨다. 허목이 삼척 부사로 재임할 당시 심한 폭풍이 일어 바닷물이 고을까지 들어와 난리가 났는데, 허목이 동해를 예찬한 노래를 지어 비를 세웠더니 물이 잠잠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척주동해비를 보고 육향산에서 내려가는 길 꼭 챙겨봐야 할 비석 머리가 있다.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7개의 공덕비를 만나는데 그중 관찰사를 지낸 홍상국의 비석 머리에는 독특한 무늬가 있다. 태양을 상징하는 동그라미와 산과 구름 등의 모양이 추상화처럼 새겨져 있어 재밌다.

바다를 정원으로 삼은 해암정은 고려 공민왕때 높은 벼슬을 지낸  심동로가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내려와 살며 세운 정자다.

바다를 정원으로 삼은 해암정(海巖亭)은 고려 공민왕 때 높은 벼슬을 지낸 심동로가 세운 정자다.

'추암'은 파도와 비바람에 씻긴 기암괴석을 볼수있는 장소다.

촛대바위를 제1의 경치로 치는 추암은 바다를 배경으로 다양한 기암괴석과 바위를 볼 수 있어 관광객이 많이 찾는 장소다.

마지막 탐방지는 파도와 비바람에 씻긴 기암괴석을 만나는 추암 해변이다. "조선 세조 때 한명회가 강원도 제찰사가 되어 추암에 와보고는 그 경치에 취해 '능파대'라고 불렀습니다." 염상균 해설사는 고려 공민왕 당시 심동로가 세운 해암정 앞에서 추암 풍광의 진면목을 일깨워줬다.
 

"붉은 태양이 떠오르는 바다를 보고 싶다", "가늘고 기다란 촛대바위는 언제봐도 장관이다", "올여름 휴가는 추암 해수욕장으로 와야겠다", "기암절벽의 풍경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는등 탐방객들은 저마다 탐방 소감을 내비쳤다.
 

해안선을 따라 펼쳐지는 절경과 먼바다에 점점이 뜬 작은 어선들의 모습을 뒤로하고 버스는 수원으로 달렸다. 공양왕릉의 숨겨진 이야기, 관동팔경의 제1루라는 '죽서루', 신묘한 힘을 지닌 척주동해비, 해암정과 추암까지 두루 둘러보는 알찬 시간이었다.
 

7월 역사탐방은 대나무로 먹고 사는 죽향인 담양으로 떠난다. 수원문화원 역사탐방은 매월 첫날 접수를 받는다. 문의는 031-244-2161~3.  홈페이지(http://www.suwonsarang.com)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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